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왜 베네수엘라를… [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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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지난 3일(현지시간)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수도 카라카스에서 전격 체포해 압송한 군사작전은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취임 후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를 마약 유입의 중요 통로로 보고 마두로 정권에 대한 군사적 압박을 고조시켜 왔다. 마두로 대통령을 체포한 지 나흘 뒤인 7일(현지시간)에는 베네수엘라 석유 판매와 수익 창출, 수익 사용처까지 관리하며 원유 통제권을 장악했다. 베네수엘라산 석유 판매처에서 중국을 배제하고 베네수엘라와 연계된 러시아 유조선을 나포하는 등 서반구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영향력 차단에도 나섰다. 힘에 의한 서반구 장악이 노골화되는 형국이다.


미국 국무부가 지난 5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엑스(X)에 올린 이미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사진 위에 ‘이것은 우리의 반구’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연합뉴스 미국 국무부가 지난 5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 엑스(X)에 올린 이미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사진 위에 ‘이것은 우리의 반구’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연합뉴스

■ 거침없는 ‘돈로 독트린’

마두로 축출 작전과 베네수엘라 석유자원에 대한 관할은 트럼프 대통령의 ‘돈로 독트린’(Donroe Doctrine)이 현실화함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외교안보 정책의 최우선 순위로 천명한 ‘서반구 패권 회복’ 의지를 실제 무력 행동으로 드러낸 것이다. 서반구는 그리니치 천문대를 지나는 본초 자오선(경도 0도)을 기준으로 서쪽 방향 경도 180도까지의 반구를 의미한다. 아메리카 대륙 전체와 유럽·아프리카 서쪽 일부, 아시아·호주 동쪽 일부를 포함한다.

돈로 독트린은 트럼프 대통령의 이름 ‘도널드’와 19세기 당시 아메리카 대륙에서 미국 패권을 강조한 제임스 먼로 전 대통령(재임 1817~1825년)의 외교 정책 ‘먼로 독트린’을 합성한 단어다. 중국과 러시아의 서반구 영향력을 억제하고 이 지역에서 미국의 단일 패권을 회복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가 담겨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12월 4일 공개한 국가안보전략(NSS)에서도 서반구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중요한 과제로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취임 직후부터 베네수엘라뿐만 아니라 콜롬비아, 쿠바, 멕시코, 덴마크령 그린란드 등 서반구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노골적으로 꾀했다. 중국과의 패권 경쟁에서 에너지·광물 등 공급망 문제가 핵심 쟁점이 되면서 단거리 공급망을 구축할 수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군이 기습적인 군사 작전으로 체포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근황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공개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일(현지시간) 미군이 기습적인 군사 작전으로 체포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근황 사진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에 공개했다. 연합뉴스

■ 베네수엘라 때린 이유는

베네수엘라는 3030억 배럴의 원유를 지닌 세계 1위 원유 보유국이다. 하지만 서방의 오랜 제재와 경제난으로 관련 인프라가 크게 낙후된 상황이다. 또 차베스 정권과 마두로 정권의 현금성 무상복지 정책과 석유 기업 국유화 조치로 인프라 재건에 차질을 빚고 있다.

베네수엘라에는 과거 미국의 엑슨모빌·걸프오일 등이 진출했지만, 차베스 전 대통령이 2007년 자원 민족주의를 앞세워 석유산업을 국유화하면서 미국 석유기업 자산 일부가 강제 몰수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3일 기자회견에서 베네수엘라가 안정적인 새 정권으로 이양될 때까지 미군이 주둔하며 통치할 것이라며 미국 석유기업들이 베네수엘라 석유 인프라 재건 및 수익 창출에 참여할 것이라고 했다. 루비오 국무장관은 7일(현지시간) 베네수엘라 체제 변화에 대한 진전된 구상을 내놓았다. 대 베네수엘라 정책을 안정화, 회복, 전환 3단계로 나누고 미국 영향력 하에 정권 교체까지 시사한 것이다. 베네수엘라에 친미 정권을 세워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관리하겠다는 의미다.

트럼프 대통령은 7일 “베네수엘라가 새로 체결한 석유 거래로 받은 자금으로 미국산 제품만 구매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의 제재로 수출이 막힌 베네수엘라 원유를 인수해 대신 팔고 그 수익금의 사용처까지 결정하겠다는 계획을 공개하면서 베네수엘라 원유 통제를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의 ‘석유 패권’ 행보가 급가속하는 상황이다.

