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지방 식민지'를 거부한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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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정 경제부 차장

지역엔 나쁜 경제 지표 잇따르는데
수도권은 GB 해제 등 더 확장 태세
고 서경식 교수 "시골은 도시 식민지"
'서울집값 정책'으론 균형발전 요원

‘2024년 매출액 기준 전국 1000대 기업에 포함된 부산 기업 수는 28개 사로, 전년 31개 사에서 3곳이 더 줄었다’ ‘지역내총생산에서 동남권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 16.8% 수준에서 2023년 14.2%로 쪼그라들었다’ ‘지역에 대한 기업대출(36.6%)이나 벤처투자(24.7%) 비중은 지역의 인구(49.4%)나 지역내총생산(GRDP·47.6%)에 크게 못 미치는 상황’.

최근 본보를 통해 보도된 지역 경제 관련 뉴스들이다. 유사한 지표들이 매일 쏟아지니 ‘더 이상 새로울 게 없어’ 뉴스로까지 올라오지도 못하고 버려지는 지표도 많다. 지역에서는 “하루 이틀 일이냐”는 냉소와 함께, 패배감까지 쌓여간다.

이 같은 뉴스들이 쏟아지던 때와 같은 시기, 국토교통부 장관은 ‘서울집값’을 잡기 위한 방편으로 공급 확대를 위한 그린벨트 해제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수도권에서의 삶의 불편을 ‘미끼’로 지역으로의 인구 분산 정책을 펴는 것이 아니라, 수도권을 더 확대하겠다는 얘기다.

또 한쪽에선 수도권에 공급할 전기를 ‘안정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지역민에겐 ‘불안 덩어리’인 고리원전 2호기의 수명 연장을 결정했다. 태풍이나 조그마한 지진에도, 원전 사고 공포에 떨며 아이부터 부둥켜안는 지역민 삶은 어디에도 반영되지 않았다. 그 덕에 수도권은 원전 위험 부담 없는 싸고 안정적인 전기 공급을 또 한번 보장 받았다. 그렇게 해도 전력이 부족한데, 수도권에는 자꾸 뭘 짓겠다고 한다.

그 무렵, 지역 경기 부양을 위해선 금리 인하가 절실한 시점임에도 지역민과는 아무 상관 없는, 치솟는 서울집값 때문에 금리는 또 동결됐다. ‘과실은 수도권에, 희생은 지역이’ 식 지역 착취의 굴레가 점점 고착화돼가고 있다.

부조리가 해결되지 않으니 청년들은 지역을 떠난다. 일자리가 가장 큰 이유라고 하지만 지난해 부산을 떠난 청년은 8500여 명, 경남의 청년 유출 인구는 1만 400여 명이나 된다. ‘국장 탈출이 지능순’이라 했는데 ‘지방 탈출이 지능순’이라는 자조까지 나온다. 1960년 6.5%이던 수도권 인구는 2023년 50.7%가 됐다. 한국 수도권의 인구 집중은 세계 1위 수준으로 일본 34.4%, 영국 24.8%, 프랑스 24.5%(2019년 기준)에 비할 바가 못 된다.

12년 전 부산을 찾은 고 서경식 도쿄경제대 교수와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일본은 시골이 도시의 식민지예요. 후쿠시마는 도쿄의 식민지이고, 후쿠이는 오사카의 식민지죠. 하지만 시골 사람들은 자신들의 희생을 생각조차 못해요.” 당시 고리원전과 가장 가까운 부산 기장군 신리마을을 찾은 서 교수는 “후쿠시마 원전에서 생산된 전기의 상당량을 도쿄 시민들이 사용했지만 문제가 터지자 결국 피해는 고스란히 후쿠시마 주민들이 떠안아야 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서 교수가 지금 부산에 온다면 어떤 얘기를 들려줄지 궁금하지만, 한국도 일본과 유사한 길을 걷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지역민의 삶은 피폐해 지는데, 수도권만 점점 비대해지고 윤택해지고 있으니 말이다. 운동장이 기울어지다 못해 한쪽이 아예 미끄러져버릴 듯 경사도가 커지고 있는데 기울기는 멈출 줄을 모른다.

지난 20일 부산경실련이 주최한 지방은행 경쟁력 강화 토론회에서는 지역은행 수신액이 1%만 증가해도 지역내총생산과 사업체수, 근로자수, 중소기업대출액이 모두 증가한다는 분석 결과 발표가 있었다. 이에 공공기관이 지역은행에 일정 비율 이상 자금을 예치하도록 법제화하고, 경영평가 지표에도 포함해야 한다는 주장에 토론자들은 물론 청중들도 공감을 나타냈다. 지역민의 삶이 1%라도 나아질 수 있다면 뭐든 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지역민 주장에 귀 기울이는 정책 결정권자나 입법권자는 없었다.

5극 3특이니, 지역 차등 금리니, 지역 전용 펀드니 하는 지방균형발전 대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지역민은 이 같은 ‘시혜성’ 정책들이 마냥 달갑지만은 않다. 산업은행 이전의 대안으로 대통령이 공약했던 동남권투자공사도 결국 산업은행 기능을 쪼개 권역별로 ‘뿌려주는’ 여러 투자공사 중 하나로 전락하고 만 경험은 ‘사탕발림’ 정책의 진정성을 더욱 의심하게 만들었다.

얼마 전 해운대의 한 벤치에 앉아 있다 서울에서 온 관광객들이 주고 받는 ‘괜한’ 얘기를 듣고 말았다. “여기 좋다. 여기 집값 얼마 정도 해?” “30평대인데 찾아보니 10억 정도밖에 안 해.” “정말? 싸다. 우리 하나 살까?” 부산에서 제일 비싼 동네 집값을 두고, 싸다며 ‘가뿐히’ 마트 물건 고르듯 할 정도면 서울집값이 어마무시하긴 한가 보다. 부산 아파트 4~5채를 팔아도 서울에 괜찮은 집 하나를 못 살 정도라면, 살인적인 서울집값은 서울 사람만 괴롭히는 게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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