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요즘 누가 신문 보냐고?…기자가 직접 배달해 봤다 [기자니아]

김동우 기자 frien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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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으로 뉴스 보는 시대에도 독자 문앞에
산복마을 많은 원도심, 특히 배달 어렵고 위험
250부 챙겨 밤새 가파른 계단·좁은 골목 누벼
전성기 땐 배달원 100명…구독 급감 미래 고민

[편집자주] 자타가 공인하는 세계 2위 항만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한국전쟁 시기 피란민들의 아픈 역사가 남아있는 산복도로까지. 부산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다양한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이내믹 한 풍경이 있는 만큼 부산에서는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직업들도 많습니다. 이외에도 부산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환경에서 일하는 분들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부산일보는 이러한 분들을 '기자니아' 영상 콘텐츠에 담고 있습니다. ‘기자니아’는 ‘키자니아(어린이 직업체험 시설)’와 ‘기자’의 합성어로, 기자들이 직접 직업을 체험해 본다는 콘셉트입니다. 체험과 동시에 직업에 얽힌 부산만의 스토리를 발굴하고 이곳에서 일하는 분들의 노고를 담고자 합니다. 영상들은 '부산일보 유튜브' 채널 혹은 유튜브에 '기자니아'를 검색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5%. 2023년 한국갤럽의 조사에서 ‘종이신문을 구독한다’라고 답한 비율입니다. 같은 해 한국언론진흥재단의 발표에서도 다양한 매체 가운데 ‘종이신문에서 뉴스를 접한다’라고 밝힌 비율은 10.2%에 불과했습니다. 사실 ‘신문 산업이 위기’라거나, ‘신문의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말도 구문(舊聞)이 된 지 오래입니다. 신문을 보며 자랐고, ‘신문사’에서 일하는 기자에게도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에서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뉴스를 보는 게 익숙한 시대입니다.

얼마 전 부산의 한 중학교에서 지역 신문기자를 소개하는 진로 특강에 연사로 참여했습니다. 본격적인 강의에 앞서 그날 발행된 <부산일보>를 들고 보여줬는데, 한 학생이 “종이신문을 살면서 오늘 처음 봤다”라고 말했습니다. 크게 놀랍지는 않았지만 기자가 몸 담고 있는 신문사라는 조직, 신문이라는 미디어의 미래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신문은 분명 과거처럼 널리 읽히지도,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매체는 아닙니다. 부산일보를 비롯해 신문을 발행하는 거의 모든 언론사들도 이제는 지면보다 디지털, 모바일 환경으로 뉴스를 전달하는 방식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도 신문으로 하루를 펼치는 구독자가 있고, 이들을 위해 매일 새벽 부산 곳곳을 누비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신문배달원입니다. 특히 부산은 아파트 외에도, 가파른 산복도로와 좁은 골목을 따라 주택가가 곳곳에 형성돼 배달이 어려운 지역으로 꼽힙니다. 지형 탓에 이동이 불편한 고령층에게 신문배달원은 문앞에서 세상과 만날 수 있도록 돕는 연결고리이기도 합니다. 기자로 일하면서 기사를 쓰고, 지면을 편집하기도 해봤지만, 정작 '상품'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닿는지는 모르고 있었습니다. 기자가 직접 신문을 들고 거리에 나선 이유입니다.


매일 오후 8시 30분, 배송된 신문을 안으로 옮기면서 지국의 하루가 시작됩니다. 이정 PD luce@ 매일 오후 8시 30분, 배송된 신문을 안으로 옮기면서 지국의 하루가 시작됩니다. 이정 PD luce@

■오후 8시 30분, 시작되는 하루

지난해 11월 19일, 오후 8시 30분. 부산 동구 범일동의 한 건물 앞으로 신문을 가득 실은 트럭이 도착했습니다. 약 1시간 전 경남 김해시의 인쇄소 윤전기에서 출력된 11월 20일 자 <부산일보> 1200여 부입니다. 트럭에서 신문 꾸러미를 내려 지국 안으로 들여놓고 있으니 곧 부산일보 범일지국 황수성 지국장이 출근했습니다. 황 지국장은 이곳에서 배달원 28명과 함께 부산 동구와 부산진구 일대 신문 유통을 책임집니다.

