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뒤흔든 ‘트럼프 상호 관세’ 미 대법원 적법성 심리 착수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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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부과 권한 보유 여부 쟁점
1·2심 불법 판단, 최종심 주목
정부 “국가 비상사태 정당 조치”
원고 “과세 결정은 의회의 권한”
빠르면 수 주 내 판결, 각국 주목

미국 연방법원이 5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적법 여부를 따지는 변론기일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한 시위자가 대법원 앞에서 ‘관세는 나쁘다’는 팻말을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 연방법원이 5일(현지 시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적법 여부를 따지는 변론기일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한 시위자가 대법원 앞에서 ‘관세는 나쁘다’는 팻말을 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미국 연방대법원이 5일(현지 시간) 전 세계를 뒤흔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 관세에 대한 적법 여부 판단을 위해 심리에 착수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해당 권한을 갖고 있는지 여부를 두고 행정부와 소송 원고 측이 팽팽히 맞섰다. 보수 성향의 대법관들도 트럼프 행정부의 주장에 다소 회의적인 기류를 보인 만큼 추후 판결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연방 대법원은 이날 워싱턴DC 대법원 청사에서 이번 관세 소송과 관련한 구두 변론을 3시간가량 진행했다. 정부 측 대리인과 소송을 제기한 중소기업 및 민주당 성향 12개 주를 대리하는 변호사들이 차례로 나와 법정 공방을 펼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직접 구두변론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대법원 심리를 사흘 앞두고 돌연 “이 결정의 중대성을 흐리고 싶지 않다”며 불참 의사를 밝혔다. 대신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 관세 및 무역 정책과 관련된 정부 주요 인사들이 일제히 방청석에 앉아 사안의 중대성을 시사했다.

핵심 쟁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부과의 법적 근거로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을 삼은 것이 정당한가’에 있었다. 1977년 제정된 IEEPA는 ‘국가 비상사태’에 대응할 여러 권한을 대통령에 부여하는 데 그중 하나는 수입을 ‘규제’할 권한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2일 미국의 대규모 무역적자가 국가 안보와 경제에 큰 위협이라고 주장하며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 IEEPA에 근거해 100개 이상 나라에 국가별 상호 관세 부과를 선포했다. 당시 한국에는 25%의 관세를 적용했지만, 이후 한국은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등을 조건으로 이 관세를 15%로 낮췄다.

정부 측 입장 대변에 나선 D. 존 사우어 법무차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비상 권한을 사용한 것은 미국의 무역적자가 미국을 경제·국가 안보적 재앙 직전의 상태로 몰아넣고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소송을 제기한 중소기업과 12개주를 대리하는 닐 카티알 변호사는 “관세는 곧 세금”이라며 “(헌법을 만든) 우리 건국자들은 과세 권한을 오로지 의회에만 부여했다”고 말했다. 그는 “의회가 IEEPA를 제정하면서 언제든, 어느 나라든, 어떤 제품이든 대통령이 마음대로 관세를 정하고 변경할 권한까지 넘겨줬다고 보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고 강조했다.

앞서 1심을 맡은 국제무역법원(USCIT)과 2심을 관장한 워싱턴DC 연방순회항소법원 등 하급심 법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비상 권한을 활용해 전 세계에 관세를 부과한 조치가 불법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연방대법원은 6 대 3으로 보수 성향 대법관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어 트럼프 행정부에 유리한 구조로 평가되지만, 이날 변론에선 보수 성향 법관들도 행정부를 향해 연거푸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보수 성향의 존 로버츠 연방대법원장은 과세 권한에 대해 “그것은 언제나 의회의 핵심 권한이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도 트럼프 대통령이 도입한 관세가 “특정 목표를 달성하는 데 있어서는 꽤 효과적이었다”는 점을 함께 짚었다. 트럼프 1기 때 임명된 보수 성향의 닐 고서치, 에이미 코니 배럿 대법관도 대통령에게 관세를 부과할 권한이 있다고 주장하는 행정부 논리에 일부 의문을 제기했다.

심리를 거쳐 나올 대법원 판결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에 대한 사법부의 최종 판단이라는 점에서 미국은 물론 관세 영향을 받는 전 세계 국가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대법원에서 관심도가 높은 사건들은 판결 확정까지 통상 6개월 이상 걸리는데 이번 관세 소송은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해 이르면 수 주 내에도 판결이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소송에서 패하더라도 무역확장법 232조, 무역법 301조 등 관세를 부과할 ‘플랜 B’, 즉 다른 법적 수단은 여전히 남아 있다.

다만 대법원이 제동을 건다면 트럼프 대통령이 언제든지 원하는 품목에 원하는 수준의 관세를 제한 없이 부과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동시에 나온다.

아울러 패소 시 환급해야 할 관세 규모가 최대 1조 달러(약 1390조 원)에 달할 것으로 트럼프 행정부는 추정하고 있다.

반대로 트럼프 대통령이 승리할 경우 전방위적 관세 정책은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IEEPA이 규정한 ‘국가 비상사태’를 명분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사실상 의회 견제 없이 관세 부과를 이어갈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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