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나요? 이순신 장군이 진상하던 ‘왕의 미역’
난중일기에 언급된 조선수군 진상품
통영·거제 견내량 돌미역 채취 시작
단단한 식감에 깊은 풍미 ‘천하일품’
트릿대 이용한 전통방식 채취법 고수
2009년 이상 조류 여파로 군락 실종
3년여 군락지 보호 노력으로 살아나
통영과 거제 사이 해역인 견내량에서 돌미역 채취가 시작됐다. 견내량 돌미역은 조선 시대 초대 삼도수군통제사를 지낸 이순신 장군이 조정에 올리던 진상품 중 하나로 품질이 뛰어나 ‘왕의 미역’이란 애칭이 붙었다. 김민진 기자
‘1594년 3월 22일 : 몸이 여전히 불편했다. 방답, 흥양, 조방장이 보러 왔다. 견내량에서 미역 53동(1동은 마른미역 10묶음)을 따 가지고 왔다.’
이순신 장군이 쓴 난중일기 중 한 대목이다. 조선 시대 경상·전라·충청 삼도수군 초대 통제사를 지낸 이순신 장군은 전란 통에도 임금과 조정이 필요로 하는 진상품은 빼놓지 않고 챙겼다. 매번 각 진영 특산물 중 최고만 골라 임금께 바쳤는데, 그중 하나가 경남 통영과 거제 사이 ‘견내량’ 해역에서 채취한 돌미역이다.
남해안에서도 손꼽히는 청정해역, 높은 햇빛 투과량과 따뜻한 수온 환경에서 수심 10m 깊이 천연 암반에 뿌리를 두고 거센 조류를 버텨 낸 견내량 돌미역은 식감이 단단하고 깊은 맛이 난다. 덕분에 천하일품으로 인정받았고, 후세 들어 ‘왕의 미역’이란 별칭까지 얻었다.
통영과 거제 사이에 자리 잡은 견내량 해역에서 돌미역 채취가 시작됐다. 남해안에서도 손꼽히는 청정해역, 높은 햇빛 투과량과 따뜻한 수온 환경에서 수심 10m 깊이 천연 암반에 뿌리를 두고 거센 조류를 버텨 낸 견내량 돌미역은 식감이 단단하고 깊은 맛이 난다.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이 임금께 바친 진상품으로 후세 들어 ‘왕의 미역’이란 별칭까지 얻었다. 통영시 제공
보통 5~6월이 수확기다. 이맘때 비좁은 견내량이 작은 어선들로 북적인다. 수로 양쪽에 자리 잡은 통영 연기마을과 거제 광리마을은 거대한 ‘미역 덕장’으로 변한다. 3.5kg들이 1단 가격이 일반 미역보다 2배 이상 비싼 15만 원 남짓으로 작은 어촌 마을에 짭짤한 소득원이 된다.
어민들은 지금도 대대로 이어 온 전통 채취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빠른 물살에 배가 떠내려가지 않게 튼튼하게 닻을 내린 후 끝에 가는 트릿대를 이용해 미역을 둘둘 말아 건져 올린다. 트릿대는 7~8m 길이 장대로 한쪽 끝에 나뭇조각 두 개를 엇갈리게 꽂은 형태다. 미역 군락 보호와 종자 훼손을 막기 위해서다.
2000년대 초반까지 견내량 일대에는 말 그대로 ‘물 반, 미역 반’이었다. 그런데 2009년을 전후해 이상 징후가 포착됐다. 미역 숲에 흡사 원형탈모가 발생한 듯 군데군데 빈 곳이 생겨나더니 이듬해 미역 군락은 완전히 사라졌다. 2009년 2억 5000만 원 상당이던 미역 판매 매출은 1% 수준인 200만 원대로 급감했다. 통영시는 생산량을 아예 ‘0’으로 집계했다.
통영과 거제 사이에 자리 잡은 견내량 해역에서 돌미역 채취가 시작됐다. 남해안에서도 손꼽히는 청정해역, 높은 햇빛 투과량과 따뜻한 수온 환경에서 수심 10m 깊이 천연 암반에 뿌리를 두고 거센 조류를 버텨 낸 견내량 돌미역은 식감이 단단하고 깊은 맛이 난다.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이 임금께 바친 진상품으로 후세 들어 ‘왕의 미역’이란 별칭까지 얻었다. 통영시 제공
미역만이 아니었다. 견내량은 대대로 황금어장이었다. 감성돔, 장어, 꽃게, 해삼, 놀래기 등 낚시만 담그면 굵직한 것들이 곧장 올라왔다. 하지만 이들의 보금자리였던 미역 군락이 사라지자 덩달아 자취를 감췄다. 그제야 심각성을 인지한 어민과 수산당국은 미역 자원 회복을 위해 동분서주했다.
미역 포자 생성용 어장을 조성, 자연 방란을 유도하고 잠수부를 동원해 암반에 붙어 미역 부착을 방해하는 각종 해적 생물 제거 작업을 병행했다. 인근 어촌계는 소량의 미역 채취조차 중단했다. 이후 꼬박 3년에 걸친 노력 끝에 미역 숲이 되살아났다.
해양수산부는 이런 노력과 600년 이상 이어져 온 독특한 조업 방식이 보전 가치가 높다고 판단해 2020년 국가중요어업유산(제8호)으로 지정했다. 국가중요어업유산은 해양경관이나 어업 생태계, 전통어업, 해양문화 등 어촌이 가진 고유의 유·무형 어업자산이 보전·계승되도록 국가가 관리·지원하는 제도다.
어민들은 지금도 대대로 이어 온 전통 채취 방법을 고수하고 있다. 빠른 물살에 배가 떠내려가지 않게 튼튼하게 닻을 내린 후 끝에 가는 트릿대를 이용해 미역을 둘둘 말아 건져 올린다. 트릿대는 7~8m 길이 장대로 한쪽 끝에 나뭇조각 두 개를 엇갈리게 꽂은 형태다. 미역 군락 보호와 종자 훼손을 막기 위해서다. 통영시 제공
그런데 이듬해 경북 김천과 경남 거제를 잇는 남부내륙철도가 견내량을 관통하는 것으로 확정되면서 또 한 번 미역숲이 사라길 위기에 처했다. 철도가 바다를 건너기 위해선 해상교량이 필수라 미역 숲에 대형 교각을 세워야 했기 때문이다.
어민과 주민들은 강하게 반발했고 국토교통부는 뒤늦게 돌미역 군락지 훼손이나 조업에 지장이 없도록 견내량 구간은 해저터널을 뚫어 통과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노선도 옛 거제대교 쪽으로 당겨 조업지와 500m가량 이격거리를 확보하도록 했다.
연기마을 장동주 어촌계장은 “모두의 노력으로 지켜낸 소중한 자원”이라며 “올해는 채취 시기도 적당하고 상품성도 좋다. 많이 찾아주시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