이윽고 다른 신문들도 차례대로 도착하고, 인사를 나눌 겨를도 없이 지국의 하루가 시작됐습니다. 먼저 신문 꾸러미를 덮고 있는 비닐 포장과 끈을 제거합니다. 그리고 20여 종의 신문들을 다시 20부, 80부 단위로 미리 나눕니다. 곧 도착할 배달원들이 각자 담당하는 부수만큼 챙겨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여기에 비닐을 씌우고, 광고가 예정된 날에는 전단을 신문 사이에 넣는 삽지 작업이 추가됩니다.


조창환(사진 오른쪽) 씨가 기자에게 신문 배달 요령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효율적인 배달을 위해 신문별로 오토바이에 싣는 순서와 접는 방향 등이 정해져 있습니다. 이정 PD luce@ 조창환(사진 오른쪽) 씨가 기자에게 신문 배달 요령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효율적인 배달을 위해 신문별로 오토바이에 싣는 순서와 접는 방향 등이 정해져 있습니다. 이정 PD luce@

곧이어 오늘 하루 기자와 함께 다닐 신문 배달원 조창환(부산 동구·60) 씨가 도착했습니다. 5년 경력의 조 씨는 동구 범일동과 부산진구 범천동 일대를 담당합니다. 매일 새벽 오토바이를 타고 신문 250여 부를 빠르고 정확하게 배달하는 것은 물론, 구독료를 수금하는 업무도 그의 몫입니다.

이날 배달할 신문을 조 씨가 불러주는 부수대로 챙겨 오토바이 앞뒤로 가득 실었습니다. 신문에 따라 짐칸에 넣는 순서, 접는 방향까지 모두 정해져 있습니다. 동선과 그에 따른 배달 신문 종류 등을 고려한 방식입니다. 조 씨는 “처음 일을 시작할 때 배달해야 하는 주소는 전임자에게 인수인계를 받지만, 효율적인 방법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직접 터득하는 수밖에 없다”라고 전했습니다. 조 씨를 따라나서려는 기자에게 황 지국장은 “조 씨가 담당하는 지역은 배달원들 사이에서도 힘든 코스로 꼽힌다”라며 “단단히 각오해야 한다”고 웃으며 말했습니다.


부산 부산진구 범천동의 한 주택가에서 기자(사진 오른쪽)가 조창환 씨를 따라 다음 배달 장소로 뛰어가고 있습니다. 이정 PD luce@ 부산 부산진구 범천동의 한 주택가에서 기자(사진 오른쪽)가 조창환 씨를 따라 다음 배달 장소로 뛰어가고 있습니다. 이정 PD luce@

■<부산일보> 배달하며 알게 된 '진짜' 부산

자정 무렵, 본격적인 배달이 시작됐습니다. 처음 찾은 곳은 부산진구 범천동. 가파르고 좁은 골목길을 따라 주택과 상점이 들어선 곳입니다. 주소도 모른 채 배달에 뛰어든 기자는 조 씨의 오토바이를 쫓아 밤거리를 열심히 뛰어다닐 수밖에 없었습니다.

신문을 배달하는 방식도 집마다 제각각이었습니다. 어릴 적 아파트 우유 투입구 안으로 배달된 신문을 기억하던 기자에게는 생소한 모습이었습니다. 잠긴 여닫이문을 잡고 틈을 만들어 그 사이로 신문을 밀어 넣는 곳이 있는가 하면, 대문 밖에서 이층집 문 앞으로 신문을 던져야 하는 곳도 있었습니다. 기자가 신중하게 거리를 가늠한 뒤 곱게 접어 투척한 신문은 담장 너머 옆집 마당으로 불시착했습니다. 당황한 기자를 뒤로하고 조 씨가 여분으로 챙긴 신문을 다시 던졌습니다. 신문은 포물선을 그리며 문 앞에 정확하게 안착했습니다.

집집마다 신문 투입을 원하는 장소나 방식이 다릅니다. 조창환 씨가 부산진구 범천동의 한 상가에 신문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이정 PD luce@ 집집마다 신문 투입을 원하는 장소나 방식이 다릅니다. 조창환 씨가 부산진구 범천동의 한 상가에 신문을 투입하고 있습니다. 이정 PD luce@

다음으로 동구 범일동으로 향했습니다. 안창마을로 불리는 이곳은 부산의 전형적인 산복마을입니다. 산을 따라 차로 한참을 이동하니 방금 떠난 범천동의 주택가보다 더 가파르고 좁은 골목길과 마을이 나타났습니다. 이곳은 구독자가 많지 않지만, 집마다 떨어져 있어 배달에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특히 땅이 어는 겨울엔 오토바이가 넘어질 수 있어 위험한 곳으로도 꼽힙니다. 조 씨는 “처음 안창마을에 왔을 땐 골목이 많고 어두워 무섭기도 했다”라며 “다녀보니 공기가 좋고 하늘이 맑아 별도 잘 보이는 아름다운 동네라는 사실을 알게됐다”라고 말했습니다.

