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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한강의 기적' 그 너머
“유튜브 다음은 뭐지? 다시 종이책이 아닐까?” 2019년 서울국제도서전 강연에서 한강 작가가 했던 말이다. 그가 했던 말이 정말 현실이 됐구나 싶을 만큼 노벨문학상 수상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매년 독서 인구가 줄고 있다는 우울한 소식만 듣다가 한강의 책이 없어서 못 판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기분이 이상할 정도다. 그야말로 ‘한강의 기적’이다. 한편으론 씁쓸한 생각도 든다. 평소 우리 국민이 그의 작품을 포함한 한국 문학과 책을 이만큼 아끼고 사랑해 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수년 전 영국 여행에서 런던의 서점을 방문했다가 한강 작가의 영어 책을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덜컥 구매해 온 적이 있다. 데버러 스미스가 번역한 〈The White Book(흰)〉이었다. 이 책을 포함해 한강의 책을 여럿 소장하고 있지만, 기자 역시 완독했다 할 수 있는 건 〈채식주의자〉 정도다. 〈소년이 온다〉는 사 놓고도 절반밖에 읽어내지 못했고, 〈작별하지 않는다〉는 선물 받은 뒤 몇 달째 펼쳐 보지도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5·18이나 4·3 같은 현대사의 아픔을 깊이 다루고 있는 그의 작품은 사실 가볍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종류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한국 최초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국가적 경사는 온 국민이 그의 작품에 관심을 갖도록 만들었다. 우리나라뿐이랴. 해외에서도 한강의 책은 품절 상태로, 한글 책마저 동날 정도라고 한다. 지난 13일 〈부산일보〉와 인터뷰 한 한 20대는 “이번 주말 핫플레이스 방문 대신 한강 작가 책을 읽기로 했다”고 한다. 한동안 시내 카페에선 한강의 책을 읽는 사람을 자주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유행처럼 그의 책을 들고 다니는 이들을 거리에서 심심찮게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잖아도 2030세대들에겐 ‘텍스트 힙’이 유행하던 참이다. 텍스트 힙은 글자를 뜻하는 ‘텍스트(Text)’와 ‘멋있는’이라는 뜻의 ‘힙(Hip)’을 합친 말이다.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젊은 세대 사이에선 인쇄된 활자를 읽는 행위 자체가 특별해 보이는 모양이다. SNS에서는 ‘#북스타그램’ 혹은 ‘#책스타그램’ 같은 해시태그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책 읽는 사진을 공유하거나 독서 중 발견한 좋은 구절을 찍어 올리는 사람도 많다. 한강 작가의 수상 후엔 그의 대표작을 필사해 공유하는 챌린지도 생겨났다고 한다. 또 독립서점을 방문해 인증하는 등 독서하는 자신의 ‘힙’함을 알리는 방법도 다양하다.
그것이 과시욕이든 지적 허영이든 젊은 세대 사이에서 독서 열풍이 일고 있다는 현상 자체가 긍정적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문해력 논란이 일고 있는 세상 아닌가. 일부에서는 요즘 애들이 책은 안 읽고 유튜브 동영상과 숏폼 콘텐츠만 봐서 문제라고 혀를 끌끌 차지만, 기자는 문해력 논란이 그렇게 단순하게 볼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언어는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고루한 한자어나 행정 용어가 시대에 맞게 바뀔 필요도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근 논란이 된 ‘우천 시’나 ‘중식’ 같은 단어는 ‘비 올 때’나 ‘점심’처럼 자주 쓰는 말로 얼마든지 대체해 쓸 수도 있는 문제다. 같은 의미로 젊은이들에게 책을 읽게 하려면 ‘독서하는 사람이 멋지다’는 말보단 ‘책 읽는 사람이 힙하다’는 말이 당연히 더 효과적일 테다.
작가들이 고르고 골라 썼을 어떤 단어를 책에서 새롭게 발견하게 됐을 때의 즐거움, 그 단어가 갖고 있는 정확한 뜻이 무엇인지를 찾아보고 곱씹어 보는 보람 같은 것을 맛본 이라면 책 읽기를 싫어할 수가 없다. 그 과정에서 어휘력도, 문해력도 자연스럽게 키워진다. 출간한 지 26년 된 양귀자의 〈모순〉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등장하는 등 ‘역주행’ 하고 있다는 소식에 뒤늦게 책을 구해 읽다가 기자 역시 그때 그 시절 소설에서 뜻을 제대로 알 수 없는 한자어 하나를 만났다. 그 단어가 뭐였던가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검색창에 미지의 단어를 입력해 그 의미를 알게 됐을 때의 흡족함만큼은 잊을 수가 없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이 불러온 서점가와 출판계의 행복한 비명이 한동안 계속되면 좋겠다. 간만에 불어온 국민적 독서 열풍도 오래 지속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 지금 필요한 건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와 같은 예능 프로그램의 재등장일지도 모른다는 어느 후배의 말처럼,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한강의 기적’을 이어가고 싶은 오늘이다. 더불어 다시 돌아온 종이책의 인기, 활자 읽기 트렌드가 신문으로까지 번지기를 바라 본다. ‘신문 읽는 사람이 힙하다’고 하는 날도 조만간 오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면서 말이다.
이자영 사회부 차장 2young@busan.com
2024-10-14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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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尹 동반자는 ‘교섭단체’ 아닌 ‘정당’이다
정당은 정치적으로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모인 결사체로 정권을 잡는 것이 지상목표이다.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입법부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해야 정국을 주도할 수 있고, 집권에 유리하기 때문에 국회의원을 얼마나 보유하고 있느냐가 정당의 실질적인 힘과 비례한다. 더불어민주당이 요즘 국회에서 무소불위의 입법권을 휘두르고 있는 것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래서 정당의 본질을 국회의원으로 동일시하는 인식이 강하고, 실제로 국회법·정당법·선거법 등 정치관계법에서는 국회의원 숫자를 기준으로 수많은 인센티브를 준다. 정당에 주어지는 국고보조금 규모는 소속 국회의원 의석수에 따라 하늘과 땅 차이다.
공직선거에서 후보자의 기호도 국회의원 의석순으로 매겨진다. 심지어 대통령 선거에서 후보의 지지율이 아무리 높아도 자신이 소속된 정당의 국회의원 숫자가 적으면 기호는 뒤로 밀린다. 국회법 상의 교섭단체(우리나라의 경우 20명 이상)가 되면, 국고보조금을 비롯해 정책연구위원·입법지원비 등을 받을 수 있다. 상임위원장 배분에 참여할 수 있고, 모든 상임위에 간사를 둘 수 있어 쟁점법안을 다룰 때 강한 교섭권을 갖게 된다.
그렇다고 정당이 꼭 국회의원만으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금배지를 달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국의 지역구를 책임지는 원외 위원장이 있고, 그 주변에서 책임당원(또는 권리당원)들이 주력부대를 형성한다. 또 수백만 명의 일반 당원(더불어민주당 480만 명, 국민의힘 410만 명)이 모세혈관처럼 여론을 형성하고 각종 선거에서 표를 이끌어낸다.
정당의 중요한 동력이 국회의원이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집권할 수 없는 이유다. 역대 대선에서 소수정당이 승리한 경우가 적지 않은 것도 그 때문이다.
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국민회의는 1996년 총선에서 불과 79석을 얻는데 그쳤으나, 이듬해 대선에서 김대중 대통령을 당선시키고 정권 교체를 이뤘다.
2007년 대선 때 한나라당은 원내 제2당이었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승리했고, 2022년에는 국민의힘 원내 의석이 100석을 겨우 넘겼지만 윤석열 정권을 탄생시켰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일 여당의 원내지도부를 용산 대통령실로 초청해 만찬을 함께 했다. 추경호 원내대표를 비롯한 원내부대표단과 당 소속 국회 상임위원장 및 간사들이 대상이었다. 한동훈 대표는 빠졌다. 왜 그랬는지는 정치 문외한이라도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이날 원내 지도부 만찬에서는 지난달 24일 당 지도부 초청만찬 때보다 훨씬 분위기가 좋았다고 한다.
당 지도부 만찬 때는 한 대표를 비롯해 아무도 인사말을 할 기회가 없었지만 이번에는 추 원내대표, 김상훈 정책위의장, 국회 상임위원장들이 돌아가며 발언했다. 한 대표와의 만찬은 1시간 30분 만에 끝났지만, 원내지도부 만찬은 2시간 15분으로 45분이나 더 길었다.
이날 만찬은 추 원내대표가 국정감사를 앞두고 의원들을 격려하기 위한 자리를 마련해달라고 대통령실에 제안해 이뤄졌다고 한다. 원내지도부를 만나 고무된 윤 대통령은 “우리는 숫자는 적지만 일당백의 각오로 임하자”고 독려했다.
하지만 국회의원들이 일당백으로 싸우기 위해서는 일반 당원들은 물론 수많은 지지층의 힘이 더해져야 한다. 단순히 여당 국회의원들만으로 거대 야당을 이길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자신들을 열정적으로 지지하는 여론과 그런 분위기를 이끌어낼 수 있는 당원들의 열망이 한데 모였을 때 여당의 국회의원들도 비록 소수이지만 힘을 낼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국감을 앞두고 있다고 하지만 전체 당원과 보수 지지층을 아우를 수 있는 당 대표를 제외시킨 것은 너무나 아쉬운 대목이다. 한 대표는 지난 7월 전당대회 때 당원투표(80%)와 국민여론조사(20%)를 합해 62.8%의 압도적 지지율로 당선됐다. 아무리 미워도 당원과 지지층을 아우를 수 있는 당의 중심임에는 틀림없다.
결국 윤 대통령은 자신의 우군을 국민의힘이라는 ‘대중 정당’이 아닌 국회법 상의 ‘교섭단체’로 축소시키는 우를 범한 것이다. 요즘 윤 대통령 주변에는 자신의 친정인 검찰, 임명권을 행사한 행정부 장차관, 소수의 친윤(친윤석열)계 정치인들 밖에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윤 대통령이 자신과 임기 이후까지 함께 가야할 동반자는 국회의원들의 집단인 ‘교섭단체’가 아니라 당원과 지지층을 모두 껴안고 있는 ‘정당’이라는 점을 상기했으면 한다.
