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작전명 '거미줄'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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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하학적으로 정교하고 아름답다. 건축가의 예술 작품이 아니다. 거미줄 얘기다. 사람들의 눈에는 다소 혐오스럽게 보일지 몰라도 거미는 생존과 번식을 위해 섬세한 거미줄을 짜며 살아간다. 물론 지구상에 존재하는 약 5만 종의 거미가 모두 거미줄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거미줄은 오랜 시간 과학자들에게 ‘완벽한 구조물’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아프리카 속담에 “거미줄도 모이면 사자를 묶는다”는 말이 있다. 우리 눈에는 그저 성가시고 약해 보이는 거미줄이지만, 실은 지구상에서 가장 완벽한 소재 중 하나로 오랫동안 주목받아 왔다. 과학자들은 “거미줄이 같은 무게의 강철보다 강하고 고무보다 훨씬 유연하다”고 말한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과학자들은 거미줄을 의료용 실, 경량 방탄복, 건축 자재 등 다양한 분야에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연구해 왔으며, 일부는 이미 상용화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는 최근 드론을 100대 이상 동원해 러시아 본토 공군기지 여러 곳을 타격했다. 이른바 ‘거미줄(혹은 거미집) 작전’으로 불린 이 공격으로 러시아군 공중 발사 수단 다수가 복구 불가능한 수준까지 손상되는 등 장거리 공습 능력에 상당한 타격을 입혔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번 공습으로 파괴 또는 심각한 손상을 입은 러시아 항공기는 40여 대에 달한다고 한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번 작전을 수행한 우크라이나 드론은 불과 2000달러짜리였다.

무거운 전차도 전통적인 군단도 없었다. 그 대신 가볍고 조용한 수많은 드론이 하늘에 보이지 않는 그물망을 펼쳤다. 거미줄처럼 조용히, 보이지 않게, 정밀하게 얽혔다. 이는 자연 속 거미줄이 사냥감을 포획하는 방식과 매우 닮았다. 거미줄 작전은 현대전에서 비대칭 전력이 어떻게 정규군의 핵심 자산을 무력화할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무겁고 거대한 무기 대신 작고 유연한 기술이 전쟁의 흐름을 바꿨다.

이제 전쟁은 참호와 탱크의 싸움이 아니라 위성과 드론, 센서와 알고리즘이 주도하는 싸움으로 바뀌고 있다. 한때 자랑이던 압도적인 재래식 전력도 드론 앞에선 무력해질 수 있다. 북한은 이미 드론 전력을 시험했다. 실제로 2022년 북한의 무인기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상공을 넘나든 사건이 있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해 실전 경험도 쌓았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새 정부는 ‘거미줄 작전’이 주는 교훈을 깊이 새겼으면 한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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