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특별건축구역, 부산 건축에 자극제 되려면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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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 훌륭해도 주변 경관 해치는 건물은 고민 필요

18일 시범사업 후보지 발표·심사
부산 미래 이끌어 갈 주요 전환점

짧은 기간 도시 맥락 읽어내기엔 부족
혁신적인 디자인도 필요하지만
지역 정체성·공공성도 중요한 가치

건축적 관점보다 도시적 관점 중요
사회적으로 용인 가능한 후보지 돼야

부산시 특별건축구역 활성화 시범사업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무엇보다 세계적인 건축가들이 참여하고 있고, 특별건축구역으로 지정되면 혁신적인 설계안이 실현될 수 있도록, 건폐율, 용적률, 건축물 높이 제한 등의 건축규제 완화는 물론이고 행정 절차 간소화 등 행정적인 지원 혜택이 주어져서다. 이에 세계적인 건축가의 혁신적이고 창의적인 설계안을 통한 도시 경쟁력 강화라는 긍정적인 평가도 일부 있었다. 그러나 지역 건축가의 역할 감소와 경쟁력 약화라는 지적과 함께, 특별건축구역 인센티브가 자칫 오용될 경우 도시경관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비판도 동시에 받아왔다. 이런 엇갈린 시선과 평가 속에서 18일 부산시청 대강당에서 ‘특별건축구역 활성화 시범사업’ 후보지에 대한 세계적 건축가들의 디자인 발표와 심사가 공개 진행된다.

시범사업을 바라보는 상반된 시선은 뒤로 하고, 이왕 하는 거 이제는 잘해야 한다는 것만 남았다. 여기서 ‘잘해야 한다는 건’ 무엇보다 기획 설계작(안)도 좋아야 하지만, 부산 도시 건축에 있어서 신선한 자극제가 될 만한 작품을 잘 선택(심사)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살아온 지역의 가치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음에도 단지 세계적 건축가라는 명성에 짓눌려 무분별하게 시범사업지로 선정하는 어리석음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 어떤 설계작 들어왔나

시범사업 후보지와 각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세계적 건축가(18일 발표순)는 △용두골 복합시설-2포잠박(2Portzamparc) △미포 오션사이드호텔-오엠에이(OMA) △남포동 복합타운-엠브이알디브이(MVRDV) △영도 콜렉티브힐스-엠브이알디브이(MVRDV) △남천2구역 재건축정비사업-도미니크 페로 아키텍처(DPA)이다. 반여 오피스텔(마이어 파트너스) 사업은 기획 설계안 제출 마감 기한 내에 전시용 모형이 제출되지 않아 공개 발표만 한다.

후보지 용도는 호텔, 오피스텔, 레지던스, 복리·공공시설, 아파트 등 다양하다. 이들 후보지 설계작에 대한 총평을 하자면 아쉽게도 디자인적 측면에서 깜짝 놀랄만한 작품은 보이지 않았다는 거다. 왜 이런 설계를 했는지 판단할 수 있는 도시 맥락적 차원의 근거 제시도 부족해 보였다.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도시 맥락을 읽어내기에는 현실적 한계도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다만 건축물의 입체감이나 신선함은 있었다.

이번 사업의 보조사업자로 참여하는 (사)부산국제건축제조직위원회의 이성호 집행위원장은 “세계적인 건축가와 손잡고 하는 것은 지역 건축사나 건축가들의 작품 퀄리티가 떨어져서가 아니라 지역 건축계와 시민에게 신선한 자극제가 되기 위함이다”고 말했다.

후보지 설계작 심사는 18일 오후 5시부터 1시간가량 부산시 미래건축혁신위원회에서 한다. 심사 위원은 국내 6명, 국외 2명을 포함해 모두 8명으로 구성돼 있다. 심사 위원들은 디자인(안), 특례 적용 사항, 공적 기능, 지역과의 연계성 등을 중점적으로 평가한다. 이와 함께 20여 항목으로 구성된 ‘특별건축구역 지정 심의 체크리스트’도 평가 기준이 될 예정이다. 이 체크리스트는 대체로 공공성 평가에 무게를 두고 있다. 요컨대 ‘사회적 공공성’ 평가 항목으로는 자원 재이용·재생 촉진, 주변 경관 및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건축디자인을 요구한다. 이 외에도 새로운 공간 구성이나 건축 기술 도입, 기존 공간 환경과의 조화와 균형, 외부와 공유하는 지역 커뮤니티 또는 공지 조성 등이 주요 검토 사항이다. 심사 결과는 오는 22일 시 설계 공모 누리집을 통해 발표될 예정이다.