미국의 앞마당인 중남미에서 중국이 영향력을 확대한 것도 베네수엘라 공습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중국은 2007년 이후 베네수엘라 인프라에 약 670억 달러(약 97조 원)를 쏟아붓는 등 베네수엘라를 중남미 ‘일대일로’의 교두보로 활용했다. 베네수엘라 원유의 약 80%를 사들이는 국가가 중국이다. 특히 2023년 9월 마두로 대통령의 방중 이후 양국 관계는 ‘전천후 전략적 동반자’로 격상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베네수엘라가 중국, 러시아, 이란 등 적대 세력과 밀착해 아메리카 대륙 내 반미 교두보 역할을 해온 것을 국가 안보의 핵심 위협으로 간주해 왔다. 마두로 축출은 미국의 허락 없이 외부 세력과 손을 잡는 세력에게는 가차 없는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본보기식 경고로 해석된다. <뉴욕타임스>는 “베네수엘라는 ‘현대판 제국주의’의 첫 번째 대상이 된 것”이라고 전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일(현지시간)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하기 위한 '확고한 결의' 작전 진행 상황을 참모들과 함께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3일(현지시간)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체포하기 위한 '확고한 결의' 작전 진행 상황을 참모들과 함께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 그린란드까지 눈독

트럼프는 덴마크령 그린란드를 향한 영토 야욕도 노골화하고 있다. 하지만 미 의회가 “위험한 도발”이라며 우려하고, 유럽 주요국들도 ‘그린란드 연대’를 표명하는 등 국내외적으로 강한 반발에 직면했다. 미국은 냉전기부터 매입 등의 방법을 통해 그린란드를 미국령으로 삼으려는 시도를 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때부터 그린란드를 향한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린란드는 북미와 유럽의 가운데에 자리해 공군과 미사일 전력 운용 측면에서 지정학적 가치가 높다. 네오디뮴·디스프로슘 등 희토류, 니켈·리튬·티타늄 등 전략 광물, 천연가스와 원유가 풍부하다. 특히 희토류는 반도체, 배터리, 방위산업 등 첨단 기술 분야에서 필수적인 원자재로 중국과 패권 전쟁을 벌이는 미국에 꼭 필요한 것이다. 그린란드는 자원과 안보 측면에서 중국과 러시아를 모두 견제해야 하는 미국 입장에선 전략적 요충지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덴마크령 그린란드의 수도 누크와 세르미치아크산. 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이 눈독을 들이고 있는 덴마크령 그린란드의 수도 누크와 세르미치아크산. 연합뉴스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의 부인이자 우파 팟캐스터인 케이티 밀러가 SNS에 올린 사진. 성조기로 뒤덮인 그린란드 지도의 모습. 연합뉴스 스티븐 밀러 백악관 부비서실장의 부인이자 우파 팟캐스터인 케이티 밀러가 SNS에 올린 사진. 성조기로 뒤덮인 그린란드 지도의 모습. 연합뉴스

■ 힘의 세계질서 가속화?

앞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서반구 지배권을 얼마나, 어디까지 공격적으로 확대해 나갈 것인지가 관건이다. 트럼프는 지난해 자국 이익을 앞세운 관세 전쟁으로 자유무역 체제를 와해시킨 것처럼 이제는 외교·안보의 국제질서까지 바꾸고 있다. 미국의 베네수엘라 장악은 중국과 러시아를 자극해 힘의 세계질서를 가속화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미국이 ‘세계의 경찰’에서 ‘서반구의 경찰’로 물러나는 ‘돈로 독트린’ 폭풍이 거세지면 그 여파는 우리에게도 닥칠 수 있다. 미국이 유럽에선 러시아, 아시아에선 중국의 영향력을 일정 부분 인정하는 소위 ‘강대국 결탁의 시대’ 서막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적나라한 힘의 논리 앞에서 인류 공동 번영이나 상호 협력의 가치가 점점 축소되는 상황이다.

전후 70여 년 동안 유지돼 온 국제질서가 무너지며 ‘힘에 의한 현상 변경’이 가능한 시대로 접어드는 듯하다. 우리 정부도 국제 정세에 대한 냉철한 현실 인식을 지녀야 한다. 트럼프의 ‘자기 앞마당 영역 표시’가 동북아시아의 안보·외교·경제 지형에 불러올 나비효과를 정밀하게 파악하고 만반의 대비에 나서야 할 것이다.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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