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세계유산 관리, 이대로 둘 것인가
지자체 간 갈등 부추기는 가야고분군 통합관리기구
지난해 9월 17일 일부 가야고분군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경남 김해시 대성동, 경남 함안군 말이산, 경남 합천군 옥전, 경남 고성군 송학동, 경남 창녕군 교동·송현동, 경북 고령군 지산동, 전북 남원 유곡리·두산리의 고분군이 그것이다.
하지만 축제 분위기도 잠시, 지금 해당 지자체들 사이에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세계유산이 된 가야고분군들을 누가 관리하느냐를 두고 다투는 것이다. 정확히는 ‘가야고분군 통합관리기구’(이하 통합관리기구)를 어느 지자체가 유치하느냐의 다툼인데, 국가유산청을 비롯한 중앙정부는 수수방관하고 있어 좀체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차제에 세계유산의 관리 체계를 새롭게 정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해시-고령군의 다툼
다툼의 주역은 김해시와 고령군이다. 김해시는 통합관리기구의 김해 설치를 촉구하는 건의문을 지난달 23일 국가유산청에 제출했다. 건의문은 김해시장만이 아니라 함안·창녕·고성·합천의 지자체장까지 참여한 공동 건의문이었다. 거기다 “통합관리기구의 김해 설치를 지지한다”는 경남도의회, 가락종친회의 입장문도 포함됐다. 지난 2일에는 김해시의회가 통합관리기구의 김해 설치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김해시는 지난달 초에는 남원시에도 김해 설치에 대한 지지와 협력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령군은 이런 움직임에 반발하며 실력행사에 나서고 있다. 최근 구성한 ‘통합관리기구 유치 범군민 추진위원회’가 그것이다. 추진위원회에는 고령군민을 비롯해 학계 전문가, 공무원 등이 대거 참여한다. 고령군의회도 지난달 27일 통합관리기구 고령군 설립 촉구 결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이 같은 두 지자체 간 다툼은 경남도와 경북도 두 광역지자체로 확산할 조짐이라, 이러다 가야고분군 관리가 장기간 표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용역 결과 논쟁만 분분
세계유산이 된 가야고분군은 7개 기초지자체에 걸친 연속유산이라 지자체 간 통합 관리가 필수적이다. 유네스코도 세계유산 등재 조건으로 가야고분군의 통합 관리 체계를 구축할 것을 주문했다. 그에 따라 가야고분군이 있는 7개 기초지자체와 경남도·경북도·전북도 3개 광역지자체로 구성된 ‘가야고분군 통합관리지원단’은 통합관리기구를 지자체 공동의 재단법인 형태로 설립키로 하고, 지난해 8월 한국지식산업연구원에 ‘통합관리기구의 입지 선정과 운영방안에 대한 연구 용역’을 의뢰했다. 용역 결과는 올해 7월 발표됐는데, “김해가 최적지”라는 것이었다. 연구원은 입지 선정 지표로 인구, 지방세 규모, 지역총생산, 인구 증가율, 재정 자립도, 인구밀도, 관리 이동거리 등을 활용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고령군이 해당 결과에 반발하고 나섰다. 인구나 재정 규모 등 입지 선정 지표가 세계유산 관리·보존과는 무관한 데다 지나치게 김해에 유리하게 설정됐으며, 용역 결과 세부 내용도 공개되지 않아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고령군은 또 용역 결과가 법적 구속력이 없다면서 통합관리기구가 김해에 들어서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대가야냐 금관가야냐
고령군은 통합관리기구는 고령에 설치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령이 대가야의 왕도였다는 점, 700여 개의 봉분이 있는 지산동 고분군이 면적이나 고분 수에서 다른 가야고분군보다 월등히 큰 규모라는 점, 국내 최대 순장 흔적이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고령이 가야 문화의 대표성을 가지며, 따라서 통합관리기구는 고령에 설치되는 게 합당하다는 논리다. 고령군의 이런 주장에 경북도가 공감을 표하며 힘을 보태고 있다.