■ 지역 정체성 제대로 담아내길

부산시는 세계적 건축가들의 기획 설계를 통해 조화롭고 창의적인 건축물 디자인을 구현하고, 이를 통해 시민 생활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겠다는 계획이다. 부산국제건축제조직위원회는 “이번 시범사업에서 필요로 하는 작품은 혁신적인 디자인 그 자체”라면서 “새로운 디자인 방식이 제시되면 좋겠다”고 했다. 물론 혁신적인 디자인도 중요하다. 하지만 이게 전부라곤 할 수 없다. 지역 건축계에서는 이에 못지않게 부산의 정체성과 매력을 잘 살린 설계안을 기대한다. 해양도시 부산의 독특한 정체성과 매력을 잘 살리면서도 미래지향적인 작품이 선정되길 바란다. 건축은 환경 안에 놓여 있고, 환경을 형성하며, 도시 환경과 대화한다. 디자인적 심미성도 중요하지만 도시 경관의 조화는 어쩌면 더 중요할 수 있다.

지역의 한 건축가는 “특별건축구역 선정작은 디자인과 건축가의 명성보다도, 지역성에 걸맞은 독창성이 우선됐으면 좋겠다. 즉 장소의 적합성에 부합되는 기능, 형태 그리고 공공공간의 아이디어 등 종합적으로 판단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특별건축구역 지정 심의 체크리스트에도 담겨 있지만, 건축의 공공성은 충분히 고민되고 고려돼야 한다. 우리가 도시나 건축의 공공성에 주목하는 이유는 그것이 도시에서 삶을 이야기하는 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히 건축의 관점이 아니라 도시(Urban)의 관점에서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사유지가 지배하는 도시 공간에서 공동체의 가치, 공유와 공존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건축물을 보고 싶은 게 시민의 열망이다. 이런 건축물이 많을 때 그 도시는 ‘더불어’ 사는 삶을 구현하는 도시가 될 것이며, 우리가 미래 세대에게 물려줄 지속가능한 도시의 참모습이 될 것이다. 강기표(아체 ANP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사는 “세계적인 건축가라는 명성에만 의존해 명품백 하나 가진다는 내세우기식 사업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 부산 건축 도약 계기 되어야

부산시의 특별건축구역 시범사업은 천편일률적인 아파트나 성냥갑 건물을 막자는 의도여서 실험 가치는 충분하다. 하지만 각종 건축규제 완화 혜택은 도시 개발을 부추기는 요소가 될 수 있다. 자칫 이 사업이 사업성 확보를 위한 수단으로 악용되어서는 곤란하단 얘기다. 특별건축구역 지정으로 특색 있는 개발을 하면 낙후된 원도심을 재탄생시킬 수 있지만, 이미 그 지역엔 그와 상관없이 개발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건축구역 시범지역 선정에 대한 종합적이면서도 일관된 철학이 요구되는 이유다. 이를 제어하지 못하면 결과는 뻔할 수밖에 없다. 점(건축물)은 훌륭한데 선(주변 경관)을 해치는 건물만 남을 수 있다. 해안가를 점령한 나 홀로 초고층 건물이 그 증거다.

이번에 시범사업지를 선정해 놓으면, 그다음은 비슷한 작품이 나왔을 때 안 해 줄 수 없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합의 또는 용인될 수 있는 후보지가 선정되어야 한다. 그래야 뒷말이 없다. 설계작이 들어섰을 때 주변 경관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충분히 검토돼야 한단 얘기다.

이번 사업을 계기로 부산 건축이 한 단계 도약하려면, 시는 ‘세계적 건축가들이 과연 3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우리의 가치나 우리 지역의 문제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는가’에 대해 다시 한번 질문을 던져야 한다. 자칫 ‘한국 건축가들은 별 볼 일 없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우리 사회에 던져줄 수도 있기에 하는 말이다.

여하튼 이번 시도가 부산 도시 건축에 신선한 자극제가 됐으면 한다. 더불어 이번 사업이 부산의 미래를 이끌어 갈 중요한 전환점이 되길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히 멋진 건축물이 최우선이 아니라, 부산의 정체성을 반영한 창의적인 디자인이면서 소통의 공간을 제공하는 건축물이 선정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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