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기업-스타트업, 빗장 열고 기술 혁신 ‘산업지도’ 바꾼다 [부산은 열려 있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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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부】경제 : 항구에서 플랫폼으로 - 7 지역 기업과 오픈 이노베이션

폐쇄성 탈피 외부 아이디어 수혈
조광페인트·이이장 ‘컬러 팔레트’
삼진어묵·우아즈 ‘유아용 어묵’
파나시아-토즈 ‘원격 진단 플랫폼’
신성장 동력된 성공 사례 줄이어

지난해 11월 부산 영도구 삼진식품 체험관에서 스타트업 우아즈의 프로슈머들이 삼진식품과 우아즈가 함께 개발한 유아용 어묵 시제품을 시식하고 평가하고 있다.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 제공 지난해 11월 부산 영도구 삼진식품 체험관에서 스타트업 우아즈의 프로슈머들이 삼진식품과 우아즈가 함께 개발한 유아용 어묵 시제품을 시식하고 평가하고 있다.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 제공

부산은 전통적인 제조업 도시에서 디지털·인공지능 대전환으로 도약해야 하는 전환점에 있다. 기존 주력 산업인 기계, 자동차, 조선 기자재 등은 구조적인 한계에 직면했지만, 기업 자체 자원만으로는 급격한 기술 혁신과 시장 변화를 따라가기에 벅차다.

이런 상황에서 오픈 이노베이션(개방형 혁신)은 생존을 위한 선택이다. 기업들이 폐쇄적인 R&D(연구개발)의 빗장을 열고 외부의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적극적으로 수혈할 때 제품에 부가가치를 더하고 새로운 산업으로 영역을 넓힐 수 있다.

■혁신 경쟁 파고에 중견기업도 적극적

오픈 이노베이션은 미국 버클리대학의 헨리 체스브로 교수가 2003년 처음 개념을 소개했고, 국내에서도 2010년대 들어 대기업을 시작으로 확산됐다. 부산 지역 경제의 중심인 중견·중소기업들이 오픈 이노베이션을 도입하기까지는 시간이 더 걸렸다. 대기업에 비해 인력과 재원이 부족하고, 혁신을 이끄는 스타트업 생태계조차 미비했기 때문이다.

2022년만 해도 부산상공회의소가 부산 지역 매출 상위 500대 기업 가운데 292개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33개(11.3%) 기업만이 오픈 이노베이션의 개념을 알고 있었고, 오픈 이노베이션을 활용 중이거나 활용할 계획이 있다고 답한 기업은 11개(3.8%)에 그쳤다.

국내 중견기업 323개가 참여한 한국중견기업연합회 2024년 조사에서도 당시 스타트업과 협업을 하고 있는 기업은 3.4%에 불과했다. 협업이 어려운 이유로는 스타트업 정보 부족(56.0%)과 경영자 의지 등 내부 의사결정(41.5%), 역량 부족(33.7%) 등이 꼽혔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졌다. 갈수록 거센 기술 혁신 경쟁의 파고에 기업들은 닫힌 문을 열 수밖에 없게 됐다. 중소기업벤처부와 부산시가 협력해 운영하는 부산창조경제혁신센터(이하 부산창경)도 지역 오픈 이노베이션 플랫폼을 자처했다. 부산창경은 2022년부터 혁신이 필요한 지역 선도기업과 혁신 기술과 서비스를 보유한 스타트업을 연결하는 ‘스타트업 오픈 이노베이션 챌린지 인 부산’을 진행한다.

부산창경 오픈이노베이션팀 제하나 팀장은 “중견기업은 지원 사업을 통해 스타트업 발굴과 검증의 부담을 덜고 제한적인 예산으로 새로운 기술이나 사업을 타진할 수 있어 지역에서도 오픈 이노베이션에 적극적인 기업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상생 발전으로 지역 경제에 새 바람을

1947년 설립된 부산 향토기업 조광페인트는 오픈 이노베이션에 진심인 기업 중 하나다. 지난해에는 치매 친화 공간을 연구하는 스타트업 이이장과 협업해 치매 어르신이 공간을 더 편안하게 인지하고 안전하게 이동하도록 돕는 6종 컬러 팔레트를 개발했다. 한국컬러유니버설디자인협회 자문과 치매 어르신 대상 설문과 선호도 조사를 거쳐 도출된 색상군은 부산돌봄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부산 연제구 부산돌봄 건물 옥상정원과 실내 나눔터, 야외 테라스 공간에 실제로 적용됐다.

국내 어묵 브랜드 대표 주자 삼진어묵은 지난해 영유아의 성장과 건강을 위한 앱을 운영하는 스타트업 우아즈와 함께 유아용 어묵 시제품을 만들었다. 무려 26 대 1 경쟁률을 뚫고 협업 기회를 따낸 우아즈는 첨가물이 적으면서 쉽고 건강하게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는 어묵볶이, 어묵가스, 미니어묵바 등을 공동 기획했고, 프로슈머 24명을 초청해 전문적인 피드백을 듣는 시식회도 운영했다.

지역 전통 산업에서도 도전은 진행 중이다. 조선기자재 선도기업 파나시아는 2023년 부산창경 행사에서 만난 스타트업 토즈와 손잡고 위성통신을 이용해 선박을 원격으로 실시간 진단하고 수리하는 영상 플랫폼을 개발하고 원격 AS 서비스를 론칭했다. 지게차 스마트 안전 설루션 기업 비엔아이는 2024년 DRB동일과 기술 실증을 진행한 것을 시작으로 여러 기업과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지역 선도기업이 스타트업의 테스트베드가 되어주고, 스타트업은 중견기업의 신성장 동력을 이끌어내는 오픈 이노베이션은 상생 발전과 동시에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청년 인재들을 지역에 머물게 하는 마중물 역할도 한다. 정부와 지자체의 지속적인 관심과 역할이 필요한 이유다.

2019년 창업한 AI 기반 안전관제 기술 스타트업 이디아랩은 지난해 부산창경을 통해 삼성중공업과 공장 안전 관리 설루션 실증을 시작해 올해도 협업을 이어간다.

이디아랩 이재철 대표는 “오픈 이노베이션 행사는 늘었지만 형식적인 미팅이나 단발성 실증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며 “후속 지원 프로그램을 늘리고 매출보다 보유 기술을 평가해 지원한다면 더 의미 있는 성과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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