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인도네시아 외교, 전환점에 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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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일 부산외대 명예교수·인도네시아국립UI대 객원교수





최근 며칠 사이 한-인도네시아 외교관계 지평에 지각 변동에 비유될 수 있는 대형 외교 사건이 발생했다. 필자는 지난 6월 중순께 한국에서 자카르타로 들어 오는 길에 인천공항에서 TV 뉴스를 통해 이재명 대통령이 캐나다에서 개최되고 있는 G7정상 회담에 참석해 서방 지도자들과 정상 외교 활동을 펼치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같은 날 오후 자카르타 숙소에 도착하여 현지 TV를 통해 프라보우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러시아가 G7회의에 맞대응하는 성격으로 개최하고 있는 SPIEF 2025에 참석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함께 글로벌 사우스의 단합을 논하고 있는 장면을 보았다.

물론, 프라보우 대통령이 참석 배경에 대해 "G7과 SPIEF 양쪽으로부터 초청을 받았으나, SPIEF로부터 먼저 초청을 받아 참석한 것이니, 너무 비약은 말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나 독립 후 전통적으로 비동맹 외교노선을 견지해 온 인도네시아가 "우리나라가 참가한 G7과 대립관계에 있는 SPIEF에 참가한 사실"에 대해 우리 외교 당국은 배경 분석과 함께 향후 한-인도네시아 관계에 미칠 여파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프라보우 대통령이 이러한 선택을 하게 된 이면에는 최근의 국제 정치 상황이 영향을 미친 측면과 함께 그의 담백한 퍼서낼리티(Personality)와 관계가 있다고 분석된다. 인도네시아와 종교 외교적으로 각별히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이 미국이 지원하는 이스라엘에 의해 1년 반에 걸친 무력 침공을 받아 5만여 명의 인명 희생을 겪고, 사회 인프라 대부분이 처참하게 파괴 당한 모습, 그리고 최근에는 미국과 이스라엘이 선제적으로 이란을 공격하는 것을 보면서, 그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행위를 이중잣대에 의한 심각한 반인도주의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도 불구하고, 독립 후 비동맹을 일관되게 시그니처 외교 기조로 유지해온 인도네시아가 어느 한 쪽 진영에 적극 가담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다만, 한-인도네시아 관계의 하모니를 염원하는 필자가 우려하는 대목은, 양국 간 외교 관계 보다 경제 분야 협력에 미칠 영향이다. 일반적으로 국가의 외교 정책은 경제, 국방, 교육, 문화 정책보다 상위 개념으로 이해된다. 다시 말해, 인도네시아가 중-러에 밀착할 경우, 우리와의 통상, 투자, 문화 등 분야에서 특히 우리의 자원외교, 방산 수출, 대형 국책건설 부문에서 이미 중국에 비해 열세인 상황이 더욱 고착화될 가능성 때문이다.

아무튼, 이번 사건으로 인해 일시적으로 나마 한-인도네시아 양국의 외교 노선의 차이점이 명백히 노출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지금까지는 양국 지도자들이나, 학자들은 양국 외교 노선의 차이점을 인지하면서도 애써 외면해 온 측면도 있다. 드러내 놓고, 차이점을 얘기하면 우호 협력 분위기를 깰 것을 염려하여 의도적으로 그렇게 대응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번 경우를 포함해 최근에 목격된 외교적 상황들, 이를 테면 정상외교를 중시하는 프라보우 대통령이 동북아 3국 가운데 우리나라만 패싱한 점, 이재명 대통령 취임 후, 정상 간 취임 축하 통화가 다른 아세안 나라들보다 지연된 점 등을 볼 때, 이제는 솔직히 차이점과 그 배경을 상호 이해하고, 존중하는 새로운 입장을 강구하며, 나아가 양국이 공통적으로 협력을 필요로 하는 통상, 투자, 관광, 문화, 교육, 인력 등 분야의 협력 강화에 보다 비중을 두는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아울러, 인도네시아 정치에서 대통령 프라보우의 파워가 외교는 물론 통상 등 전 영역에 걸쳐 절대적인 점, 그의 퍼서낼리티가 매우 강한 점, 그가 국방장관 시절 우리나라와 불편한 현안들이 있었다는 점 등을 유념하여, 인도네시아 현지에서 위기에 처한 양국 관계를 이끌어갈 차기 주인도네시아 공관장은 특별히 프라보우 정부 인사들과 폭넓은 인적 네트워크를 가지고, 현지 사정에 정통한 인사를 중용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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