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지·실효성 논란 거제 ‘독수리 쉼터’ 결국 없던 일로
2024년 국토부 공모 선정
국비 20억·시비 70억 조건
지방비 부담에 실효성 논란
선정 2년여 만에 사업 포기
‘묻지 마 공모’ 폐해 지적도
경남 거제시가 정부 공모 사업으로 추진한 ‘견내량 독수리 스마트복합쉼터 조성’이 백지화 수순을 밟고 있다.
과도한 지방 재정 부담과 실효성 논란에 설왕설래하더니 뒤늦게 실익이 없다고 판단, 사업 포기로 가닥을 잡았다. 괜한 국비 욕심에 무턱대고 사업을 따냈다가 뒤늦게 반납하는 묻지 마 공모의 부작용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29일 거제시에 따르면 독수리 쉼터는 신거제대교 인근(사등면 오량리 951-12번지)에 자리 잡은 농수특산물직판장 일원을 대상으로 휴식·문화·관광 기능을 결합한 공간을 만드는 사업이다.
거제시는 2023년 10월 폐점 전까지 수십 년째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방치된 특산물직판장 재활용 방안으로 이를 기획했다.
견내량은 거제시와 통영시를 잇는 거제대교 아래 좁은 해협으로 겨울이면 몽골에서 날아온 독수리 무리가 월동하는 곳이다.
2024년 3월 국토교통부 주관 ‘일반국도 스마트 복합쉼터 조성공모’에 선정돼 국비 20억 원을 확보한 거제시는 직판장 일대 1만 7000여 ㎡에 ‘독수리 전망대’와 디지털 전시시설인 ‘견내량 튜브’를 조성하는 것으로 밑그림을 그렸다.
여기에 스마트 화장실과 급속 전기차 충전기 등 운전자들을 위한 휴식 공간과 편의시설을 더하고 기존 시설인 향토식당, 특산물판매장도 새 단장하기로 했다.
하지만 선정 직후 문제점들이 하나, 둘 드러나면서 발목이 잡혔다.
우선, 전체 사업비 90억 원 중 국비를 뺀 70억 원을 오롯이 거제시가 부담해야 한다. 빠듯한 지방 재정을 고려하면 결코 적지 않은 규모다.
또 과거 직판장 실패의 주요인이었던 비좁은 진출입로와 부족한 접근성 문제가 여전한 데다, 전망대를 설치해도 실제 독수리 관찰이 어렵다는 구조적 한계 역시 극복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사업 대상지가 거제에서 통영으로 진입하는 지점이라 정작 거제에는 실익이 없는 시설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도로 선형이나 위치를 고려할 때 거제를 빠져나가는 방문객을 위한 시설로, 유인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거제시는 그동안 진출입로 개선을 위해 관할 기관인 진주국토관리사무소와 협의를 진행했지만, 기존 도로 확장은 물론, 신규 개설조차 여의치 않다는 사실만 재확인했다.
주변에 추가로 확보할 수 있는 토지가 거의 없어 도로를 넓히려면 가뜩이나 부족한 주차 공간을 줄여야 해 쉼터 목적을 제대로 구현하기 어렵고, 신규는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게 사무소 측 설명이다.
이 때문에 거제시의회에선 “막대한 시비를 투입하는 데 비해 사업 효과와 효율성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회의적인 반응이 잇따랐다. 이대로는 정상적인 사업 추진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거제시도 결국 백기를 들었다. 올해에 이어 내년 예산에도 관련 예산을 편성하지 않았다.
거제시 관계자는 “메리트가 없는 시설을 억지로 만들면 후에 두고두고 골칫거리가 될 수 있어 (사업을) 정리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면서 “사업 포기와 국비 반납을 위해 국토부와 협의 중”이라고 전했다.
이로 인해 건립 당시부터 각종 논란에 휩싸이며 가다 서기를 반복했던 직판장은 다시 방치될 공산이 커졌다.
직판장은 2009년 개장 이후 부적절한 입지 선정 논란 속에 수차례 위탁 운영이 실패했다. 근본적 해결책 없이 땜질식 운영만 반복하다 2023년 영업종료 이후 지금까지 방치되며 ‘혈세 낭비’의 상징으로 지목돼 왔다.
주먹구구식 공모 사업의 폐해라는 비판 속에 거제시는 또 다른 해법을 찾기로 했다. 거제시 관계자는 “영리 시설보다 주민 쉼터 같은 공공 목적시설로 탈바꿈시키는 등 보다 현실적인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