2024-10-09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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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서울시장이 지역균형발전 외치는 나라
초등학생 딸아이와 세계 국가별 수도 이름 맞히기 놀이를 하다보면 늘상 헷갈리는 나라들이 있다. 호주 수도하면 시드니부터 떠오르지만 캔버라가 맞고, 캐나다 역시 올림픽을 치른 몬트리올이 먼저 입밖으로 튀어나오지만 오타와가 수도다. 브라질 수도는 상파울루나 리우데자네이루가 아니라 브라질리아고, 가까운 베트남도 경제적으로 발달한 호찌민이 아닌 하노이를 수도로 두고 있다. 이들 나라는 입법, 사법, 행정, 경제, 교육, 문화 기능 등을 주요 도시별로 적절히 분산하고 있다. 수도권 과밀 해소와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정치적 타협의 산물이다.
미국만 해도 정치·행정의 중심인 국가 수도는 워싱턴DC지만, 인구 밀집도가 가장 높고 월스트리트와 브로드웨이를 보유한 뉴욕이 ‘경제 수도’ 역할을 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는 구글, 페이스북, 애플 등 세계적인 빅테크 기업들의 본사가 밀집한 실리콘밸리가 있어 ‘글로벌 혁신 수도’로 불린다. 일본은 2014년부터 ‘국토 그랜드 디자인 2050’ 계획을 수립하고, 도쿄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과 나고야 중심의 중부권, 오사카 중심의 관서권을 ‘3대 메가시티’로 육성하고 있다. 중국도 상하이, 베이징, 충칭, 광저우, 우한 등 인구 1000만 명이 넘는 메가시티를 15곳이나 보유하고 있다.
반면 외국인들에게 대한민국의 수도를 물었을 때 서울 외에 다른 도시를 거론할 이들이 얼마나 있을지 의문이다. 한국은 정치 경제 문화 외교 교육 의료에 하다못해 스포츠나 엔터테인먼트까지 모든 국가 기능과 인력, 자원이 철저히 서울 한 곳, 넓게 보면 수도권에 집중된 ‘서울공화국’이다.
2022년 기준 대한민국 인구의 50.7%, GDP(국내총생산)의 52.5%, 일자리의 58.5%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고 한다. 한국의 GDP 수도권 집중도는 일본(24.3%)의 2배, 미국(5.1%)의 10배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이는 명색이 대한민국 제2도시라는 부산과의 비교에서 보다 확연하게 드러난다. 부산의 인구는 327만 명으로 서울(935만 명)의 3분의 1 수준이다. 부산 GRDP(지역내총생산)는 113조 원으로 서울(528조 원)의 4분의 1에도 못 미친다. 매출액 기준으로 전국 100대 기업에 속하는 부산 기업은 한 곳도 없고, 그나마 1000대 기업에 28개가 이름을 올렸을 뿐이다. 한수 이남 최고 명문이라는 부산대가 서울의 10위권 대학과 비교해도 위상이 흔들리는 실정이다.
행정 수도를 표방하며 2012년 세종시가 출범한 지 12년이 지났다. 그 사이 행정기관 3분의 2 이상이 이전됐고, 40만 명에 육박하는 인구도 갖췄다. 하지만 수도권 과밀화 해소와 국가균형발전에 관해서는 눈에 띄는 성과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부울경의 시각에서 볼 때는 수도권 영역의 확장으로 여겨질 뿐이다. 편중이라는 표현으로는 다 담아내지 못할 만큼 한국은 철저하게 한 쪽으로만 기울어진 ‘기형 국가’다.
이런 가운데 국가균형발전 측면에서 대척점에 있다고 할 만한 부산과 서울, 양대 도시 수장의 대한민국 발전 해법을 들어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돼 큰 관심을 끌었다. 지난 8월 한국정치학회가 부산에서 개최한 하계 학술대회에서 박형준 부산시장과 오세훈 서울시장은 ‘한국 미래 지도자의 길’이라는 주제로 특별 대담을 가졌다. 박 시장은 압축성장 이면에 수도권 일극주의를 초래한 옛 ‘발전국가’ 모델로는 더 이상 지속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수 없다며 수도권과 지방이 공생·발전하는 ‘공진국가’ 모델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제시했다.
이날 특히 눈길을 잡은 것은 오 시장의 지방 거점 대한민국 개조 모델이다. 오 시장은 전국을 수도권, 영남권, 충청권, 호남권 등 4개 권역으로 나누고 각각을 하나의 강소국가로 키워야 한다며 이른바 ‘4개 강소국론’을 설파했다. 중앙정부는 외교와 안보만 맡고 나머지 권한은 지자체에 넘기는 파격적인 권한 이양도 필수라고 강조했다.
오 시장의 이 같은 철학이 평소의 지론인지, 혹은 ‘대권 플랜’의 일환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수도권 올인 정책’의 최대 수혜자라 할 수 있는 서울시의 수장이 망국적인 수도권 일극주의 타파와 지역균형발전을 부르짖은 것은 대한민국 국토 비대칭 발전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할 만한 장면이다.
부산과 서울의 라이벌은 국내 도시가 아닌 뉴욕, 도쿄, 싱가포르, 두바이와 같은 글로벌 도시다. 한정된 자원을 계속 서울에 쏟아부으면 한계효용은 감소한다. 서울 역시 ‘동네 여포’로 머물 뿐이다. 우리나라는 ‘잠재 성장력 저하’와 ‘초저출생’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사회적 격차 심화’라는 3대 위기에 발목이 잡혀 있다. 대한민국이 새로운 성장 엔진을 만들려면 제2도시 부산이 서울 못지않은 혁신거점이 돼 글로벌 허브도시로 우뚝서야 한다. 오 시장의 냉철한 자가진단이 부산 사람 입장에서 반가운 이유다.
2024-10-07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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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아! 가을이다
드디어 가을이다.
지칠 줄 모르던 뜨거운 햇살 속 폭염과 열대야가 결국 물러났다. 낮의 햇살은 아직도 따갑지만, 아침저녁 부는 바람이 제법 시원하다.
지난여름은 정말 잔인했다. 밤낮 식지 않는 더위는 인간의 인내력을 테스트하는 듯했다. 삼복이 지나도, 추석이 지나도 폭염은 계속됐다. 기록적인 폭우로 전국이 물난리를 겪고 나서야 겨우 여름이 물러났다. 이 폭우를 기상청은 ‘200년 만에 한 번 내릴 만한 비’라고 했다.
올여름 충격적인 더위를 놓고 ‘이제 한국도 동남아 날씨가 됐다’ ‘계절의 개념을 다시 정리하자’는 말이 나온다. 이 가운데 ‘올해 여름이 앞으로 맞을 최고 시원한 여름일 수도 있다’는 말이 가장 충격적이다. 지구온난화로 점차 여름이 더워질 것이라는 경고다. 앞으로 이 땅에서 살아갈 자녀와 그 자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 지독한 무더위를 모두 견뎌냈다. 지구와 우주의 움직임에 따른 온도의 변화를 속절없이 겪어야 하는 나약한 인간. 하지만 이를 이겨낸 모든 분에게 안부를 묻고 위로를 전하고 싶다. 주변 사람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다.
혹독한 여름을 간신히 견뎌낸 몸과 마음에 가을이 스며든다. 높은 하늘과 시원한 바람은 우리를 되돌아보게 한다. 더위와 싸우느라 지친 우리에게 주변 꽃을 돌아보고 솜털 구름이 멋진 하늘을 바라보게 한다.
하지만 주변 현실은 녹록하지 않다. 다들 더위뿐만 아니라 힘든 세상살이에 녹초가 된 모습이다. 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은 끝이 없다. 자영업자 4명 중 3명은 수익이 월 100만 원에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정치권은 특검과 거부권으로 허송세월하고 있다. 누구를 위한 나라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부산은 최악의 시기를 보내고 있다. 청년들은 일과 돈을 찾아서 수도권으로 떠나고, 아파트 미분양 물량은 점점 늘어가고 있다. 지역 재개발 사업은 수익성을 담보하지 못해 지지부진하다. 제대로 된 대기업 하나 없는 부산은 ‘돌파구가 과연 있을까’는 푸념과 체념의 가운데쯤에 놓여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도전과 열정의 마음보다는 ‘어떻게든 되겠지’라는 방관과 허무의 마음을 갖게 된다. 삶의 보람과 기쁨보다는 분노와 허전함이 커지고 있다.
그렇지만 가을이다. 단풍의 시간이고 낙엽의 시간이다. 바람은 말없이 지나간다. 익어가는 것은 다시 비우고 물러가는 것임을 아는 듯. 가을은 세월의 흐름을 절절히 느끼게 한다. 세월의 흐름을 느끼는 시간이야말로 인생을 사는 시간이다. 내가 존재하는 순간이다.
현실 속에서 허덕이지만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지독한 계절과 아픈 현실 속에서 나를 지키고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이 같은 현실을 함께 버텨온 사람에 대한 상호 의지와 믿음이 필요하지 않을까.
이를 위해 올가을에는 ‘감사의 마음’을 갖기로 했다. 그동안 나의 잘못으로 지키지 못한 약속은 없었는가? 무심코 뱉은 말로 스쳐 간 사람을 아프게 하지 않았는가? 지금껏 세상을 살아오면서 분에 넘친 은혜를 입었다. 염치없이 신세를 진 분들이 수없이 많다. 이 가을날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폭염의 잔인함이 어느새 끝나고 사람과 자연에 새로운 바람이 분다. 이 뒤숭숭한 세상에 얼마나 고마운 선물인가.
이렇게 청명한 가을하늘을 얼마나 기다렸는데. 출근길 햇살과 맑은 하늘을 바라보니 바람까지 싱그러울 수가 없다.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가을 우체국 앞에서 그대를 기다리다 노란 은행잎들이 바람에 날려가고 지나는 사람들같이 저 멀리 가는 걸 보네. 세상에 아름다운 것들이 얼마나 오래 남을까. 한여름 소나기 쏟아져도 굳세게 버틴 꽃들과 지난겨울 눈보라에도 우뚝 서 있는 나무들같이 하늘 아래 모든 것이 저 홀로 설 수 있을까.”
