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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여백의 시간…김종학의 ‘드로잉 세계’를 만난다

선과 여백의 시간…김종학의 ‘드로잉 세계’를 만난다

‘설악산의 화가’ 혹은 ‘꽃의 화가’로 불리는 김종학에게 드로잉은 선의 기록이나 회화의 밑그림이 아니라고 한다. 자연을 응시하고 감각을 다듬은 끝에 도달한 직관의 흔적이라고나 할까. 창작의 시작부터 완성에 이르는 독립된 예술 행위였다.김 화백의 드로잉 작업 전반을 조망하는 개인전 ‘온 페이퍼’(On Paper)가 부산 해운대구 달맞이길에 있는 조현화랑에서 지난 3일부터 열리고 있다. 김종학의 회화 세계를 이끌어온 ‘선(線)의 사유’를 본격적으로 다루는 기획전으로,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1990년대 이전의 작업을 포함해 드로잉, 수채, 목판화 등 140여 점이 소개된다.김 화백의 드로잉 작업만 모아서 전시를 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근년 들어서 부산에선 60여 년에 걸친 화업을 한자리에서 풀어낸 2020년 부산시립미술관 ‘한국현대미술작가조명Ⅲ-김종학’ 회고전이 있었고, 2022년 김 화백의 작품을 사계절로 구분한 4개의 전시(봄, 여름, 가을, 겨울) 중 ‘봄’과 ‘여름’이 조현화랑 해운대와 달맞이에서 열렸다.여든여덟의 김 화백은 주로 강원도 속초에서 지내지만, 건강상 서울을 오가고 있다. 생애 최초의 미국 미술관 전시회도 지난 4월부터 미국 애틀랜타 하이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하이미술관 전시를 시작으로 미 전역 순회 전시도 예정돼 있다는 게 조현화랑 관계자의 전언이다.부산 전시는 1층과 2층으로 나뉜다. 메인 전시는 드로잉 연작이 연대기적으로 전개되는 2층이지만, 1층 전시장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가로 18m에 이르는 그의 대표작 ‘풍경’ 연작도 볼만하다. 일자형이 아닌, 기역 자로 꺾어지는 배치를 한 것도 조현화랑 공간과 어우러져 멋스러움을 더한다. 이 작품은 2022년 ‘여름’ 전 때 다른 대작 ‘판데모니움’과 함께 선보여 화제가 됐다.1층엔 김 화백의 강원도 작업실을 재현한 공간도 설치된다. 온갖 물감과 종이가 널브러져 있어 발 디딜 틈 없어 보이지만, 김 화백은 그곳에서 작업하는 틈틈이 닭 조형물, 장갑과 붓, 빗 손잡이에도 드로잉을 선보였다. 그러한 자취가 묻어 있는 오브제를 찾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유수진 전시팀장은 “유머와 놀이 본능이 녹아든 오브제들은 김종학 예술의 출발점이 ‘자연스러운 감각’임을 말해주며, 작업실 그 자체가 하나의 조형 세계로 다가온다”고 전했다.2층 전시장은 김 화백의 드로잉이 연대기적으로 전시된다. 1960년대 초 추상 실험부터 2020년대 ‘식물 드로잉’까지, 선과 여백, 번짐과 구조에 대한 그의 탐구가 시대별로 소개된다.1960년대 목판화는 선과 구도를 실험하는 드로잉적 탐구의 연장선에 있다. 대표작 ‘추상’(1962)과 ‘역사’(1966)는 먹이라는 동양적 재료를 통해 드로잉의 자율성과 회화적 확장 가능성을 보여준다. 김 화백의 구상회화 전환은 1978~1979년 미국 체류 시기에 촉진됐다. 이 시기 드로잉에는 도시 풍경과 정물, 인물 드로잉 같은 구상적 접근이 강화된다.1979년 설악산으로 이주한 뒤에는 산과 나무, 숲의 풍경을 꾸준히 그려 나간다. 1980~1990년대 ‘수채 드로잉’에서는 자연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한층 분명해진다. 2000년대부터는 설경과 소나무를 반복적으로 그리며, 자연의 구조보다는 그 기운과 호흡에 집중하는 드로잉이 전개된다.전시의 마지막에는 작가가 2020년대에 작업한 패턴이 강조된 인물화와 ‘식물 드로잉’을 함께 소개한다. 특히 김 화백이 설악산을 떠나 2015년부터 2024년까지 부산에 머무는 동안 설악산을 더 이상 마주할 수 없게 되자 정원과 식물, 실내에서의 드로잉이 두드러졌다. 이 시기 작품은 자연을 ‘기억하고 응시하는’ 태도가 두드러진다. 선은 한층 간결하고 깊어졌으며, 오랜 세월 감각을 갈고닦은 작가의 내면 풍경이 그 안에서 조용히 피어난다. 그러고 보면 김 화백이 부산에 머물렀던 시기에 중요한 작품을 많이 창작한 만큼 이때를 일명 ‘김종학의 부산 시대’로 명명해도 좋을 법하다. 전시는 8월 17일까지이고, 화~일요일 오전 10시 30분~오후 6시 30분 무료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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