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칼럼] ‘노인과 바다’에서 청년의 자리를 묻다
명수현 부산대 국어교육과 강사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1952년 생전 마지막 소설인 〈노인과 바다〉를 발표했다. 쿠바의 늙은 어부 산티아고는 여든 날이 지나도록 물고기 한 마리 낚지 못한다. 오랜 기다림 끝에 거대한 청새치를 만난 그는 대서양 한가운데서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인다. 그의 처절한 싸움은 순식간에 독자들을 사로잡았다. 작가는 이듬해 퓰리처상을, 그다음 해에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1954년 노벨위원회는 이 작품을 “물질적 이득이 없을지라도 포기하지 않는 투쟁 정신과 패배 가운데서 이룩하는 도덕적 승리를 향한 찬가”라고 평했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다’라는 널리 알려진 구절처럼 어떠한 외적 조건에도 굴하지 않는 한 노인의 위대한 인간 정신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고전으로 자리매김했다.
부산시장 후보들 청년 정책 발표
박형준, 중산층 만들기 프로젝트
전재수, 해양수도 통해 일자리 창출
‘평생교육 거점·해양 인력 양성 기반’
지역대학 구조적 문제 해결엔 역부족
배우고 성장하는 탄탄한 토대 마련을
그런데 이 소설에는 독자의 이목을 끄는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한다. 작품의 시작과 끝에서 노인을 돌보는 어린 소년 어부 마놀린이다. 소년은 부질없어 보이는 노인의 항해를 변함없이 동경하며 응원한다. 산티아고는 소년의 지지에 힘입어 하루도 쉬지 않고 바다로 나설 수 있었다. 청새치와의 외롭고 힘겨운 싸움에서도 소년은 그의 내면적 힘이 되었다. 결국, 노인이 보여준 불굴의 정신은 소년의 존재를 통해서만 발휘될 수 있었던 셈이다.
이즈음 ‘노인과 바다’라는 말이 부산의 현실을 일컫는 풍자적 은유로 심심찮게 쓰인다. 청년층이 이탈하면서 인구 구조가 가파르게 고령화되고, 확고한 경제적 기반 없이 망망한 바다라는 지리적 조건만을 가진 데 대한 자조적 목소리다. 우스갯소리로 넘기기에는 부산의 현실이 너무도 적실히 표현되어 있다.
6·3 지방선거에서 부산시장에 출사표를 던진 후보들은 ‘노인과 바다’라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마다의 청년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박형준 후보는 청년을 전면화하며 부산의 미래 전략에 대한 구상을 내놓았다. 그는 디지털 네이티브로서 개인을 중심으로 사고하는 청년들의 세대적 특성에 주목하며, 산업화 시대의 논리로 구축된 사회·경제적 질서를 청년 세대에 맞게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가 제시하는 방안은 ‘복합소득사회’로의 전환이다. AI 시대에 이르러 개인의 소득이 다원화됨에 따라 과세와 복지 등 국가의 정책 시스템 역시 직장 단위의 모델로부터 개인 단위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나아가 AI 혁명이 초래할 수 있는 청년층의 자산 양극화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최소한의 자산 형성을 보장하는 ‘청년 중산층 만들기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한편, 전재수 후보는 해양수도 부산이라는 비전을 내세운다. 부산을 북극항로의 거점이자 ‘글로벌 물류의 환승 센터’로 도약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해수부 부산 이전을 시작으로 해사전문법원과 동남투자공사의 설립, 해운 대기업의 부산 유치 등의 구체적 방안을 제시한다. 청년 문제의 해법 역시 해양수도의 구상에 기반한다. 해수부와 각종 산하 기관, 연구소, 민간 기업들이 모여 형성한 ‘해양 특화 클러스터’를 통한 고부가가치 일자리 창출과 취·창업 기회 확대를 목표로 삼고 있다. 아울러, 지역 고등학교 및 대학들과 연계한 항만 분야 전문 인력 양성 계획과 스마트 항만으로의 전환을 통한 직업적 접근성 확보 방안을 밝혔다.
그런데 두 후보의 청년 정책에서 지역대학 활성화를 전면에 둔 구체적 계획은 뚜렷이 드러나지 않는다. 박형준 후보는 AI 시대에 요구되는 평생교육의 거점으로의 기능 전환을, 전재수 후보는 해양 전문 인력 양성 기반으로의 특수성 확보를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접근은 각각의 후보가 제안하는 정책적 방향성 속에서는 일정한 설득력을 얻지만, 지역대학을 둘러싼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역부족이다.
지역 청년의 삶을 이야기할 때 지역대학이라는 의제는 핵심적이다. 대학은 단순히 진학의 문제가 아닌, 청년들이 지역에 뿌리내리고 삶의 항해를 시작하는 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지역에서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일자리의 확보 못지않게, 지역에서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탄탄한 토대가 마련되어야 한다. 서울대와 유사한 수준의 교육 지원을 통해 쇠퇴와 소멸에 직면한 지역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서울대 10개 만들기’ 정책이 대두된 것도 이 때문이다. 지역대학의 약화는 청년들이 지역을 떠나는 중요한 구조적 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산티아고의 마음속에 소년 마놀린이 없었더라면 노쇠할 대로 노쇠한 그는 지난한 항해와 험난한 사투에서 결코 버텨 내지 못했을 것이다. ‘노인과 바다’라는 자조적이고 무기력한 언어 속에 감추어진 마놀린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때다. 마놀린이 떠나는 순간, 노인도 바다도 모두 사라지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