담백하면서도 부드러운 선율, 그리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하늘을 쳐다보게 만드는 ‘가을 우체국 앞에서’ 가사다. 은행잎, 소나기, 눈보라, 나무, 하늘 모두 아름답지만 ‘저 멀리 가고’ ‘오래 남지 않으며’ ‘홀로 설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아닐까. 힘들게 찾아왔지만 오래 가지 않을 가을날. 새로운 만남에 설레고 지금 내 앞에 있는 모든 것에 감사의 마음을 가지자. 다시 한번 나를 알거나 앞으로 알아갈 모든 이들과 모든 것들에 뒤늦게 또는 미리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강성할 독자여론부장 shgang@busan.com
2024-10-02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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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롯데, 위험하거나 위대하거나
최근 큰 결심을 했다. 자녀들을 ‘롯린이’로 만들기로 한 것이다. 롯린이란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와 어린이팬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롯린이를 만드는 데 무슨 큰 결심까지 필요할까 싶다. 하지만 주변에서 롯데 경기 결과에 그날 기분이 좌우되는 이들을 보면 선뜻 야구를 소개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루 종일 집에서 황성빈의 응원가를 부르는 모습에 후회도 했다. 황성빈의 응원가는 귀에 딱딱 꽂혀서 집중력을 흩트린다. 그런 측면에서 잘 만든 응원가인 것은 확실하다. 또 롯데 성적보다 주식 등락에 기분이 오가는 것이 삶에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지 않을까, 재테크가 이르다면 우승권에 있는 팀의 팬이 되게 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슬프게도 롯데는 가을야구를 올해도 실패했다.
가을야구에 실패한 팀의 마지막 경기는 늘 초라했다. 과거 자리가 텅텅 비어 옆으로 누워 야구를 보는 팬들이 방송에 잡힌 적도 있다. 심지어 사직야구장 외야석에서 자전거를 타는 ‘전설의 사진’도 있다.
롯데는 역대 2위 최소 관중 기록을 가지고 있다. 2002년 10월 19일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경기로 입장객은 69명이었다. 이날 경기는 롯데의 시즌 마지막 홈경기였다. 롯데는 마지막 홈 경기를 위해 롯데 자이언츠의 로고가 박힌 옷이나 모자 등 굿즈를 가진 팬들을 무료로 입장시켰다. 그럼에도 불구 100명도 경기장을 찾지 않은 셈이다. 당시 롯데는 133경기를 치르는 동안 35승 1무 97패 승률 0.265를 기록했다.
2018년 이후 7년 연속 가을야구에 실패했기에 올해도 팬들의 실망도 컸을 것이다. 하지만 과거와 분위기는 달랐다. 사직야구장의 마지막 두 차례 홈경기는 2만 2000여 석이 모두 매진됐다. 올해 프로야구는 처음으로 1000만 관중을 넘겼는데 사직야구장도 이러한 분위기를 이어간 셈이다.
1000만 관중 시대의 배경에는 야구를 가볍게 즐기는 ‘라이트팬’의 증가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예전 ‘헤비팬’들은 기록지를 직접 기록하며 선수들을 분석하고 다녔다. 애정도 크고 지식도 많아 성적에 민감했다. 사실 즐길거리도 경기 내용, 성적밖에 없었다. 그래서 경기 내용이 좋지 않으면 분위기가 살벌했다. 2009년 영화 〈해운대〉의 모습이 허구가 아니다. 설경구는 삼진을 당하고 돌아오는 이대호를 향해 “마, 이대호. 니 오늘 병살타 치러 왔나. 병살타 마이 치니까 배부르나. ××야”라고 인신공격을 한다. 영화가 괜히 오버를 했냐고? 아니다. 펜스를 기어오르는 팬, 족발의 뼈를 던지는 팬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반면 최근에는 기본적인 야구룰만 아는 라이트팬도 많다. 경기 중간중간 진행되는 이벤트 참가자의 모습만 봐도 남녀노소 다양하다. 야수선택(야수가 타자 주자를 아웃시키는 대신에 앞 주자를 아웃시키고자 하는 플레이)과 같은 살짝 어려운 상황들이 발생하면 어떻게 된 일인지 묻느라 웅성웅성하기도 한다. 몸에 맞는 볼 상황에서도 반응은 갈린다. 진루가 되어 기뻐하거나 선수의 투지를 응원하는 모습은 찾기 어렵다.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가 맞았다며 일단 화부터 낸다.
SNS에서도 사직야구장 먹킷리스트(먹다와 버킷리스트의 합성어) 등 새로운 문화가 눈에 띈다. 이쯤되면 즐기기에 야구만큼 가성비 좋은 문화가 없다. 주말 저녁 친구를 만나 먹킷리스트를 하나 해결하고 외야석의 경우 1만 원 정도면 최소 3시간은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다 온다. 게다가 이기기라도 하면 가심비도 끝내준다.
최근에는 이러한 분위기를 즐기려 헤비팬들의 전유물이었던 원정 응원에 동참하는 라이트팬들도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원정을 가서 그 지역의 먹킷리스트를 해결하고 야구를 보고 오는 식이다. 여행을 가듯 즐겁게 가서 신나게 응원하다 오는 셈이다.
롯데 자이언츠는 삼성 라이온즈와 함께 프로 원년부터 리그에 참여하여 지금까지 팀 명칭을 유지하고 있는 유이한 팀이다. 그만큼 사직야구장에 얽힌 이야기도 많고 팬들의 애정도 크다. 여기에 부산이 가진 매력이 더해져 라이트팬들이 즐길 만한 다양한 요소들이 어느 구단보다 많은 팀이라고 자부한다. 성적만큼이나 문화적 요소가 더 중요해지는 시점에서 이는 야구를 즐기는 중요한 이유가 될 것이다. 또한 사직야구장 재건축이 진행되면 팬들과 함께 더 편하고, 더 흥미롭게 롯데 자이언츠의 홈경기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직야구장에서 보는 롯데의 홈경기가 성적과 상관없이 원정 응원을 오고 싶게 만드는 부산의 소중한 자원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아들에게 스트레스 유발하는 위험한 유산이 아닌 부산을 대표하는 위대한 유산을 넘겨줬기를…. 20여 년 뒤 아들에게 “왜 절 야구장에 데려가셨어요”라는 원망을 듣고 싶지 않다.
2024-09-30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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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블랙 먼데이와 금투세 불안감
지난달 5일 국내 증시는 말 그대로 ‘블랙 먼데이’였다. 코스피가 전날 대비 8.77% 내렸고, 지수가 234.64나 빠졌다. 코스피 지수가 하루 만에 200 이상 빠진 것은 국내 증시 역사에 처음 있는 일이다. 하루 8.77%라는 낙폭도 금융위기 당시였던 2008년 10월 -9.44% 이후 16년 만의 최대치였다.
그날의 유례 없는 하락세를 야기한 몇 가지 배경은 있다. 미국 경제 지표가 예상보다 나쁘게 나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일본 금리 상승으로 엔 캐리 트레이드 자금 청산에 대한 우려도 제기됐다. 때마침 AI 관련 빅테크 열풍도 식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이유를 다 합쳐도 저 정도 낙폭을 설명할 수는 없다.
블랙 먼데이의 이유로 제시된 것들은 따지고 보면 시장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수준의 악재들이었다. 다만 묘하게 나쁜 소식들이 겹쳐서 불안감이 커진 것이다. 투자자들은 “큰일이 났나”라며 겁을 먹고 매도를 시작하자, 공포감은 전염됐고, 정말 큰일로 번져버렸다. 다행히 심리적 이유가 결정적이었던 폭락이었기에, 다음날부터 주식 시장은 비교적 빠르게 회복하기 시작했다.
괜히 ‘경제는 심리’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다. 17세기 네덜란드 튤립 파동, 1929년 미국 월가 대폭락, 2000년 IT버블 붕괴 등도 심리적 이유로 설명하기도 한다. 그 정도까지 커질 일은 아니었는데, 시장의 공포감이 파장을 극대화했다는 거다. 심리적 이유가 모든 걸 설명할 수는 없지만, 상당한 영향력이 있다는 건 분명하다.
과도한 공포가 때때로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내년부터 시행 예정인 금융투자소득세가 우려된다.
개인투자자가 주식으로 5000만 원 이상을 벌면 소득의 20%를, 3억 원을 넘게 벌면 25%를 세금으로 내는 게 핵심이다. 주식으로 5000만 원 이상 버는 이는 매우 드물기에, 실제 주식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그리 크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금투세 반대 여론에 힘이 실리며, 상황이 변했다. 세금에 대한 원초적인 거부감을 넘어, 돈 많은 개인투자자들이 시장을 떠날 것이라는 우려가 퍼졌다. 심지어 금투세의 대상이 아닌 기관이나 외국인의 투자도 줄 것이라는 전망도 돌았다. 경제적 여건이 다른 대만의 사례를 가져와 금투세를 도입하면 시장이 폭락할 것이라는 주장도 만연했다.
주식 투자자들은 금투세 반대 여론에 끌릴 수밖에 없다. 일단 주식시장이 무너질 것 같은 공포감이 들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사안을 따지기 힘들다. 이제는 되돌리기 어려운 수준이 된 것 같다. 금투세 도입이 곧 시장의 몰락이라는 믿음이 광범위하게 퍼져있다. 실제로 야당 내에서 금투세 유예 가능성이 언급되면 덩달아 코스피가 올라가는 등 이미 금투세 논란은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금투세가 강행되면, 많은 개인투자자가 겁을 먹고 시장을 미리 떠나고, 시장은 상당한 충격을 받을 것이다. 회복하기 힘든 수준이 될 수도 있다. 그럴 말한 일이 아니어도 그런 일이 발생하는 게 주식 시장이다.
