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용후핵연료 관리비 배 인상 고시 흐지부지 배경 밝혀야
파장 피하려 은폐 의혹 국민 알권리 침해
임시 보관 고착화 주민 안전 무시 지적도
원자력발전소에서 연료로 사용한 뒤 배출하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인 사용후핵연료는 핵 종류에 따라 반감기만 수 만년 가량 소요된다. 사용후핵연료 영구 처분시설이 없는 우리나라는 사용후핵연료를 발전소 내 수조, 건식저장시설로 옮겨 저장하는 수순을 밟는다. 정부는 사용후핵연료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놓고 공론화위원회를 출범하는 등 그동안 대책을 모색했으나 별다른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 와중에 정부가 사용후핵연료 관리 비용을 투명하게 고시하지 않고 사실상 은폐한 것으로 드러났다. 정부 스스로 원전 정책에 대한 국민 불신을 조장한 셈이다. 원전 인접 지역인 동남권 주민들의 불안감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사용후핵연료의 안전한 관리와 영구처분 등을 위해 관리 비용을 부담한다. 2년마다 열리는 ‘방사성폐기물관리비용 산정위원회’가 한수원의 관리 부담금을 결정한다. 2013년 부담금을 다발당 3억 2000만 원으로 인상한 이후 부담금은 동결됐다. 그런데 정부는 2023년 경수로형 연료 다발당 기존의 배 이상인 6억 6000만 원 상당의 비용이 필요하다고 계산했다. 부담금 인상은 발전 단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당시 후속 조치는 없었다. 재산정 결과가 고시되지 않으면서 외부에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것이다. 일부 관계자들만 그 내용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원전 관리가 주먹구구로 진행된다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원전에서 배출되는 사용후핵연료 처리를 위한 부담금은 발전 단가에서 적잖은 부분을 차지한다. 따라서 부담금 상승은 전력 수급 계획이나 에너지 정책 설계에 영향을 준다. 한수원은 전체 원전에 대한 부담금으로 연간 8000억 원을 내는데 이 결과가 정확하게 고시됐다면 비용이 배로 증가하고, 결국 전기료 인상 압박 요인이 됐을 것이다. 이는 상당한 파장을 불러일으켰을 사안이다. 문제는 누가, 어떤 이유로 고시를 하지 않도록 주도했느냐는 것이다. 현재는 단가 상승을 막으려는 원전 업계 등에 의혹의 눈길이 쏠린다. 탈원전 주장 등에 빌미를 제공하지 않기 위해 고시를 하지 않았다면 국민의 알권리를 정면으로 침해한 중대한 문제다.
특히 부담금을 현실화하지 않은 것은 사용후핵연료를 임시 보관하는 현재 시스템을 고착화시킬 우려가 크다. 사용후핵연료 처리용 방폐장 설치는 막대한 재원을 필요로 한다. 사용후핵연료가 누적되는 상황에서 부담금 인상을 미룬 것은 영구 방폐장에 대한 의지조차 없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최근 국내 최초로 해체 결정된 고리 1호기도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소가 포화상태에 근접했는데도 영구 방폐장 계획은 답보 상태다. 해당 부지 자체가 ‘영구 방폐장화’될 우려가 높은 것이다. 부담금 인상을 고시하지 않은 것은 부산 등 원전 주변 지역 주민들의 안전과 생명을 무시한 무책임한 행태다. 그 배경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