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지방정부를 위하여
최혜규 사회부 차장
균형발전 핵심 요인은 자립적 발전 역량 격차
비수도권, 인구 줄고 산업 쪼그라들어 악순환
지자체에 권한 이양하고 재정 자율 확대해야
기자에게 기사 읽기는 업무지만 지방 카테고리 뉴스를 훑는 일에는 작은 즐거움이 있다. 사건 사고와 지자체 소식들에 끼어있는 지역 축제나 행사 소개 때문이다. 이런 기사들을 따라가다 보면 구석구석의 특산물도 알게 되고, 제철음식과 지금 가장 아름다운 꽃과 나무, 동네의 각종 명물도 알 수 있다. 요즘 같으면 김장 축제가 한창이고, 억새 축제는 막바지다. 강원도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만 알았는데 인천 장수동에도 800년 된 은행나무가 있다고 한다. 알고리즘과 인공지능의 침공 속에 내가 먹고 체험하는 것과 덥고 추운 날씨만이 진짜로 느껴질 때, 이런저런 축제를 계기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도시와 동네를 찾아보게 되는 것이다.
특산물만 축제의 주인공이 되는 건 아니다. 최근의 화제는 단연 경북 김천시의 김밥 축제다. 지난해 처음 시작해 올해 15만 명을 불러들였다. 인구 13만 명 도시에 그보다 더 많은 인파가 김밥을 먹으러 다녀갔다. ‘김천’하면 대한민국 대표 분식 식당명 김밥천국이 떠오른다는 답이 많아서 축제를 만들었다는 뒷이야기는 자조적인 농담 같지만, 공무원들은 진지했다. 올해는 첫 행사에서 지적받은 내용을 보완해 셔틀 버스를 준비하고 전용 차로까지 운영했다고 하니 2회 만에 지역 축제의 모범 사례로 회자될 만하다.
지역 축제에서 늘 같이 이야기되는 것이 지역 경제 활성화다. 축제를 보러 왔다가 근처에서 밥도 먹고 잠도 자고 물건도 사는 것을 넘어 연관 산업이 커지거나 일자리가 늘어나기를 기대한다. 도시 브랜드를 알리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장기적인 경제 효과도 있다. 이를테면 지금은 명실상부 아시아 최대 영화제가 된 부산국제영화제가 지난 30년간 부산이라는 도시 브랜드에 미친 영향은 부산의 영화 산업에 미친 영향보다 크다. 그렇게 축적된 자산이 지역에 청년을 불러들이고 도시를 더 널리 알렸다면 이 또한 축제의 성과다.
모든 축제가 여기에 성공하진 않는다. ‘축제가 밥 먹여주냐’는 비난, ‘혈세 낭비’라는 화살도 종종 받는다. 그러나 결과를 떠나 대개 기초지자체가 기획하는 소소한 축제들은 지역이 가진 유무형의 자원을 활용해 뭐라도 해보려는 시도일 때가 많다. 인구가 줄고 산업도 쪼그라든 비수도권 지자체들의 안간힘이다. 축제가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는 건 알지만 블랙홀처럼 사람과 자본을 빨아들이는 수도권에 맞서서 지자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많지 않다.
산업연구원은 ‘균형발전 불평등도의 구조적 특성과 정책 과제’ 보고서에서 수도권과 비수도권 균형발전의 불평등을 키우는 핵심 요인을 ‘자립적 발전 역량’의 차이라고 지목한다. 지난 20년간 균형발전 4대 요인을 중심으로 불평등도를 살펴봤더니, 자립적 발전 역량의 불평등도가 다른 3개 요인을 합친 것보다 더 컸고, 갈수록 격차가 커졌으며, 수도권과 비수도권 격차가 특히 두드러졌다는 것이다.
연구진이 자립적 발전 역량을 진단한 지표는 인력, 산업, 기업, 그리고 재정이다. 지방은 고부가가치 산업이 부족하고 기업 성장이 정체돼 청년 인력의 수도권 유출이 심화되는 악순환 탓에 스스로 발전할 역량을 키우기 어렵다. 이런 환경에서는 법에 명시된 균형발전의 나머지 요인(발전의 기회 균등, 삶의 질 향상, 지속 가능한 발전)도 선순환이 힘들다. 결국은 경제다.
지자체는 이런 악순환을 깨기 위한 해법으로 오랫동안 분권을 요구해왔다. 중앙정부가 모든 권한을 틀어쥐고 지자체 간 경쟁을 시켜서 예산을 나눠주는 방식이 아니라 지자체가 자율성을 갖고 지역에 필요한 인재와 산업과 기업을 키울 수 있도록 권한을 과감하게 넘겨줘야 한다는 것이다. 재정 또한 핵심이다. 인구와 경제력에 연동되는 지방세의 불균형도 갈수록 커지고, 전국 지자체 열 개 중 네 곳이 지방세로 인건비를 충당할 수 없는 지경에서 자생력이 생길 리 만무하다.
이재명 정부는 연일 균형성장을 강조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2일 정부 출범 후 처음 열린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지방자치단체라는 표현 대신 ‘지방정부’라는 용어를 써야 한다”고 말했다. 지역 자율 재정 예산 규모를 세 배 가까이 늘렸다고도 강조했는데, 진짜 ‘자율 재정’이 되도록 중앙정부가 제시하는 사업 목록을 폐지해야 한다는 박형준 부산시장의 지적에도 공감했다고 한다.
이재명 대통령의 ‘지방정부’ 언급은 처음이 아니다. 헌법의 ‘지방자치단체’를 ‘지방정부’로 바꾸는 건 개헌 사항인데, 지방분권 개헌을 국정과제 1호로 내세운 정부가 개헌에 지방정부를 명시할지도 관심사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말대로 역할과 기능에 비해 권한과 재정이 부족한 지자체의 상황을 개선하는 것이다. 그것이 ‘제2의 도시’ 부산조차 자유롭지 않은 지방소멸의 위험 속에서 지자체냐 지방정부냐 하는 용어 문제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