공포감 확산의 가장 큰 원인은 금투세를 도입하려는 이들이 사안의 민감성을 가볍게 본 것이다. 돈과 관련된 문제에서 대중은 극도로 예민해질 수 있다. 그만큼 충분히 설명과 설득이 필요하다. 그러나 금투세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너무 작고 부실했다. 반면 금투세를 반대하는 이유들은 더 빨리, 더 많이 시장에 퍼졌다. 도입에 필요한 제대로 된 준비가 없었던 것이다.
금투세를 위한 소득세법 개정안 자체의 문제도 컸다. 장기 투자나 건전한 투자를 유도하는 식으로 세법을 개정할 수도 있었다. 20%, 25%라는 세율도 정교하게 계산됐다는 인상을 주지 않는다. 예민한 문제를 다루는 개정안이지만, 대강 만들어진 느낌이다. 금투세 지지자들도 지금의 개정안은 손 볼 곳이 많다는 데 대부분 동의한다.
어쨌든 지금 정치권이나 주식시장 안팎에서는 금투세 유예 가능성을 더 높게 보고 있다. 정치적 계산을 따져봐도 민주당이 굳이 금투세를 강행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유예가 폐지는 아니다. 금투세 취지 자체에 공감하는 국민도 상당히 많다는 것도 분명하다.
만일 금투세가 유예된다면, 이번에 충분한 준비를 한 뒤 도입해주기 바란다. 개인투자자들은 “국내 주식 시장이 개미들에게 불공정한데, 세금 걷을 생각만 한다”고 불만을 터트렸다. 그러니 먼저 정치권이 개인투자자를 보호하고 국내 기업이 충분히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시장을 만드는 데 기여해야 할 거다. 그 다음 조세 정의를 위한 합리적인 개정안을 내놓아야 도입이 가능하다. 현실을 외면하고 명분만 내세우다가는, 자칫 시장을 망치거나 아니면 금투세 도입 자체가 물거품이 될 수 있다.
2024-09-25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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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대구·경북 행정통합 무산'과 타산지석
전국에서 첫 광역자치단체 통합 사례로 예견됐던 대구·경북 행정통합이 결국 무산됐다. 홍준표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가 올해 5월 행정통합 추진을 공식화한 지 100여 일 만이다. 통합 시너지 효과 등을 기대한 주민들에게 추진 과정에 발생한 상처와 갈등만 남긴 꼴이 됐다. ‘가다가 아니 가면 아니 간만 못하다’는 속담처럼, 그동안 의좋은 형제였던 대구와 경북 간 불신과 갈등의 불씨만 키운 결과로 이어졌다.
무산 원인에 대한 분석은 다양하다. 대구시와 경북도가 통합 핵심 쟁점인 청사 위치와 시군 권한 문제를 놓고 접점을 찾지 못했다는 게 표면적 이유다.
똑같이 행정통합을 추진하고 있는 부산시와 경남도로선 대구·경북의 추진 과정과 결과를 두고 타산지석으로 삼을 수밖에 없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통합 논의 과정에 제기된 핵심 쟁점 사항의 상당 부분에서 접점을 찾았지만, 막판까지 청사와 시군 권한 문제를 둘러싸고 평행선을 좁히지 못한 건 사실이다.
통합 시도 청사를 어디에 둬야 할지에 대해서는 끝까지 각자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기초 지자체 권한도 대구시는 시군 사무 권한을 대구경북특별시로 조정하는 방안을, 경북도는 시군에 더 많은 권한을 줘야 한다는 견해를 고수했다. 각자 주장의 핵심에는 대도시와 도농복합도시 특성과 역할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사정은 부산과 경남도 똑같다.
부산은 해양을 중심으로 하나의 대도시지만, 경남에는 해안과 내륙이 혼재하는 도농복합형 중소도시가 많다. 경남은 18개 기초지자체가 있지만 인구 50만 명이 넘는 곳은 창원과 김해 두 곳 뿐이다. 나머지 시군은 인구는 적지만 지역색이 강하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행정통합 논의가 본격화하고 각론으로 들어가면 청사 위치와 시군 권한 문제에 대한 시각이 다를 수 밖에 없다.
특히 경남은 동부와 서부 간 개발 수요에 대한 입장이 크게 다르다. 진주를 중심으로 하는 서부경남은 낙후된 지역개발 요구가 높고, 김해·양산을 중심으로 동부경남은 인구는 많은데 역차별을 당한다는 주장이 혼재한다. 통합 논의가 본격화할 경우, 잠재돼 있던 지역 차별 의식과 민원이 봇물처럼 쏟아질 전망이다. 대구·경북의 경우 통합 논의 과정에 대구보다는 경북에서 더 많은 비판과 문제점 지적이 많았다.
경북도의회 일부 의원은 “대구·경북 행정통합은 시도민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은 채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이 순식간에 후딱 해치워 버릴 사안이 아니다”면서 “도지사와 시장 간 엇박자로 행정력은 낭비되고 있고, 결국 도민들은 행정통합이라는 대의보다는 두 단체장의 정치적 전략에 놀아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지적이 상당 부분 설득력을 얻었다.
2019년부터 추진됐다 무산된 대구·경북 행정통합은 올해 5월 17일 홍 시장이 전격 제안하고 이 도지사가 화답하면서 재추진됐다. 곧바로 태스크포스를 구성, 실무 논의에 들어갔다. 두 단체장이 통합이라는 큰 그림에 의견을 모았고, 미래지향적 행정구역 개편을 준비해온 정부가 전폭적인 지원 의사를 밝히면서 통합 작업은 초반부터 속도감 있게 진행됐다. 이 속도감이 오히려 독이 된 요인이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방자치단체 주인인 주민 의견보다 두 단체장의 전격적인 합의와 일방적 추진이 주민의 대표기관인 경북도의회를 자극한 측면도 있다. 대구·경북 사례를 보면 자치단체 간 통합의 결정적 요인은 속도보다는 방향성이다. 단체장의 일방적 결정보다는 주민 의견을 묻고 여론을 살피면서, 분위기가 무르익을때를 기다려야 한다는 논리다.
부산과 경남은 상향식 추진으로 통합의 방향을 잡았다. 부산시와 경남도는 행정통합 공론화위원회를 오는 10월 둘째 주께 출범시킨다고 한다. 시장과 도지사가 주도하다 무산된 대구·경북의 하향식 행정통합과 달리 부산·경남은 공론화위를 통한 상향식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 있다.
대구·경북 사례에서 보듯 행정통합은 선언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통합 추진에 앞서 통합 방안 연구와 전략 수립이 있었음에도 한 순간에 무산될 수 있는 지난한 과정이다. 통합 시도 명칭에서부터 청사 소재지에 이르기까지 거쳐야 할 난관이 하나둘이 아니다. 각 지역 이해관계를 조정해야 하고 숱한 난관을 넘어야 한다. 부산과 경남이 대구·경북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하는 이유다. 오는 10월 출범 예정인 부산·경남 행정통합 공론화위원회 구성과 역할에 더욱 관심이 간다.
2024-09-23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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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방황하는 북항, 방관하는 부산시
“해운대, 광안리 다음 (부산의 중심은) 북항 아닙니까?” “해상도시도 만들고 천지개벽한다던데요.”
불과 1년 전만 해도 북항은 ‘매우’ 특별했다. 공과 사를 떠나 취재원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북항·가덕신공항 예찬론이 심심찮게 등장했다. ‘탈 부산’급 개발 계획에 2030월드엑스포 유치 기대가 기름을 부은 결과다. ‘잘 돼야 한다’보다는 ‘잘될 거다’는 반응이 대세였다.
“우리 세대에는 못 누려요.” “정부도 무관심하고 지자체도 돈이 없다는 데 잘 되겠습니까?”
최근 분위기는 ‘북항 비관론’이 우세한 듯하다. 주변에선 기대만큼 실망도 큰지 ‘쯧쯧’ 혀를 찬다. 그저 그런 재개발처럼 별 기대를 하지 않는 모습이다.
물론 인식 변화의 주원인은 엑스포 유치 실패다. 초대형 호재가 사라지면서 북항의 거품이 빠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 북항은 입지 자체가 뛰어난 곳이다. 익히 아는 것처럼 도로, 철도 여건이 우수한 데다 배후 지역의 유동 인구도 상당하다. 실제 퇴근 직후 부산도시철도 1호선 부산진역에서 열차를 탈 때마다 흠칫한다. 중앙동 등 원도심 업무 지역에서 출퇴근하는 젊은 근로자들로 빽빽하다. 설 자리도 없어 다음 열차를 기다리는 이들도 있다.
앞으로 가덕신공항까지 연결되면 북항은 도로·철도·공항·유동 인구를 모두 갖춘 곳이 된다. 외부 호재 없이 자체 경쟁력만으로도 충분히 재개발 사업을 성공시킬 조건을 갖춘 셈이다.
그런데도 북항 재개발이 방황하는 것은 결국 지자체의 책임이 크다. 부산시는 북항 재개발 1단계 부지들을 부산항만공사(BPA)가 맡고 있다는 이유로, 방관자적 태도를 보였다. 1단계 중심인 랜드마크 부지가 2년 이상 민간사업자를 찾지 못하는 데도, 대안을 내놓지 않는다. 최근 BPA가 용역을 통해 부지 개발의 밑그림을 다시 그리기로 했지만, 사실 시가 먼저 나서 적합한 사업들을 찾아 이런저런 제안을 해야 했다. 북항이 부산의 백년대계, 미래라면서 재개발의 핵심인 랜드마크 개발을 모두 다른 기관에 맡긴 꼴이다.
더불어 시는 그간 건설 경기 불황에도 출구전략도 없이 재공모를 촉구했다. 두 번째 공모 마감까지 민간사업자의 응찰을 자신했지만, 결국 시장을 오판했다.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사업 리스크만 커졌다.
