쪽파 농사를 체조로...기장 문동 주민의 '파도 치유 체조'
‘파도 치유 체조?’ 유튜브에서 낯선 이름의 뮤직비디오를 만났다. 이 영상은 파도와 갈매기 울음소리로 시작했다. 평범한 어촌 동네 주민 다섯 분이 경쾌한 노래에 맞춰 숨쉬기 운동부터 허리 돌리기까지 16개의 체조 동작을 선보였다. 배경은 바닷가 테트라포드 앞에서 시작해 쪽파밭에서 끝이 났다. 의외로 흥겹고 재미가 있었다. 출연한 어머니들께 죄송하지만, 살짝 동작이 안 맞고 촌스러운 감성이 매력적이었다. 자꾸 돌려보게 만드는 묘한 중독성이 있었다. 조금 과장하자면 나훈아의 노래 ‘기장갈매기’ 뮤직비디오 속편 같았다. 대체 누가, 왜 이런 체조를 만들었을까. 어느 바닷가에서 찍었는지도 궁금해졌다.
문동마을 주민들이 바닷가 테트라포드 앞에서 ‘파도 치유 체조’를 시연하고 있다. 문동생활권 어촌신활력증진사업 앵커조직 제공
알고 싶으면 부산 기장군 일광읍 문동마을 해녀복지회관으로 찾아오라고 했다. 부산 기장에도 해녀가 살고 있었다. 문동마을에는 지금도 14명가량 되는 해녀들이 물질을 한다. 문동마을 해녀들은 주말도 없이 날씨와 파도 상황에 따라 오전 7시 반이면 바다로 출근한다. 기장 지역 18개 어촌마을에는 590여 명의 해녀가 활동 중이지만 고령화로 그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문동마을에는 275가구가 등록되어 있지만 실제로 살고 있는 주민은 100명 남짓이다.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한 분에게 마을 소개를 부탁했다. “문동은 돈이 좀 흔한 편이지. 돈이 바다에서 나오고, 또 밭에서 나오니…”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했다. 바다의 돈은 다시마와 미역에서 나온다. 5~6월이면 마을에서 다시마를 수확해 말리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밭에서는 동래파전에 빠지면 안 되는 기장 쪽파를 재배한다. 특히 겨울에 심어서 혹독한 겨울을 나고 살아난 봄 파는 없어서 못 팔 지경이다.
‘파도 치유 체조’ 중 날개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문동생활권 어촌신활력증진사업 앵커조직 제공
이처럼 공기 좋고 돈도 흔한(?) 마을이지만 한 가지 해결해야 할 고민거리가 있다. 바로 고령화 문제였다. 노인인구 비율이 41.9%. 고령화의 파고는 농어촌을 먼저 덮치고 있었다. 마을 주민 2명 중 1명이 노인이다 보니 일할 사람은 줄고 소멸 위험이 커진 것이다. 다행히 현재 문동을 중심으로 한 문동생활권에는 해양수산부가 지역 어촌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추진하는 어촌신활력증진사업이 진행 중이다.
파도 치유 체조도 문동생활권 어촌신활력증진사업 사회혁신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통해 만들어졌다. 파도 치유 체조반은 지난해부터 12명가량으로 운영했지만 농사도 짓고, 병원에도 가야 해서 매번 모이는 인원이 달랐다. 아무튼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참가자 각자가 활동명을 지으며 체조반을 시작했다. “제 이름은 오순자고요, 활동명은 자유입니다. 제가 시집살이를 되게 심하게 살았거든요. 이제 우리 가족끼리 사니까 마음도 좀 편하고 자유로워서, 그래서 자유라고 했어요.” “내 이름은 김봉남, 활동명은 장미. 얼마나 예쁘노 장미가? 내가 장미같이 한번 살아볼까 싶은 그런 마음도 있어서 장미라고 지었어예.”
