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살얼음판' 응급실, 언제까지 환자 고통 외면할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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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주요 병원 5곳, 응급의료 제한
지역 의료 인력 안정적 양성·확보를

부산 한 대학병원 모습. 의료진이 환자 진료 상황을 살피고 있다. 부산일보DB 부산 한 대학병원 모습. 의료진이 환자 진료 상황을 살피고 있다. 부산일보DB

전공의들의 복귀로 의정 갈등이 봉합됐지만, 부산 주요 병원 응급실의 의료진 부족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일보〉가 지난 19~21일 중앙응급의료센터 응급실 종합상황판(내 손안의 응급실)을 분석한 결과, 인제대 해운대백병원·동아대병원·인제대 부산백병원·부산대병원·고신대복음병원 등 부산 주요 병원 5곳 모두에서 응급의료 제한 과목이 확인됐다. 인제대 해운대백병원에선 흉부외과 심장혈관파트, 대동맥 박리 관련 수용이 불가했고, 부산대병원에선 상의되지 않은 외과 신규 환자 진료가 불가했다. 의료진 부족이 특정 환자의 진료·입원·수용 불가로 이어진 것이다. ‘살얼음판’ 응급실 상황으로 환자들만 고통을 당하는 셈이다.

특히, 모든 분야의 소아 응급환자 진료가 가능한 병원이 부산에 전무하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인제대 부산백병원은 소아과 의료진 부족으로 환자 수용이 불가했고, 고신대복음병원에서도 신규·재·초진 소아과 환자 진료가 불가했다. 동아대병원에선 100일 미만 소아과 신규 환자 등의 진료가 불가했다. 이러한 지역 응급의료 체계 공백은 응급실 뺑뺑이 사망으로 이어졌다. 지난달 부산에서 한 고교생이 응급실을 찾지 못한 채 구급차 안에서 숨졌다. 당시 구급대에서 14차례 병원에 수용 가능 여부를 물었지만, ‘소아 환자 진료가 어렵다’는 이유로 모두 거절당했다고 한다. 지역 응급의료 체계 붕괴로 인해 안타깝고 허망하게 목숨을 잃은 것이다.

병원들이 응급실 수용 불가 이유로 내세우는 것은 ‘의료진 부족’이다. 응급실에서 환자를 받더라도 응급 처치 후 수술 집도나 후속 진료를 이어갈 의료진이 없다는 것이다. 의료진 부족 문제는 전공의 복귀 이후에도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지난 9월 전공의가 병원에 돌아오면서 전국 수련병원의 전공의 숫자는 의정 갈등 전의 76% 수준을 회복했다. 그러나 부산의 대표 병원인 부산대병원의 전공의 복귀율은 64%에 그쳐 훨씬 저조하다. 소아청소년과 전공의가 아예 돌아오지 않은 부산의 병원도 있었다고 한다. 만성적인 지역 의료진 부족 상황을 타개하지 못한다면 응급실 뺑뺑이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

위기에 처한 지역·필수·공공의료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핵심 대책인 ‘지역의사제’ 도입과 정착이 관건이다. 10년간 의사가 지역에서 의무 복무하도록 하는 ‘지역의사의 양성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이 지난 2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통과했다. 이 법안이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까지 통과하면 공포 2개월 후 시행돼 2027년 대입부터 적용된다. 이 제도를 통해 지역의 의료 인력을 안정적으로 양성·확보해 의료 인력의 수급 불균형과 지역 의료 격차를 해결해야 한다. 적정 인원과 처우 수준 등 세부 실행안 마련을 서두르고, 10년 복무 뒤 지역 이탈이 없도록 세밀한 대응책도 필요하다. 정부와 의료계가 머리를 맞대고 지역 의료 강화를 위한 전향적인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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