북항 친수공원의 상시 콘텐츠 부실 문제도 마찬가지다. 북항을 부산항의 유구한 역사, 문화, 관광을 접목한 ‘핫플레이스’로 조성하기 위해 콘텐츠 전담 기구를 설치하자는 목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관리권을 가진 지자체는 묵묵부답이었던 반면 해양수산부는 강도형 장관이 직접 전담 기구 도입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싱가포르, 대만, 일본 등 선진 항만 재개발지 모두 항만 당국이 아닌 지자체, 정부가 재개발 사업을 주도한다. 더는 항만 기능이 없기 때문에 지역 사정을 가장 잘 아는 기관이 전문가 그룹과 협업해 새 도시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지역 특성을 고려해 필요한 관광·주거·산업 기능을 입히고, 행정·세제 지원책으로 투자를 유치하는 식이다. 반면 북항은 항만 당국이 부두 이동부터 도시 재개발까지 모두 맡는 ‘기형적 구조’다.
구조가 어찌 됐든 시는 하루빨리 북항에 대한 ‘주인 의식’을 찾아야 한다. 최근 지역 언론, 상공계를 중심으로 북항의 위기를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인다. 포럼을 만들어 활성화 대책을 논의하고, 랜드마크 부지 개발에 대한 굵직한 대안을 제시한다. 복합리조트를 비롯해 해변 야구장, HMM 사옥 등이 그 대안이다. 북항에 ‘뭐라도 해 보자’는 파이팅 분위기가 감돈다.
이에 시도 자체 예산을 들여서라도 제기된 랜드마크 개발안을 면밀히 검토해 가능 여부를 빨리 판단해야 한다. 그래야 불필요한 소모전을 줄이고 행정력을 집중시킬 수 있다. 시 고위 관계자는 최근 야구장, K팝 공연장으로 쓸 수 있는 아레나 시설 건립에 대해 “그 많은 돈을 어떻게 충당합니까”라며 취재진에 반문했다. 얼마나 돈이 드는지, 사업성은 어느 정도인지, 조달 가능한 곳은 어디인지 등 근거도 없이 ‘안 된다’는 입장이었다. 다른 시 담당자는 복합리조트에 대한 시의 입장을 묻자 “좋지요”라고 짧게 답할 뿐이었다.
‘부산의 미래’ 북항이 랜드마크 시설 하나 없는 그저 그런 곳으로 전락할 위기다. 지금이라도 치열하게 고민하고 싸워 미래를 제대로 그려야 한다. 전문가 그룹과 좋은 콘텐츠, 개발 아이디어를 선별·제시해 정부와 항만 당국을 귀찮게 해야 한다. 북항에 대한 ‘네이밍’ 사업도 진행해 부산의 새 도시 브랜드를 홍보하자. 이것이 부산의 미래를 만들어야 하는 시의 막중한 ‘임무’다. lee88@busan.com
2024-09-18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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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명절 밥상머리 가짜뉴스 안될 말
끔찍했던 폭염이 한풀 꺾였다지만 열대야는 여전하다. 늦더위에 잠을 설치는 사이 어느새 한가위가 코앞이다. 아직 차례상을 포기 못 하시는 시어머니와 심기 불편한 며느리 사이에서 죄인이 된 종손은 연휴 내내 외줄타기를 해야 한다. 자주 대화를 나누게 하고 시의적절한 화제로 그때그때 집안 분위기를 누그러뜨리는 건 종손의 오랜 생존비책이다.
여야 정치권도 직장인 못지않게 명절 연휴를 기다리는 분위기다. 명절 연휴 밥상머리는 정치권 프로파간다의 최전선이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 앉은 일가는 서로의 안부와 근황을 묻다 결국에는 정치 이야기로 넘어가기 마련이다. 국민 모두가 정치 고관여층은 아니다. 일가 중 한 사람 떠들기 시작하면 다들 자연스레 그 논리를 따라간다. 이달 초부터 여야 가릴 것 없이 한가위 연휴 동안 상대를 공격할 꼬투리를 잡기 위해 각종 의혹으로 제기하며 열을 올리는 이유다.
4일 간의 연휴가 지난 후에도 정치권의 레이더는 맹렬하게 돌아갈 전망이다. 10월 16일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과연 밥상머리 표심은 어땠는지 검증이 필요해질 테니 말이다. 이번 한가위 밥상머리를 장악하는 건 어떤 이슈가 될까.
2024년 한가위 최고의 이슈는 의대 증원이 아닐까 전망해 본다. ‘대입’과 ‘정치’라는 가장 감칠맛 나는 재료끼리 버무려놨다. 흥행이 안 될 리 만무하다. 응급실 뺑뺑이 사태 등 의료 붕괴의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정부의 의료계 달래기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2025학년도 의대 증원 백지화라는 의사들의 요구를 정부는 받아들일 것인가 등이 입방아에 오를 게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여야의정 모두 신속히 협의체를 출범시키자는 이야기를 꺼냈다. 당장 내년도 정원부터 원점에 논의를 시작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윤석열 대통령과 대통령실이 연일 ‘노(NO)’를 외친다. 이미 2025학년도 의대 수시 절차가 나흘이나 지난 시점이고, 더 큰 혼란을 가져올 것이라고 대통령실은 주장한다. 그간의 민심을 역행한 의협 행보와 대통령실의 박스권 지지율을 보면 강경일변도의 발언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의대 증원 이슈와 더불어 금투세 이슈도 뜨겁다. 뜨거운 감자 수준을 넘어 건드리기 난감한 불덩이가 된 상태다. 전국에 개미 투자자만 1400만 명이라 하니 이 역시 연휴 내내 어딜 가든 화제의 중심에 있을 터다. 금융투자소득세라는 생소한 세금이 본격 도입되면 여당의 말대로 개미 투자자들이 절망으로 추락하게 될지, 야당의 말대로 도탄에 빠진 국민을 구하기 위해 부자의 곳간을 열게 될지 따져볼 일이다.
멀리 보지 않아도 당장 부산에서는 금정구청장 보궐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김재윤 전 구청장의 별세로 치러지는 보궐선거에 여야가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 후보 면면이 모두 오래 보아온 우리 동네 정치인이다.
국민의힘에서는 뜻밖에도 전략공천이 아닌 경선을 택했다. 11일 부산시당 공천관리위원회는 부산시의회 윤일현 의원과 금정구의회 최봉환 의원 간의 2인 경선을 발표했다. 금정구는 정미영 전 구청장 이전까지 선출직을 사실상 국힘 계열에서 독식해 온 ‘보수의 아성’이다. 그러나 14일까지 경선을 진행해 후보를 가리기로 하면서 동네 선거 표심 다지기에 가장 적기라는 명절 연휴 유세 일정이 빠듯해졌다.
더불어민주당에서는 한 달 넘게 레이스를 펼친 금정구의회 출신 이재용, 조준영 구의원이 간택받지 못한 것이 변수다. 지난 총선에서 출사표를 던졌던 전 지역위원장인 김경지 변호사가 전략공천 받았다. 내부적인 파열음이 적지 않다.
여기에 ‘지민비조’로 총선 당시 민주당과 합을 맞췄던 조국혁신당까지 금정구를 양보하라는 입장을 연일 밝히는 중이다. 야권 내에서도 이 구도로는 단일대오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우려까지 흘러나온다. 과연 부산 야권의 후보 단일화는 가능할까.
반면, 이번 명절 연휴에는 밥상머리에 제발 올리지 말아야 할 ‘불량 이슈’도 있다. 바로 가짜뉴스와 괴담이다. 한바탕 난리가 났던 민주당의 계엄령 의혹이 대표적이다. 정쟁에 찌들다 못해 갈 때까지 간 정치권의 망동이다. 정부가 국회 해산을 노리고 계엄령을 준비하고 있다는 의혹을 엄연한 공당의 대표부터 최고위원까지 근거도 없이 떠들었다. 정확한 근거를 대라는 요구가 빗발치자 박근혜 정부 시절 의혹을 되살리더니 결국엔 ‘예방 차원의 발언’이라며 꼬리를 내렸다.
근거 없는 의혹 제기는 문자 그대로 선동이다. 조상이 먹고 자식이 먹을 음식이라 예로부터 가격 흥정도 안 하고 빚어올리는 게 명절 밥상이다. 2024년 한가위 밥상머리에는 건강하고 상식적인 논의만 오가야 한다.
2024-09-11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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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동남권 광역철도 특별법' 통과에 힘 모으자
최근 경남 양산시에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경제성 확보가 쉽지 않다’는 소문으로 적신호가 켜졌던 ‘동남권 순환 광역철도’(이하 동남권 광역철도)가 국토교통부의 사전 타당성 조사(이하 사타)에서 ‘경제성을 확보했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동남권 광역철도는 KTX 울산역~양산시 상·하북~물금역~김해시 진영역 간 총연장 51.4km 구간을, 철로로 연결하는 사업이다.
지역 정치권 등에서는 동남권 광역철도의 사타 결과 비용 대비 편익인 B/C가 0.7을 넘겨 경제성을 확보한 것으로 파악됐다. ‘예비 타당성 조사’(예타)가 진행 중인 부울경 광역철도의 사타 결과(0.66)보다 높다. 국토교통부는 다음 달 기획재정부에 동남권 광역철도 예타를 신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동남권 광역철도와 부울경 광역철도가 예타를 통과해 본궤도에 오르면 765만 명이 거주하는 부울경이 하나의 교통망으로 연결되면서 1시간 생활권이 현실화할 것으로 기대된다. 인적·물류 교류 활성화로 경제공동체 구축에 도움이 되고 시도민 교통 불편 해소에도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동남권 광역철도 예타 통과는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부울경 광역철도와 비슷한 길을 갈 것으로 보인다. 부울경 광역철도는 사타 때보다 사업비가 3배가량 뛰면서 경제성 확보 어려움으로 결과 발표가 미뤄지고 있다.
동남권 광역철도 사타 결과도 지난해 10월 예정됐으나, 10개월 이상 늦어졌다. 경제성 확보가 이유였다고 한다. 예타는 사타 때보다 경제성을 엄중하게 보기 때문에 현재로선 경제성이 나올지 장담할 수 없다. 동남권 광역철도에 투입되는 차량이 최고 시속 180km인 GTX급 광역 급행철도인 데다 양산시가지 구간은 지하 건설 이야기가 나오면서 사업비 역시 사타 때보다 증액될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경제성 확보를 위해 노선 변경, 역사 수 축소 등 계획 변경이 뒤따를 것이고 결과 발표도 미뤄질 수밖에 없다.