부산 동구 범일동 안창마을에서 기자가 신문을 우편함에 투입하고 있습니다. 이정 PD luce@ 부산 동구 범일동 안창마을에서 기자가 신문을 우편함에 투입하고 있습니다. 이정 PD luce@
부산 동구 범일동에 자리한 안창마을은 지형이 가파르고 계단과 골목길이 많아 신문 배달원 사이에서 난코스로 꼽힙니다. 이정 PD luce@ 부산 동구 범일동에 자리한 안창마을은 지형이 가파르고 계단과 골목길이 많아 신문 배달원 사이에서 난코스로 꼽힙니다. 이정 PD luce@

하지만 굽이굽이 이어지는 좁은 골목길이 아직 익숙하지 않은 기자에겐 스마트폰 지도 앱도 부정확한 이곳이 미로처럼 느껴졌습니다. 무수한 계단을 오르내리고, 골목을 헤매다 보니 시간은 어느덧 새벽 4시를 향했습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헐떡이는 기자에게 조 씨는 “신문 배달을 하면 따로 운동하지 않아도 저절로 건강해진다”라며 “쉴 때 부산일보를 보면 부산 돌아가는 소식도 알 수 있어 좋다”고 전했습니다. 서울에 살던 조 씨는 6년 전 부산에 정착했습니다.

아직 남은 신문이 많았지만, 뛰어다니는 기자의 속도에 맞추다 보니 배달이 평소보다 더뎠습니다. 결국 시간 내에 마치기 위해 조 씨가 남은 신문을 마저 배달하기로 하고, 기자의 체험은 여기서 마치기로 했습니다.

부산 동구 범일동 일대는 가파른 계단이 많아 신문을 배달하기 위해 강한 체력도 필요합니다. 이정 PD luce@ 부산 동구 범일동 일대는 가파른 계단이 많아 신문을 배달하기 위해 강한 체력도 필요합니다. 이정 PD luce@

■언젠가 신문이 사라질까요?

“고생 많았죠?” 보급소에 돌아오니 황 지국장이 기자에게 뜨거운 믹스 커피를 건냈습니다. 황 지국장은 고등학생이던 50여 년 전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 처음 <부산일보>를 배달하며 신문 유통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민주화의 열기와 함께 열린 신문의 전성기, 100여 명이 넘는 배달원과 함께 신문 산업의 일익을 담당했다는 자부심은 지금도 생생합니다. 황 지국장은 “잘 나갈 땐 신문 1부를 기사에게 주면, 시내버스를 공짜로 탈 수 있었던 시절”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신문 산업이 위축되고, 구독자도 급감하면서 지국 운영은 나날이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황 지국장은 “무료로,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뉴스를 접할 수 있는 시대에 종이신문이 살아남기는 쉽지 않다”면서도 “정확하고 가치 있는 뉴스가 균형 있게 선별된 신문만의 장점도 크다”고 전했습니다. 이어 “현장에서 일하는 기자들이 좋은 콘텐츠를 위해 더 고민하고 노력하면 좋겠다”며 “나도 힘닿는 때까지, 독자가 있는 한 끝까지 신문 유통을 멈추지 않겠다”고 덧붙였습니다.

<부산일보> 한 달 구독료는 1만 5000원입니다. 신문 1부를 집 앞에서 받아보기까지 투입되는 많은 이들의 노력을 환산한 가격으로 적당한지 모르겠습니다. 비록 하루지만 매일 새벽, 집 앞까지 신문을 배달하는 이들과 함께 땀을 흘려보니 지금까지 썼던 기사 하나, 문장 한 줄이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언젠가 신문이 사라지는 날이 올까요?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오늘은 아닙니다. 신문을 읽는 독자가 있는 한 내일도 배달은 계속됩니다. 기자도 여러분의 구독료가 아깝지 않은 기사를 신문에 담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황수성 지국장(사진 왼쪽)은 50년 째 부산에서 신문 유통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배달을 마친 기자와 신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황 지국장은 “독자가 있는 한 끝까지 배달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정 PD luce@ 황수성 지국장(사진 왼쪽)은 50년 째 부산에서 신문 유통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배달을 마친 기자와 신문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황 지국장은 “독자가 있는 한 끝까지 배달을 멈추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이정 PD luce@


김동우 기자 friend@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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