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소비자 우롱·국회 농락 쿠팡, 사회적 책임 엄중히 물어야
셀프 조사 발표, 되레 '의혹 몸통' 자초한 꼴
보도자료 사과·청문회 거듭 거부 비판 고조
서울 시내 한 주차장에 주차된 쿠팡 배송 차량. 연합뉴스
개인정보 유출 사태를 일으킨 국내 1위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 쿠팡의 사고 이후 행태는 도를 넘고 있다. ‘아무 문제가 없었다’는 식의 셀프 조사 결과를 돌연 공개해 혼란을 자초한 데 이어, 창업자인 김범석 쿠팡Inc. 이사회 의장은 국회 청문회 출석을 거듭 거부하며 무책임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김 의장은 정보가 유출된 지 한 달 만인 28일 사과문을 발표하고 ‘전면 쇄신’을 다짐했다. 하지만 반성의 진정성이 공감을 얻기는 너무 늦었고, 더구나 쿠팡 보도자료를 통한 형식이 되레 비난 여론을 부르고 있다. 소비자를 우습게 보고 국회까지 농락하는 처사에는 엄중한 책임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국회 6개 상임위는 30∼31일 초유의 연석 청문회를 열기로 하고 쿠팡 책임자의 출석을 요구했다. 하지만 김 의장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는 출석을 거부해 한국 사회에 대한 책임을 외면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김 의장 등은 불출석 사유서에서 예정된 일정의 변경이 어렵다는 이유를 들었다. 이번이 두 번째인 불출석 통보는 앞서 한국어를 못하는 미국인 대리인을 내세워 국회 질의응답을 맹탕으로 만들었던 전례와 함께 조직적·의도적 책임 회피로 보기에 충분하다. 소위 ‘글로벌 플랫폼 기업’은 한국의 법체계와 사회적 기준을 지킬 의지가 없는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최근 쿠팡의 자체 조사 결과는 되레 의혹만 부풀렸다. 쿠팡이 유출자를 특정했고, 범행에 사용된 뒤 버려진 노트북을 하천에서 수거해서 포렌식 조사한 결과, 유출 규모는 3000여 건에 불과하며, 외부 유출 정황도 없었다는 것이다. 정부 조사단과 사전 협의하거나, 공동 조사 및 발표 방식 대신 단독으로 공개를 강행한 점에서 의구심만 키운 꼴이 됐다. 진실 규명 과정에서 절차적 정당성이 훼손된다면 신뢰를 잃기 십상이다. 유출 경위와 동기, 단독 범행 여부 등 핵심 사항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쿠팡이 셀프 조사로 얻은 건 의혹 해소가 아니라 쿠팡 자체가 의혹의 몸통이 된 것이다. 더 이상 어물쩍 넘길 수 없게 됐다는 의미다.
쿠팡은 변방의 스타트업이 아니다. 국내 이커머스 시장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국민의 삶과 지역 경제에 적잖은 영향을 미친다. 미국 법인과 국적을 방패 삼아 한국 사회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는 일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한국에서 기업 활동을 하려면 개인정보 유출뿐만 아니라 노동 문제, 소비자 피해, 중소 상공인과의 갈등 현안에 대해 기업의 최고 책임자가 나와 설명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국회는 청문회 증인 출석 제도의 허점을 악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국정조사나 입국 금지 등 강력한 조치를 해야 한다. 외국계 기업이 대한민국의 법과 사회 규범을 무시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철퇴가 반드시 내려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