실제 부산 노포동~양산 웅상~KTX 울산역을 잇는 부울경 광역철도(48.8km)의 경우 예타 신청 때 트램에서 경전철로, 웅상시가지 지하 건설 등으로 사업비가 1조 600억 원에서 3조 400억 원으로 급증하면서 결과 발표가 지연되고 있다. 지난 6월에서 9월로, 또다시 오는 12월로 예정되면서 부정적인 기류가 강해지고 있다.
이런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김태호·백종헌·서범수·정동만·김상욱 국회의원이 지난달 기자회견을 열어 부울경 광역철도의 예타 통과와 조속한 착공을 건의했다. 박형준 부산시장, 김두겸 울산시장, 박완수 경남지사도 부울경 광역철도와 동남권 광역철도 조기 구축을 위한 공동 건의문을 기획재정부와 국토교통부에 전달했다.
동남권 광역철도가 예타를 통과하더라도 문제다. 광역철도 사업비는 정부와 지자체 7 대 3으로 부담한다. 사타 때 사업비는 1조 9345억 원이며, 이 중 정부는 1조 3541억 원, 지자체는 5804억 원을 각각 부담한다. 지자체는 다시 노선 길이대로 경남도와 울산시가 부담한다. 여기에 3조 400억 원의 부울경 광역철도 사업비를 더하면 지자체 부담은 더 늘어난다. 광역철도 운영비 역시 일정 비율 지자제가 부담한다.
문제는 광역단체인 경남도가 사업비와 운영비를 부담해야 하지만 2개 노선 모두가 양산을 통과함에 따라 경남도 부담분 상당액을 양산시가 부담할 가능성이 높다. 양산시가 수천억 원으로 추정되는 사업비와 운영비를 부담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부담 능력이 있다고 해도 사업이 완료될 때까지 다른 사업은 엄두도 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 시점에서 윤영석 국회의원이 발의한 동남권 광역철도의 예타 면제와 국비 지원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동남권 광역철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 주목받고 있다. 특별법은 동남권 광역철도 건설사업이 효율적이고 신속하게 추진되도록 하기 위해 예타 면제와 정부의 행정적·재정적 지원, 동남권 광역철도 건설추진단 신설 등을 규정하고 있다. 특별법이 통과하면 예타 면제는 물론 지자체의 사업비와 운영비 부담도 없어진다. 사업 자체를 정부(국철)에서 추진하기 때문이다.
부울경은 지난 10년간 39만 명의 인구가 감소했다. 열악한 철도 연결망은 지역 균형발전을 저해하고, 인구 유출을 통한 지역 소멸을 가속화하고 있다. 정부는 부울경 교통망 개선을 통한 인구 유출을 방지하고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부울경 광역철도 예타 통과는 물론 동남권 광역철도 건설을 위한 특별법 통과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부울경 지자체는 물론 주민, 정치권도 똘똘 뭉쳐 지자체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이면서 2개 광역철도가 개통될 수 있도록 다시 한 번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김태권 동부경남울산본부장 ktg660@busan.com
2024-09-09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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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지금, 바로 여기에서
2021년 2월 미국 텍사스주 남쪽 샌 안토니오에 눈이 펑펑 내린다. 놀란 시민들이 거리로 나와 손을 휘젓고 머리를 감싼다. 같은 시각, 멀지 않은 휴스턴. 눈 폭풍이 거세게 몰아친다. 주유소 연료도, 마트 식료품도 동난다. 수도관이 얼어 물이 나오지 않고, 동파로 천장에서 물이 쏟아진다.
그해 6월 캐나다에서 체감 기온이 50도까지 치솟는다. 케냐에선 메뚜기 떼가 창궐해 식량을 휩쓸고, 거대한 싸이클론이 인도네시아를 덮친다. 물에 잠길 위기에 처한 차 안에서 아이가 신을 찾으며 울부짖는다. 끔찍한 홍수와 산사태는 독일, 중국, 미국 등지를 강타한다. 위성에서 내려다 본 지구에서 셀 수 없는 산불이 일어나 숲과 집을 삼킨다.
잘 만든 재난영화의 장면들일까? 모두 2021년 한 해에 벌어진 실제 상황. 마침 5일 오후 6시 30분 영화의전당에서 닻을 올리는 세 번째 하나뿐인지구영상제(BPFF) 개막작 ‘히어 나우 프로젝트(The Here Now Project)’에 담긴 현장이다. 17개국 12개 언어를 쓰는 세계인이 담은 이 기후위기 다큐멘터리는 이날 처음 아시아에서 공개된다.
올해 우리는 역대급 폭염을 온 몸으로 견뎠다. 기후학자들은 세계적으로 가장 더운 여름으로 기록된 지난해보다 올해가 더 뜨거운 해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지난 3일 행정안전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는 폭염으로 30명이 목숨을 잃었다고 발표했다. 그래도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 우리는 다시 평화로운 일상을 살아갈 것이다.
영화를 보면, 재앙이 발생하기 전 잇따르는 징후와 경고를 무시하다가 늘 사달이 난다. 현실에서도 기후위기가 부르는 파국을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것이 뻔하다.
기후위기는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다. 생명을 앗아가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미래에 대한 희망까지 앗아가서다.
악순환의 고리는 이렇게 연결된다. 기후 변화는 생태계를 무너뜨린다. 인간의 건강은 더욱 나빠진다. 어린이, 청소년의 기후 우울증이 폭증한다. 식량난에 인플레이션이 극에 달한다. 이는 노동력과 생계소득, 식량 생산 감소로 이어진다. 삶의 질은 갈수록 떨어져 극단적인 양극화가 심화한다. 기후변화를 유발시킨 최상위층이 재력으로 편안한 삶을 유지하는 사이 그럴 수 없는 이들이 더 고통을 받는다. 사회 갈등이 폭발한다. 사회 시스템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진다. 결국 세상은 ‘지옥’이 된다.
이런 재앙의 현장은 멀리 있지 않다. 아름다운 푸른 하늘에 지금도 매일 1억 600만 t이 넘는 공해 물질이 퍼져나간다. 비행기, 석유 제조, 산불, 제조업체, 농작물 소각, 대규모 축산업 등이 범인이다.
지난달 29일 헌법재판소는 역사에 남을 판결을 남겼다. 2031년 이후 온실가스 감축량을 설정하지 않은 정부의 기후위기 대응 계획이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불합치’ 결정이다. 이대로는 국민, 특히 후손들의 기본권을 충분히 보호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쩌라는 것인가. 기후위기 이야기가 나오면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이들이 많다. 텀블러를 사용하고 열심히 쓰레기 재활용을 한다고, 간헐적 비건으로 살아간다고 해서 해결될 수준이 아니라 한다. ‘자연 앞에서 인간은 무력하다’며 자포자기하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기후위기는 자연이 아니라 인간이 초래한 것이다. 자연은 죄가 없다. 인간이 해결해야 한다. 지구는 인간이라는 골칫덩이가 사라져도 전혀 문제 될 것이 없다.
속도를 늦추고 서둘러 적응해야 한다. 대안을 찾기 위해 같이 연구하고 지지하지 않으면 도미노처럼 모두가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한다. 더 많은 투자로 속도를 늦추고, 뜨거워진 세상에 빨리 적응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열사병 증세를 보이는데도 ‘꾀병’이라거나 ‘좀 쉬면 낫겠지’라고 안이하게 대응하다가 소중한 생명을 잃는 비극을 더 반복해선 안된다.
‘기후위기 각성’을 해야 한다. ‘마이 네임 이즈 가브리엘’이라는 JTBC 예능 프로그램이 있다. 세계 각국에 있는 타인의 삶을 72시간 동안 대신 살아보는 것이 콘셉트다. 나만의 삶이 아니라 기후위기로 세계인이 겪는 고통을 잠시라도 체험하는 콘텐츠, ‘지구촌’과 소통하고 이해하려는 그런 노력이 필요하다.
언제 어디에 있든 상관없다. 기후위기는 나 몰라라 무작정 탄소를 배출하는 이들에게 제대로 타격을 주는 ‘연대 행동’이 지금 필요하다. 탄소 저감 활동, ESG 경영에 무신경한 기업에 전화나 SNS채널 등으로 항의하고, 불매운동에 나서자. 반기후위기 공약은 투표로 심판하자. 변하지 않으면 퇴출된다는 사실을 기업인과 정치인이 깨닫도록 하자는 것이다.
지금, 바로 여기에서 함께 연대하며 행동해야 우리 아들딸이 살아남는다.
박세익 플랫폼콘텐츠부 부장 run@busan.com
2024-09-04 [1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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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9월의 미술축제
최근 급하게 일정을 잡아 진주에 다녀왔다. 종료를 앞둔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전시를 보기 위해서다. 진주가 낳은 세계적 예술가 고 이성자 화백. 1951년 프랑스로 간 그는 해방 이후 전업 작가로 유럽에 정착한 첫 세대이다. 일행은 북극과 알래스카를 지나는 비행 항로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작품 앞에서 감탄했다. 그날 부산으로 돌아오다 창원에 들렀다. 경남도립미술관에서도 이 화백의 작품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작을 실감형 미디어아트로 재구성한 전시는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관람객에게 인기였다. 경남을 대표하는 추상회화 거장과 젊은 작가를 소개한 ‘추상과 관객’ 전에서 진주에서 보지 못한 다른 작품까지 감상했다.
