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부산 거주 외국인이 살기 좋은 도시가 글로벌 허브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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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8만 명 넘지만, 삶은 여전히 불편
함께 살아갈 정주 정책이 도시 경쟁력

부산 강서구 지사동 집에서 베트남에서 온 우엔티 투이(39) 씨가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부산 강서구 지사동 집에서 베트남에서 온 우엔티 투이(39) 씨가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이재찬 기자 chan@

부산이 ‘글로벌 허브 도시’로 불릴 만큼 외국인 인구가 꾸준히 늘고 있다. 올해 기준 부산에 거주하는 외국인 주민은 8만 3401명으로 전체 인구의 2.5%에 이른다. 3년 새 1만 명 이상 늘었다. 여기서 거주 외국인은 일시 방문자가 아닌, 일정 기간 국내에 머물며 생활 근거를 둔 사람을 말한다. 수치상으로는 국제도시의 모습을 갖춘 듯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거주 외국인들이 느끼는 부산은 여전히 불편한 도시다. 지원 조례는 있어도 예산이 부족하고, 보육, 주거, 노동 등 삶의 기반은 여전히 제도 밖에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을 도시 성장 전략으로 끌어들이면서도 정작 머물 환경을 만들지 못한다면 글로벌 허브 도시의 구상은 껍데기에 불과하다.

부산은 외국인 유치에는 적극적이지만 정작 그들의 삶에는 무심하다. 베트남 출신 투이 씨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투이 씨 부부는 세 자녀를 키우며 강서공단에서 일하지만 보육료 지원 대상이 아니다. 언어 장벽에다 E-9 비자로 노동 이동의 자유도 없어 교육비 부담에 허덕인다. 이는 개인의 사연이 아니라 구조적 현실이다. 부산에는 외국인 주민을 위한 통합지원센터조차 없다. 지난해 신설된 외국인정책팀 인력도 세 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역할도 비자 행정과 기관 관리에 그친다. 부산은 여전히 외국인을 타인으로 대하는 것이다. 이런 환경에서 외국인 유입을 늘린다 한들, 부산이 그들의 삶터가 되기는 어렵다.

더 큰 문제는 정책 의지의 부재다. 부산시의회는 외국인 가정 보육료 지원 조례를 통과시켰지만, 예산은 끝내 추경 문턱을 넘지 못했다. 반면 경기도와 전남도는 외국인 자녀에게 매달 10만 원의 보육비를 지원하고, 전북 군산시는 노동자 정착지원금도 지급한다. 부산의 외국인 통번역 예산은 올해 2100만 원에서 내년 400만 원으로 줄었다. ‘글로벌 도시’를 내세우지만 현장 정책은 오히려 후퇴하고 있는 셈이다. 외국인을 노동력이나 통계 수치로만 보는 인식도 문제다. 이미 산업 현장은 외국인 근로자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 세금을 내고 자녀를 키우는 그들은 손님이 아니라 시민이다. 이들의 삶의 질이 곧 부산의 경쟁력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부산은 지금 인구 소멸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외국인 인구 유입이 도시 활력을 유지할 핵심 전략으로 떠오른 이유다. 그러나 단순한 유입만으로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외국인이 부산에서 안정적으로 일하고 자녀를 키우며 공동체의 일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정주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조례 제정에 그칠 게 아니라 예산과 실행력을 뒷받침해야 한다. 외국인주민지원센터의 기능을 강화하고, 이주노동자와 외국인 가족의 생활 실태에 맞춘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부산이 외국인에게도 ‘살 만한 도시’로 인정받을 때, 비로소 세계가 주목하는 진짜 글로벌 도시로 거듭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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