[강윤경 칼럼] 부산의 마지막 기회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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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부 부산 이전, 해양수도 꿈 활짝
벼랑 끝 지역 회생 실낱같은 희망
기능 강화 기업 동반 이전 갈 길 멀어

해양 산업생태계 안 되면 의미 퇴색
서울 중심 수도권, 부산 중심 해양권
지역사회 한마음 한뜻으로 힘 모아야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이 지역 최대 이슈로 떠올랐다. 글로벌 해양수도 부산을 향한 지역민들의 꿈도 한껏 부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서 출발해 새 정부 출범과 함께 국정과제로 채택되고 연내 이전이라는 로드맵까지 확정되면서다. 부산시가 ‘해양수도 부산’을 선포한 지 25년, 정부가 해수부를 신설한 지 30년 만에 해수부 부산 시대가 활짝 열린 것이다.

오는 9월 10일 창간 79주년을 맞는 〈부산일보〉가 창간 기획의 주요 테마로 ‘부산, 대한민국 해양수도’를 선택한 것도 이런 시민들의 열망을 담기 위한 노력이다. 해수부 이전이 단순히 청사를 옮기는 문제가 아니라 해양수도 부산, 나아가 해양강국 대한민국을 만드는 초석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서다. 해양수도특별법, 북극항로, 산업 집적, 금융 허브, 해사법원, 해양 전문 인재, 북항재개발 등은 글로벌 해양수도 도약을 위한 최소한의 과제들이다.


현시점에서 지역사회가 해수부 부산 이전에 목을 매는 것은 소멸의 벼랑 끝에 선 지역의 마지막 실낱같은 희망처럼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추락하는 도시의 위상을 반등시킬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도 모른다는 절박함에서다. 부산이 제2 도시로서의 위상을 잃은 지는 이미 오래고 전국 대도시 중 처음으로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는 게 객관적으로 드러나는 지표다.

소멸의 시계를 되돌리기 위한 부산의 노력은 지금도 진행 중이지만 수도권 블랙홀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이다. 정부의 국가균형발전 전략은 언제나 ‘희망 고문’이었을 뿐 수도권 집중은 더 심화했다. 노무현 참여정부의 행정수도 조성과 공공기관 이전을 통한 혁신도시 ‘대못’은 혁신 역량의 분산으로 그 효과가 미흡했고 이어진 ‘5+2 광역경제권’ 등 역대 정부의 균형발전 전략은 정치적 레토릭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했다. 그 사이 수도권 인구는 전국의 절반을 넘어섰고 GDP 비중도 압도적이다. 수도권 블랙홀은 이제 충청과 강원까지 빨아들이며 국토의 기형적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다.

수도권의 대척점에 있는 부산의 추락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고용 지표다. 통계청이 1일 발표한 지난해 부산의 고용률은 57.8%로 17개 광역시도 중 가장 낮았다. 월평균 임금도 284만 원으로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12위에 머물렀다. 전국 평균보다 30만 원 적고, 서울과 비교하면 66만 원 낮은 수치다. 부산 청년 근로자 월평균 임금은 247만 원으로 전국 평균(270만 원)보다 약 9%(23만 원) 낮았다. ‘이러니 서울 가지’라는 말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 같은 부산의 추락이 하루아침에 이뤄졌을 리 만무하듯 그 반전 또한 한순간에 만들어질 수 없을 것이다. 해수부가 부산으로 이전한다고 부산이 곧장 해양수도로 도약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해수부 기능 강화 등 이뤄가야 할 과제가 한둘이 아니다. 궁극에는 해양 신산업 육성을 통해 해양 산업생태계를 이뤄내지 못하면 해양수도의 의미도 퇴색할 수밖에 없을 터인데 그게 그리 만만한 일이 아니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한국해양수산개발원, 국립수산과학원 등 해양 공공기관 집적에도 불구하고 지역에서 해양산업 혁신이 일어나지 않는 지금의 현실을 곱씹어 봐야 한다. 대한민국을 대륙의 수도와 해양의 수도로 나누는 정도의 파격적 지원을 쏟아부어야 서울을 중심으로 수도권이 형성됐듯 부산을 중심으로 해양권을 만드는 일이 현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 도전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최종 정책 결정권자의 의지겠지만 지역사회가 한마음 한뜻으로 힘을 모으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부산 경제의 속절없는 추락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가 위기 돌파를 위해 한 방향으로 힘을 뭉쳤던 적이 있느냐를 생각해 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해수부 이전을 둘러싼 정치적 공방의 조짐은 그래서 우려스럽다. 지역 정치권의 맹주인 국민의힘 내부에서 해수부 이전을 둘러싸고 불협화음이 나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부와 민주당이 해수부 부산 이전을 내년 지방선거를 위한 정략으로 접근한다면 그 또한 위험천만한 일이다.

해양수도 부산은 특정 정치 세력의 전유물이 아니다. 2000년 12월 18일 해양수도 부산을 선포한 것은 당시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안상영 시장이었다. ‘시민이 행복한 해양수도 부산’을 시정 슬로건으로 앞세웠던 것은 해수부 장관을 지냈던 더불어민주당 소속 오거돈 시장이었다. 해양수도 부산은 시민들의 오랜 염원이었고 이뤄야 할 꿈이었다는 이야기다. 해수부 이전을 통해 온 마지막 기회를 지역사회가 지혜를 모아 부산 도약의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 이는 대한민국 성장잠재력 회복의 새로운 돌파구도 될 것이다. 해양수도 부산의 꿈이 용두사미가 되면 부산의 도약도 대한민국의 미래도 끝이다.

강윤경 논설주간 kyk93@busan.com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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