1일 투어 ‘이성자데이’의 시작은 베니스였다. ‘물의 도시를 뒤덮는 미술의 물결을 직접 느껴보자.’ 올봄 베니스비엔날레에 도전한 이유다. 1895년 시작한 세계적 예술 축제가 올해로 60회를 맞았다는 점에서 관심이 더 갔다. 현지에 도착하니 베니스 전체가 비엔날레를 홍보하는 느낌이었다. 베니스비엔날레의 규모는 엄청났다. 332명(팀)이 참여한 본전시와 국가관 전시를 돌아다니느라 매일이 전쟁 같았다. 너무 기대가 컸던 탓인지, 작품 수에 압도된 탓인지 비엔날레 자체에서는 큰 감흥을 받지 못했다. 대신 베니스비엔날레 기간에 맞춰 열리는 병행전시가 더 흥미로웠다. 주 전시장 지역에서 떨어진 아르테노바에서 열린 ‘이성자: 지구 저편으로’도 비엔날레 공식 병행전시의 하나였다.
올해는 베니스에서 K아트를 알리는 전시가 많이 열렸다. 부산 작가와 부산에서 전시를 봤던 작가의 작품을 만났을 때는 반가웠다. 구글 지도를 들고 어렵게 찾아간 유영국이나 이배 작가 전시는 감동이 컸다. 전시장 자체도 볼거리였다. 현지에서 만난 유학생에게 한국 전위미술가 이승택과 미국 개념미술가 제임스 리 바이어스 2인전에 대한 정보를 받았다. 시내 건물을 빌려 운영되는 짐바브웨 국가관에 우연히 들어가 한글이 쓰인 지압 신발을 이용한 작품을 발견하기도 했다. 중국 추상화가 주테춘, 알렉스 카츠 같은 작가의 미술관급 전시를 무료로 감상하는 기회도 얻었다. 무라노 유리공예를 소개하는 특별전이나 지역 작가를 소개하는 전시장까지. 이게 베니스비엔날레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1일 미술여행주간이 시작됐다. 올 4월 문체부는 부산, 서울, 광주 등 지자체와 손잡고 ‘대한민국 미술축제’ 성공을 위한 공동선언문을 발표했다. 부산비엔날레를 시작으로 4일 개막하는 키아프 서울과 프리즈 서울, 7일부터 열리는 광주비엔날레 등 대규모 미술행사를 연계해서 관람객 참여 폭을 확대한다는 취지다. 정부 차원에서 지원한 영향인지 현장에서는 개별로 행사를 알릴 때보다 홍보 효과가 크다는 반응이 나온다.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지원을 받은 부산비엔날레 전시해설은 매회 정원을 채울 정도로 인기란다. 주요 미술관 할인 혜택까지 제공하는 부산·광주 비엔날레 통합권과 철도승차권을 연계한 특별 관광상품 판매 등 관계기관의 협력도 눈에 띈다.
“서울이 정말 들썩들썩해요.” 지인의 이야기는 쏟아지는 보도자료의 홍수 속에서도 확인된다. 3회차에 접어든 ‘키아프리즈’를 찾아올 국내외 미술 관계자를 겨냥해 야심 차게 준비한 전시 소식이 이어진다. 세계적 거장, K아트를 이끄는 중견 작가, 새롭게 주목받는 신진작가 등을 만나는 기회가 서울 곳곳에 펼쳐진다. 대한민국 미술축제의 순항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부산, 광주, 대구, 대전 등 다른 지역에서도 예전보다 구체적인 움직임이 보이는 것 같아 긍정적이지만, 대부분의 열기가 서울에만 집중되는 점은 아쉽다. 우리 도시에서 열리는 전시들이 대한민국 미술축제라는 배에 같이 오를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지역 문화행정의 역할이 아닐까.
그렇다고 미술축제가 서울만의 것이라고 예단할 필요는 없다. 우선 부산비엔날레가 준비한 ‘현대미술의 배’에 승선해 보자. 원도심에 있는 부산근현대역사관, 초량재, 한성1918은 입장료도 안 받는다. 인터넷 검색창에 ‘부산 전시’만 입력해도 다양한 전시 정보가 쏟아진다. 그중 가까이 있는 전시장부터 방문해도 된다. 개인적으로 관심이 가는 전시를 찾아가면 더 좋다. 부산 갤러리들도 작가와의 만남, 오픈 파티 등 크고 작은 행사를 준비 중이다. 지난주 해운대 한 갤러리의 전시 개막식에 참석했다. 대부분 초면이라 한동안 어색함이 흘렀다.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 이야기를 하면서 분위기가 점점 좋아졌다. 축제가 멀리 있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 이번 주말에는 서울 대신 지인들과 부산비엔날레를 다시 보러 가기로 했다. 내친김에 수첩에 연말까지 가볼 곳을 적어본다. 광주비엔날레, 창원조각비엔날레, 대구 간송미술관, 대전 이응노미술관과 헤레디움…. 올해는 각지로 예술 발품을 좀 많이 팔 운세인가 보다.
2024-09-02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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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다문화와 공존하는 도시, 부산
최근 은성의료재단 좋은병원들이 개최한 다문화가족을 위한 사회사업 ‘2024 굿 스타트(GOOD START)’ 발대식에 취재를 간 적이 있다. 굿 스타트 사업은 부산 지역 저소득 다문화가족에 교육과 의료 지원을 하는 사회사업 프로젝트다. 2021년 4월 부산시, 은성의료재단 좋은병원들, 초록우산, 부산일보사가 협약을 체결하면서 시작됐다.
부산시와 부산 지역 14개 다문화가족지원센터는 굿 스타트 사업 안내와 지원 대상을 추천하고, 초록우산은 대상자 선정과 관리를 한다. 은성의료재단은 매년 1억 원의 사업비를 지원한다. 주요 사업은 다문화가족 산모 대상 마더박스 제작과 지원, 아동 기초 교육 학습 지원, 학부모 대상 검정고시 장학금 지원 등이다.
부산 지역에서 다문화가족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행정안전부 외국인 주민 현황 통계(2022년 11월 기준)에 따르면 부산 지역 다문화가족(결혼이민자 및 자녀)은 2만 7389명에 이른다. 국적별로는 베트남이 9805명으로 가장 많고, 중국 4761명, 중국(한국계) 3125명, 필리핀 2004명, 일본 1274명, 대만 743명 등 순으로 나타났다. 다문화가족은 2014년 2만 551명으로 2만 명을 돌파한 뒤 2020년 2만 6050명, 2021년 2만 6808명, 2022년 2만 7389명으로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22년 기준 다문화가족 2만 7389명은 결혼이민자 1만 4265명, 자녀 1만 3124명으로 구성돼 있다. 국제결혼 초기 입국한 여성들의 자녀가 성장함에 따라 영·유아 비중은 낮아지고 학령기 자녀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다문화가족 자녀 1만 3124명 중 학령기(7~18세) 자녀는 8212명으로 62%나 차지한다. 다문화가족은 자녀 돌봄, 교육비 마련, 학습 지도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부산시도 다문화가족 구성원이 언어와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시는 국비 사업으로 다문화가족 자녀 진로 설계·기초 학습·교육활동비 지원, 다문화가족 방문교육 사업, 다문화가족 자녀 언어 발달 지원, 이중언어 교육 지원 등을 실시하고 있다. 또 시 자체 사업으로 결혼이주여성 학력 신장 지원, 한국어 교재 지원등을 펼치고 있다.
‘수도권 집중’이란 폐해 속에서 부산은 저출생, 학령 인구 감소, 청년 인구 유출, 생산인구 감소, 총인구 감소 현상을 겪고 있다. 인구 절벽과 지역 소멸 위기감이 어느 때보다 크다. 이런 가운데 다문화가족을 포용해 함께 성장·발전하고 외국인 유학생, 외국인 근로자 등 외국인 주민을 지역 인구로서 어떻게 통합하고 유입할 것인가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산시는 지난 7월 1일 인구정책담당관 부서를 신설했다. 인구 전략을 수립하고, 현장 수요 맞춤형 인재 양성, 부산형 체류 콘텐츠 개발, 외국인 유학생 유치 등 청년인구 유입 정책을 추진한다고 한다. 인구정책담당관에는 다문화가정지원팀과 외국인정책팀이 들어가 있으며 다문화가족·외국인 주민 관련 정책을 통합 추진한다.
학령 인구 감소로 위기를 맞고 있는 대학들도 유학생 유치와 양성을 통해 돌파구를 모색하고 있다. 교육부는 오는 2027년까지 유학생 30만 명 유치를 목표로 유학생 교육경쟁력 제고 방안인 ‘스터디 코리아 300K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부산시도 2028년까지 외국인 유학생을 3만 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이 프로젝트는 RISE(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 사업과 연계해 우수한 외국인 유학생의 유치, 학업, 취업, 정주 전략을 마련하는 것이다. 외국인 유학생을 미래의 이웃으로 보고, 이들에게 한국어와 한국문화, 기술 등 직업교육을 제공하고 취업 역량을 강화해 국내 산업인력으로 양성한다는 취지다. 외국인 유학생 유치는 지역 대학의 신입생 모집난과 기업 구인난을 동시에 해소하고 해외 우수 인재들의 지역 정착으로 이어져 인구 소멸에 대응하는 유용한 전략이 될 수 있다.
물론 부산이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해서는 △결혼, 출산, 양육이 행복한 도시를 위한 제도 마련과 지역기업들의 노력 △산업은행 이전 등 공공기관 이전과 산업구조 고도화 등을 통한 지역 일자리 확보 △주거·여가·문화·교통 등 정주 환경 통합적 개선 등 종합적이고 중층적인 정책이 필요하다. 여기에 다문화가족 지원과 외국인 유학생 유치도 인구절벽을 막고, 부산이 글로벌 도시로 도약하는 하나의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본다.
다문화가족이 증가하고 외국인 유학생 유치가 활발해지는 시점에서 지역 사회가 이들을 포용하고 공존하는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우리 모두가 다문화가족을 포함한 이주민과 외국인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버리고, 다문화 수용성을 점점 높였으면 한다.
