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탄핵심판까지 정쟁 속으로 …혼돈의 정국
공수처-경찰 체포영장 불협화음에 여권 수사 정당성 공세 강화
‘내란죄 제외’ 두고 여권 6일엔 헌재 겨냥해 “야당과 짬짜미 하나”
사법부·수사기관 노골적 흔들기에 정국 혼돈 장기화 우려 커져
윤석열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과 탄핵소추안 심리 과정을 둘러싼 여야 공방이 격화되고 있다. 지난 3일 체포영장 집행에 실패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는 영장 만료 시한(6일 자정)을 코앞에 두고 경찰에 체포를 떠넘겨 논란을 키웠고, 국회 탄핵소추단이 탄핵 사유에서 내란죄를 제외한 것을 두고 ‘사기 탄핵’이라며 국회 재의결을 요구하는 여권은 이날 헌법재판소까지 겨냥하며 공세의 수위를 높였다. 수사도 탄핵심판도 정치 공방의 소용돌이에 빠지면서 추후 그 결과를 두고도 불복 움직임 등 사회적 분열이 가중될 것이라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여권은 이날 체포영장 집행을 두고 공수처와 경찰이 이견이 보이는 등 난맥상이 노출되자 이번 수사의 정당성에 대한 비판 목소리를 더 키웠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비대위 회의에서 “공수처가 현재 정국을 자신들의 지위를 공고하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며 사법 체계의 공정성을 크게 흔들고 있다”며 “공수처는 민주당의 정치 선동에 놀아날 것이 아니라 국격을 고려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임의 방식으로 수사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제력을 행사하지 않고 윤석열 대통령의 의사에 따른 수사를 진행해야 한다는 의미다.
윤 대통령 측 윤갑근 변호사도 이날 입장문에서 “공수처는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이 없음에도 경찰을 하부기관으로 다루고 있다”며 “수사권 독립을 염원하는 경찰 역시 공수처의 입맛대로 활동하는 것에 대해 자성할 것을 바란다”고 양 기관을 싸잡아 비판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공수처의 시녀로 위법한 영장 집행에 나설 경우 경찰공무원들에 직권남용을 하는 것”이라며 법적조치를 예고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민주당대로 공수처의 ‘무능력’을 성토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이날 “오동운 공수처장의 무능과 우유부단함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엄동설한에 밤새워 내란수괴 윤석열 체포를 촉구한 수많은 국민 앞에 부끄러운 줄 알라”며 “오 처장의 행태를 묵과하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대통령 수사를 총괄하는 공수처가 여야 양쪽으로부터 난타 당하면서 수사 자체의 신뢰성이 흔들릴 가능성마저 제기된다.
여권은 한발 더 나아가 국회 탄핵소추단의 ‘내란죄 제외’와 관련, 이날부터는 헌법재판소를 직접 겨냥하고 나섰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와 나경원·조배숙·박덕흠·박대출·이헌승·김상훈·윤영석·송석준 등 중진 의원들은 이날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를 항의 방문해 내란죄 제외는 탄핵소추의 중요한 사정 변경이기 때문에 헌재가 이번 탄핵안 자체를 각하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권 원내대표는 헌재가 이날 국회 탄핵소추단에 내란죄 철회를 권유했다는 일각의 주장을 반박한 데 대해서도 “여전히 의심을 거두지 않고 있다”면서 헌재와 민주당의 ‘짬짜미’ 의혹을 증폭시켰다. 그러면서 헌재가 대통령 탄핵심판에 대해 1주일에 2번씩 재판을 진행하는 데 대해 “헌재가 예단을 갖고 재판을 편파적으로 한다는 것이 우리 당 의원들의 의견”이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헌재에 계류 중인 중앙지검장, 감사원장, 국무위원 등에 대한 탄핵심판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당 지도부까지 가세한 헌재 비판은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공직선거법 최종심까지 시간을 벌겠다는 지연 전략 성격으로 보이지만, 이날 당 소속 영남권 의원들 다수가 윤 대통령 관저에 직접 찾아가는 등 당내 ‘윤 대통령 지키기’ 기류가 강화되는 양상도 뚜렷하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날 발표된 리얼미터·에너지경제신문 여론조사(2∼3일 전국 유권자 1001명 대상,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3.1%포인트,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참조)에서 국민의힘 지지도는 전주보다 3.8%포인트(p) 상승한 34.5%로 계엄 사태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
정치권이 사법부와 사정기관마저 정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으면서 비상계엄 사태로 조성된 정국 불안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이런 분위기가 지속된다면 수사와 헌재 심판 결과에 대한 불복 등으로 ‘심리적 내전’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비상계엄 사태의 최종 심판자 격인 사법부와 사정기관의 신뢰 문제까지 정치 공방의 소재가 되고 있다”며 “이는 국가 시스템 전체에 대한 불신을 낳으면서 엄청난 후폭풍을 야기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창훈 기자 jch@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