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피난의 항구’ 부산, 난카이 대지진 준비해야 할 때
이동규 동아대 경찰학과 교수
일본 정부가 최근 발표한 ‘난카이 해곡 거대 지진’ 피해 시나리오는 가정이 아니라 예고된 미래다. 시즈오카현부터 미야자키현 앞바다까지 이어진 해구를 따라 발생할 초대형 지진은 규모 9.0에 달하며, 약 100~150년 주기로 반복돼 왔다. 일본 정부는 향후 30년 내 80% 확률로 이 지진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지난 3월 일본 정부가 발표한 피해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직접 사망자는 최대 29만 8000명, 재해 관련 사망자는 5만 2000명에 이른다. 또 건물 235만 동이 붕괴되고 피난민은 무려 1230만 명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토목학회는 경제적 피해가 1466조 엔(한화 약 1경 3800조 원)에 달하며, 피해 복구에는 약 22년이 소요될 것으로 분석했다.
문제는 충격이 결코 일본만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난카이 해곡은 부산에서 불과 220km 떨어져 있다. 지진이 발생할 경우 규슈 남부에서 가까운 부산은 가장 유력한 피난지 중 하나가 된다. 수십만 명의 생존자가 바다를 건너 부산으로 향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이 시나리오에 준비돼 있는가? 지금까지 우리의 재난 대응은 대부분 단기적이며, 국내 중심의 수습에 그쳤다. 그러나 난카이 해곡 지진은 장기 이재민의 국제적 이동을 수반하는 초국경적 복합재난이다. 이제는 ‘국제 재난 대응체계’ 구축과 ‘장기 이재민 수용 전략’이 부산이라는 도시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돼야 할 시점이다.
부산은 김해공항과 부산항, KTX 등 접근성이 뛰어난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더불어 도심에는 리모델링 가능한 빈집과 저이용 공공시설이 1만 8000채 이상 분포해 있다. 이 중 절반만 활용해도 약 2만 5000명, 전면 활용 시 5만 명 이상의 장기 체류자를 수용할 수 있다. 또 부산은 의료거점 도시로서 감염병 전문병원, 외상센터, 다언어 진료가 가능한 대학병원 등의 기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트라우마 회복과 감염병 대응 역량도 충분히 축적하고 있다.
가능성이 곧 준비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핵심은 사후 수습이 아닌, 사전에 작동하는 재난 완화 체계를 구축하는 일이다. 첫째, 한일 간 조기경보 시스템과 UN 재난정보 공유시스템(API)을 확보해 신속한 정보 연계와 초동 대응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민·관 협력 체계를 정비하고, 재난 수습이 정치화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셋째, 평상시 도심 빈집과 차량숙박(차박) 가능 구역을 관리하고, 비상시 커뮤니티형 이재민 주거지로 전환 가능한 체계를 갖추는 한편, 도시형 스마트팜을 연계한 자립형 회복 모델을 조기에 구축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시민 수용성과 예산의 투명성이다. 재난 수용 기반은 일방적 행정이 아닌, 시민사회와의 공감과 참여 속에서 조율돼야 한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한일 공동 재난회복력 특별기금’ 조성을 제안한다. 빈집과 차량 기반 시설의 리모델링, 의료장비 확보, 재난심리 전문가 양성 등에 투자가 이뤄져야 하며, 국제 NGO와 유엔기구의 참여도 유도할 필요가 있다.
제도적 기반도 병행돼야 한다. ‘재난대피 및 국제 이재민 임시주거 지원 조례’ 제정과 함께, 출입국관리법 개정을 통한 ‘재난 임시비자’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또한 후쿠오카, 사가, 나가사키 등 일본 지자체와 부산·울산·경남 간 ‘지방정부 간 재난 협정’을 체결해 피난 경로, 인적 자원, 이송 체계 등을 사전 공유해야 한다. 김해공항과 부산항에는 ‘국제 인도지원 게이트’를 설치하고, 정례적인 한일 공동 훈련과 정보 공유를 제도화해야 한다. 이는 재난을 ‘국경의 문제가 아닌 사람의 문제’로 다루겠다는 선언이며, 동북아 재난 거버넌스의 새 지평이 될 수 있다.
6·25전쟁 당시 부산은 수백만 피난민을 품은 ‘피난의 항구’였다. 다가올 초대형 재난 앞에서 부산은 ‘재난 회복과 연대의 항구’, ‘아시아의 재난 거점 도시’로 거듭날 준비를 지금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