김상훈 독자여론부 선임기자 neato@busan.com
2024-08-28 [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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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골디락스 콤플렉스 “부산 여권 뭐라도 하라”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를 보면서 뜬금없이 고대 로마 콜로세움의 검투 장면이 떠올랐다. 막판까지 5명의 최고위원 당선권 경계선에 있던 전현희 의원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장에서 “김건희 살인자”를 목청껏 외친 후 단숨에 2위로 지도부에 입성했다. 친명(친이재명)계 중에서도 그닥 존재감이 없던 김병주 의원이 줄곧 당선 안정권에 속할 수 있었던 동력 또한 국회 본회의장에서의 느닷없는 “정신 나간 국민의힘 의원들” 발언이었다. 치과의사 출신에 장관급인 권익위원장까지 지낸 정치 엘리트와 ‘별 중의 별’ 4성 장군 출신 의원이 강성 지지층의 ‘엄지척’을 받기 위해 싸움닭을 자처한 꼴이다. 극에 달한 여야 적대 정치를 상징하는 장면들이다. 더 험하게, 더 격렬하게 여당과 치고 받을 줄 알아야 지지층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민주당 의원들과 더 잔인하고 흉폭하게 상대를 제압해야 광기 어린 군중의 선택을 받는 검투사, 왠지 신세가 흡사해 보이지 않는가. 여기서 무슨 정책과 비전, 리더십을 논하는 건 한가롭다. 오로지 윤석열 정권을 끝내고, 이재명 대표를 옹위하는 것 외에 나머지는 다 부차적일 뿐.
그렇게 쓸려 간 부차적인 것들 중에 KDB산업은행 부산 이전도 있다. 부산 전대에서 산은 이전의 최대 장애물인 김민석 의원의 약진은 개인적으로 충격이었다. 김 의원이 누구인가. 2010년 부산시장 선거에 도전하면서 ‘부산의 아들’을 자처한 김 의원이다. 당시 그의 선거 슬로건이 “서울을 이기자”였다. 경선이 끝나서도 부산 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 그는 이제 “산은이 부산에 가면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결사 반대한다. 부산 연고를 언급하는 질문에 처가는 호남이라며 “출신지는 큰 의미가 없다”고 말한다. 말이야 맞는다고 해도 그 표변이 놀랍고, 허탈하다. 그에게 부산은 그저 ‘철새 정치’로 인한 경력 단절을 해소하기 위한 소품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래서 아무리 이재명 대표가 “김민석 표가 왜 이렇게 안 나오냐”고 했어도 적어도 부산이라면 김 의원에게 준엄한 경고장을 날릴 것이라고 봤다. 결과는 예상과 정반대였다. 김 의원으로선 이제 지역구 시설인 산은을 지키는 데 거칠 것이 없어졌고, 전대 이후 ‘부산 민심을 이제 알겠느냐’며 김 의원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려던 부산은 할 말을 잃게 됐다.
민주당 전대 이후 산은 이전의 전제인 산은법 개정안 처리는 더 험난한 상황에 놓였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으로 등장한 지 3년이 지났지만 이전을 반대하는 민주당의 힘은 더 막강해졌고, 핵심 반대 세력들의 입지는 더 굳건해졌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뚫고 가야 할 부산의 대응은 무기력해 보인다. 금방 될 것처럼 여겼지만 20년의 ‘희망고문’을 겪었던 가덕신공항의 전철을 밟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물론 부산시나 개별 의원 차원에서 산은법,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 에어부산 분리매각 등 부산 주요 현안을 두고 ‘원내 지도부에 당부했다’, ‘산은 회장을 만났다’, ‘대한항공과 접촉했다’ 등 움직임은 부산해 보인다. 그러나 실질적 결과를 반드시 얻어내겠다는 결기보다는 ‘그래도 할 만큼 하고 있다’는 알리바이 만들기 정도로 느껴진다면 좀 지나친 얘기인가.
최근 만난 부산의 한 원외 인사는 “지난해 새만금 사업 예산이 삭감됐을 때 전북 국회의원과 시·도 의원까지 일제히 삭발로 항의로 정부의 재검토를 이끌어냈는데, 부산 정치권은 지역 회생의 절호의 기회가 날아가게 생겼는데 너무 차분한 것 아니냐”고 했다. 물론 삭발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다만 이재명 지키기에 올인한 거대 야당과 거부권 외에 수단이 없는 무기력한 소수 여당의 끝없는 반목 사이에서 수도권과 버금가는 국가적 과제인 지역 소멸을 막을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가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얼마 전 미 민주당 전당대회에 나선 미셸 오바마가 언급한 ‘골디락스 콤플렉스’가 기억에 남는다. 영미권 구전동화에서 유래된 이 말은 ‘극단적 조건 사이에서 적당한 해법을 추구한다’는 의미라고 한다. 그녀는 카멀라 해리스의 승리를 의심하는 지지층에게 ‘적당히 이길 수 있는 후보’는 없으니 가만히 앉아 기다리지 말고 한 표라도 더 얻기 위해 “뭐라도 하라(Do something)”고 지지층에게 일갈했다. 부산 여권이야말로 지금 이 콤플렉스에 갇혀 있는 상태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대통령과 당 지도부는 물론 민주당 지도부와도 과감하게 부딪쳐 현상 변화를 이끌어내기 보다는 적당하게 안주하면서 상황 변화만 기다리다가는 부산이 국가 ‘양대 축’으로 도약할 기회는 영영 날아갈지 모른다. 무모한 결행이든, 과감한 상상력이든 정말 뭐라도 해야 할 때다.
2024-08-26 [1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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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전기차 시장 ‘빙하기’ 오나
“앞으로 전기차 시대가 올 거다. 내연기관은 조만간 사라질 것이다.”
2000년대 후반 자동차 분야 출입처로 처음 왔을때 자동차 업계 한 전문가는 이렇게 얘기했다. 당시만 해도 가솔린차와 디젤차들이 주를 이루던 때였다. ‘설마 그렇게 될까’ 했다. 전기차 충전을 어떻게 할 건지, 요금을 어떻게 매길 건지 등 드는 의문도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이후 2013년 르노삼성(현 르노코리아)의 국내 첫 양산 전기차 ‘SM3 Z.E’가 나왔지만 한 번 충전에 135km 주행하는 정도여서 실용성이 떨어졌다. 그러다가 미국의 테슬라가 완충 시 주행거리를 500km 안팎으로 늘린 신차를 출시하고 이어 급속충전기까지 등장하면서 전기차 시장은 급격히 성장했다.
다른 완성차 업체들도 앞다퉈 전기차 개발에 나섰고, 주행거리가 테슬라와 맞먹는 모델들도 잇따라 선보였다. 2020년께는 전기차 시장이 향후 대세로 갈 거라며 메르세데스-벤츠 등 주요 완성차 업체들은 2030년 전후로 모든 내연기관을 전기차로 바꾸겠다고까지 발표했다.
하지만 전기차 시장은 최근 몇년새 주춤했다. 초창기에는 얼리어답터들을 중심으로 전기차 시장이 매년 30%씩 판매량이 늘어났지만 초기 수요가 어느 정도 해소되면서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이 생겨났다. 여기에 최근 인천 청라의 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일어난 벤츠 전기차 화재는 국민들에게 적지않은 충격을 줬다.
차 한 대 화재로 끝나지 않고 한 층 전체에 주차된 140여 대가 전소됐고, 아파트는 단전·단수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해당 전기차 소유주 입장에선 기름값 좀 아끼려다가 졸지에 대형 화재의 원인제공자가 됐고, 향후 예상되는 막대한 소송에도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번 화재이후 사회 전반에 ‘전기차 포비아(공포증)’가 형성되면서 아파트 단지들에선 지하 주차장 전기차 출입금지, 지하 충전 금지, 지하 충전시설 지상 이전 등의 움직임까지 일고 있다. 대중교통에서 최근 확대되고 있는 전기택시와 전기버스도 기피하는 분위기다. 한 40대 주부는 “길가에서 택시를 잡으려다가 전기차가 오면 그냥 보낸다. 왠지 타기가 불안하다”고 했다.
지구 반대편 포르투갈에서도 테슬라 추정 화재로 주차빌딩에 있던 차량 200여 대가 불 탔다.
전기차 화재는 대부분 배터리의 불안정한 액체상태에서 기인한다. 배터리에 열이 나면 부풀어오르면서 화재가 나고 옆 배터리셀로 번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른바 열폭주 현상이다. 전기차는 불이 나면 소방관들도 일반 화재처럼 진압하지 않고 있다. 6~7시간 차량이 전소되도록 내버려두거나 차량을 수조로 채워서 진압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자동차 업계에선 전기차 캐즘에서 이제 ‘전기차 빙하기’로 접어들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중고차 시장에선 이번 인천 화재 이후 “불안해서 못타겠다”며 2주 동안 기존 대비 거의 3배 이상의 매물이 쏟아지고 있다. 전기차 구매를 계약했던 이들도 취소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최근 전기차 개발에 올인하다시피한 국산 완성차 업체들과 수입차 업체들은 적잖이 당황스러운 눈치다. 하반기 전기차 출시가 줄줄이 예정돼 있는데 시장 상황은 ‘전면 보류’다. 일부 업체들은 ‘현상유지’ 차종이었던 하이브리드 모델 출시를 다시 서두르고 있다
이 같은 분위기에 업체들도 내연기관의 전기차 완전 전환 시점을 수년씩 늦추고 있다. 하이브리드 수요가 다시 살아나면서 이 부문 판매차종이 많은 일본 토요타, 렉서스와 혼다 차량 판매는 확대되고 있다.
한편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국내 배터리 제조사들은 화재에 강한 재료를 배터리에 사용하거나 불이 나더라도 옆 셀로 번지는 것을 막는 방법을 적용하는 등 안간힘을 쓰고 있다. 화재에 강해 ‘꿈의 배터리’라 불리는 전고체 배터리 개발에도 나서 이르면 2026년께 관련 제품이 출시될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2~3년간은 전기차 화재가 계속될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국내 전기차 판매를 주도하고 있는 테슬라와 현대차·기아는 “안전에 문제가 없다”며 설명자료를 내고 고객 대상으로 안전점검까지 실시하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불안은 쉽게 가시지 않고 있다.
국회와 학계, 완성차 제조업체 등을 중심으로 전기차 화재 방지에 대한 세미나도 잇따라 열리고 있다. 하지만 전기차 화재를 막을 ‘뾰족한 수’는 현재로선 없다.
2024-08-21 [1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