김해시가 고령군의 이런 주장을 용납할 리 없다. 입지 용역 결과가 나온 만큼 소모적인 논쟁을 그치고 김해에 신속히 통합관리기구를 설치하자는 입장이다. 그러면서 김해가 가야 역사의 시초인 금관가야의 중심지였으며, 따라서 가야의 정체성이 오롯이 배어 있는 곳임을 강조한다. 김해시는 김해는 물론 김해와 인접한 경남 지역에 가야의 주요 유적이 밀집해 있다는 사실도 내세운다. 실제로 전국 가야 유적의 67%가 경남에 집중돼 있고,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가야고분군 7개 중 5개가 경남에 위치한다. 국립김해박물관, 국립가야역사문화센터 등 가야 역사와 문화 연구·보존을 위한 기관을 보유하고 있는 점, 교통망과 기반시설 등 세계유산의 관광자원화에 유리한 환경도 김해시가 내세우는 강점이다.
국가유산청의 수수방관
두 지자체의 다툼이 쉬이 끝날 것 같지 않다. 오히려 다툼은 금관가야-대가야 대립 구도를 보이며 경남과 경북의 다툼으로 확대될 조짐까지 보인다. 이런 형편에도 김해시와 고령군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협상하는 대신 사실상 통합관리기구 입지 결정권을 가진 국가유산청에 매달린다. 김해시는 김해를, 고령군은 고령을 통합관리기구 설립지로 확정·발표해 줄 것을 각자 국가유산청에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가유산청은 통합관리기구 설립은 지자체 협의사항이라며 수수방관하는 모습이다. 해당 지자체들의 중재 요청에도 조만간 관련 회의를 열겠다는 입장만 밝혔을 뿐, 구체적인 중재 의지는 보여 주지 않는다. 한국지식산업연구원의 연구 용역 결과에 대해서도 자신들이 진행한 용역이 아니라면서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고 한다. 이는 해당 용역 결과가 통합관리기구 설립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로 해석돼 논란을 증폭시킨다. 국가유산청이 이처럼 소극적인 자세로 대응하는 사이 가야고분군 관리 문제는 해법을 찾지 못하고 헤매는 형국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배가 산으로 가는 꼴”이라는 탄식과 함께 “세계유산 관리능력이 없다는 오명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체계 정비할 좋은 기회
세계유산은 인류가 함께 보호하고 발전시켜 나가야 하는 보편적인 가치를 갖는다. 유네스코 등재보다 이후 지속가능한 관리 방향을 모색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선 그에 대한 법적 근거가 아직 불충분하다. ‘세계유산의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특별법’(이하 세계유산법)이 올해 5월 시행됐지만 세계유산협약과 그 운영지침이 규정한 사항을 충족하기에는 여전히 허점이 많은 것이다. 특히 가야고분군처럼 많은 지자체가 관여하는 세계유산의 경우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통합관리가 필요한데도 그에 대한 세밀한 기준과 절차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가야고분군 통합관리기구 설립을 둘러싼 작금의 분쟁도 여기에 기인한다. 통합관리기구를 국가유산청이 간명하게 지정하거나 그게 어렵다면 스스로 직영하면 좋을 텐데, 관련 조건이 까다롭고 책임 소재 등이 불분명하다 보니 각 지자체에 책임과 역할을 떠넘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설사 극적인 타협이 이뤄져 어느 한쪽에 통합관리기구가 설치된다고 하더라도 예상되는 폐해는 많다. 특정 지역 고분군에 대한 관리 계획의 주체, 이해 관계자의 역할과 책임, 지자체 간 재정 부담 비율, 유적 정비 방식 등에서 이견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고, 그럼에도 이를 조정하고 해결하는 수단이 현행 제도 아래에선 마땅치 않다는 사실이 그렇다. 지자체들이 세계유산을 경제적 이익 창출을 위한 관광자원으로만 여겨 각종 사업을 무분별하게 벌이는 폐단도 미연에 방지할 필요가 있다.
세계유산 관리 체계를 새롭게 정비해야 할 필요성이 그래서 제기된다. 보존에 미비점이 무엇인지, 외부로부터의 각종 개발 압력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전문성과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관리기구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등에 대한 해답을 제도적 장치로 확실히 수립하자는 것이다. 세계유산 관리를 놓고 지자체 간 분쟁이 발생할 경우 이를 제어하고 조율할 중앙정부의 역할과 책임도 확대해야 한다. 가야고분군 통합관리기구를 둘러싼 이번 다툼이 어쩌면 그것을 위한 훌륭한 반면교사이자 다시 오기 힘든 기회인지도 모른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