쪽파밭에서 ‘파도 치유 체조’ 중 쪽파 뽑기 동작을 시연하고 있다. 문동생활권 어촌신활력증진사업 앵커조직 제공
“저는 김명숙입니다. 활동명은 사과입니다. 항상 붉고 예쁘게 살려고 사과라고 지었습니다. 근데 짜증 날 때도 있어요. 다리가 너무 아파서 앉아야 되는데, 서서 하는 동작들은 다리가 말도 안 듣고 그렇더라고.” “저는 문동에 사는 문명금입니다. 쪽파 농사를 많이 짓고 있기 때문에 쪽파라고 활동명을 지었습니다. 체조했더니 운동한 기분이 좋데요. 이런 프로그램을 마을과 회관에서 지속적으로 계속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예.” 문 씨는 무려 46년째 쪽파 농사를 짓고 있다.
자기소개를 마친 뒤에는 자신의 이름을 표현하는 동작을 만드는 순서였다. ‘자유’님은 훨훨 날아가는 새처럼 날갯짓했고, ‘장미’님은 예쁜 꽃처럼 손바닥으로 꽃 모양을 만들었다. ‘사과’님은 사과를 한 움큼 베어 물고 좋아하는 동작으로 표현하는 식이었다. 쉽게 동작을 만들지 못하는 서로를 도와줬다. 따로, 또 같이 동작을 만들었다. 체조 동작은 뚝딱하고 만들어지는 게 아니었다.
문동마을 주민들이 쪽파밭에서 ‘파도 치유 체조’를 시연하고 있다. 문동생활권 어촌신활력증진사업 앵커조직 제공
문건호 문화기획자는 먼저 이들이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거기서 무언가를 끄집어내려고 노력했다. 여기저기가 아프다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쪽파 농사는 계속 허리를 숙여야만 하기에 허리가 아플 수밖에 없다. 배 위에서는 바다에 빠지지 않기 위해 균형을 잘 잡아야 한다. 허벅지와 무릎에 힘을 주다 보니 무릎이 아프다. 길에 앉아 쪽파를 팔아야 해서 체조 연습하러 올 시간을 내기도 쉽지 않았다. 고단한 삶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아픈 신체 부위에 특화된 동작을 고민했다.
문동마을 주민들이 양팔을 위로 들어 물결에 흔들리는 다시마 동작을 선보이고 있다. 문동생활권 어촌신활력증진사업 앵커조직 제공
그 과정에서 부산백병원 어업안전보건센터를 통해 어업 종사자들을 위한 체조 동작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업안전보건센터와 의견을 나누며 체조 동작을 다듬었다. 결과적으로 파도 치유 체조는 문동마을 주민들의 이야기에서 나왔지만, 모두에게 도움이 되도록 쉽게 만든 동작들로 구성되었다. 유튜브에서 파도 치유 체조를 검색해 한번 따라 해 봐도 좋겠다.
■파도 치유 체조 동작
1.숨쉬기
숨을 들이마시며 팔과 뒤꿈치를 올리고, 숨을 내쉬며 팔과 뒤꿈치를 내린다.
2.손목 펴고 당기며 앉았다 일어나기
무릎을 살짝 구부리며 앉았다 일어서며, 팔은 쭉 펴고 하늘 위로 손바닥을 펴고 땅을 향해 주먹을 쥔다.
3.날개 동작
날개를 펼치듯 두 팔을 양쪽으로 크게 올리며 무릎을 번갈아 올린다.
4.목 돌리기
목을 왼쪽으로 180도, 오른쪽으로 180도 돌린다.
5.어깨 돌리며 걷기
양어깨를 바깥쪽으로 돌리며 한 바퀴 돈다. 이후 반대로 어깨를 안쪽으로 돌리며 한 바퀴 돈다.
6.작은파도
오른쪽 왼쪽으로 발을 움직이며 양팔을 앞으로 뻗어 파도처럼 살랑살랑 느낌으로 휘젓는다.
7.큰파도
양팔을 앞으로 뻗어 커다란 원 모양으로 돌리며 오른쪽 왼쪽으로 움직인다.
8.큰큰파도
큰파도 동작보다 더 크게 원을 그리며 움직인다.
다시마 동작
9.다시마 동작
양팔을 위로 들어 물결에 흔들리는 다시마처럼 살랑살랑 움직인다.
10.쪽파 뽑기
쪽파를 뽑듯 허리를 숙이고 양손을 밑에서 위로 올리며 앞으로 걸어간다.
쪽파단 만들기 동작.
11.쪽파단 만들기
양손을 앞으로 모아 깍지를 끼고 무릎을 번갈아 깍지 낀 위치까지 올린다.
12.쪽파 뒤로 던지기
깍지를 끼고 쪽파단을 던지듯이 왼쪽, 오른쪽으로 번갈아 허리를 비틀어 돌아본다.
13.건강박수
박수를 아래에서부터 위로 치고 난 다음, 주먹을 쥐고 양쪽 겨드랑이를 번갈아 두드린다. 그다음에는 배를 두드린다.
14.흔들기 막춤
음악에 맞추어 세상에서 가장 신나게 춤을 춘다.
반짝반짝 은하수 동작.
15.반짝반짝 은하수
손목에 힘을 주어 반짝반짝 비틀어준다.
16.허리 돌리기
양손을 허리에 대고 왼쪽 오른쪽으로 크게 한 번씩 돌린다.
■각자의 삶이 체조가 되다
지난 13일 설날 연휴를 앞두고 문동 주민들이 오랜만에 해녀복지관에 모여 파도 치유 체조 뮤직비디오를 같이 봤다. “이 인물에 출세했다!”라는 반응에 폭소가 터졌다. 함께 연습했지만, 촬영 당일 바빠서 참석 못한 분들은 아쉬워하기도 했다. ‘자유’님은 “내가 허리가 좀 안 좋았는데 체조를 하니까 몸도 가벼워지고 많이 좋아졌다”라고 말했다. ‘사과’님도 “체조를 하다 몸이 아파 내일 아침에는 밭에도 못 가고 죽을 거다 이랬더니만 가뿐하게 일어나지더라. 파도 치유 체조 덕분에 마음과 몸도 다 편해지고 좋아졌다”라고 거들었다. 주민들은 공통적으로 “체조를 하면서 틀려서 웃고, 아파서 웃고, 하도 많이 웃어서 젊어진 기분이 든다”라고 했다.
파도 치유 체조반은 지난해부터 12명가량으로 운영했지만 농사도 짓고, 병원에도 가야 해서 매번 모이는 인원이 달랐다. 문동생활권 어촌신활력증진사업 앵커조직 제공
파도 치유 체조를 보다 2007년에 개봉한 일본 영화 ‘안경’이 슬며시 떠올랐다. 도시 생활에 지친 주인공이 한적한 섬으로 여행을 와서 작은 숙소에 머무는데, 사람들이 바다를 바라보며 매일 아침 ‘체조’를 하는 심심한 영화다. 그런데 영화를 본 사람마다 마음이 편해지고 이 섬에 가보고 싶다고 했다. 이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파도 치유 체조도 사람들의 마음을 문동으로 이끌고 갈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문동마을 주민들이 쪽파밭에서 신나게 흔들기 막춤을 추고 있다. 문동생활권 어촌신활력증진사업 앵커조직 제공
문동생활권 어촌신활력증진사업 앵커조직은 그동안 문동방파제를 걸어보는 노르딕 워킹, 문오성 달력 제작, 압화공방, SUP 패들보드 클래스, 프리마켓 파도시장, 버스킹 공연, 문오성 잡지 발행, 문오성 고양이 모음집 등 다양한 행사를 열었다. 현재 문오성 트로트 창작단도 모집 중이다. 동백, 신평, 칠암, 문중, 문동 5개 마을을 문오성이라고 부른다. 과거 마을 이름에 모두 앞 글자로 ‘문’을 사용했고, 다섯 마을이기에 숫자 ‘오’를 가져온 것이다. 문동을 비롯해 문오성 마을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이 지역이 궁금해진다. 참 이번 뮤직비디오에 남자들은 한 명도 나오지 않아 아쉬웠는데 곧 ‘할배’들만 따로 모아서 확장판을 만들겠단다. 반짝반짝 문오성 마을이 지속가능하면 좋겠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13일 ‘파도 치유 체조’ 뮤직비디오에 출연한 문동 주민과 문동생활권 어촌신활력증진사업 앵커조직 스태프들이 오랜만에 한데 모였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