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구와 예술 사이… ‘경계의 미학’을 만난다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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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판화가협회 ‘판의 경계, 경계의 포구’
영도 스페이스 원지에서 15일까지 전시
8개국 64명…판화·회화·설치·영상 포괄
개막식 ‘부산국제현대음악제’ 협업 눈길

부산판화가협회 ‘판의 경계, 경계의 포구’ 설치 전경. 오서현, 정만영, 정철교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문 밖엔 물양장 선박이 보인다. 김은영 기자 key66@ 부산판화가협회 ‘판의 경계, 경계의 포구’ 설치 전경. 오서현, 정만영, 정철교 작가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문 밖엔 물양장 선박이 보인다. 김은영 기자 key66@
부산 영도 스페이스 원지에서 열린 부산판화가협회 ‘판의 경계, 경계의 포구’ 개막식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부산 영도 스페이스 원지에서 열린 부산판화가협회 ‘판의 경계, 경계의 포구’ 개막식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부산판화가협회 ‘판의 경계, 경계의 포구’ 전시장 입구. 부산판화가협회 제공 부산판화가협회 ‘판의 경계, 경계의 포구’ 전시장 입구. 부산판화가협회 제공

포구와 판화가 지닌 공통의 ‘경계성’에 주목하며, 바다와 육지, 기억과 현실, 지역과 세계가 교차하는 지점을 예술로 탐색한 전시가 마련됐다.

부산판화가협회가 주최하는 ‘2025 글로컬 프로젝트#2: 판(版)의 경계, 경계의 포구’ 전시가 지난달 27일부터 부산 영도구 복합문화공간 스페이스 원지에서 열리고 있다. 물양장이 바라보이는, 100년이 넘은 낡은 보세창고를 개조한 공간 덕분에 전시 주제가 한층 돋보인다.

서유정 부산판화가협회장이 2년째 전시감독을 맡아 이끄는 이 프로젝트는 지난해 금정구 예술지구p에서 열린 ‘2024 글로컬 프로젝트#1: 예술과 환경_Living, Working, Printmaking’을 잇는 두 번째 버전이다.

이번 전시는 한국을 비롯한 8개국 64명의 예술가가 참여했다. 이들은 각자의 해양도시에서 겪어온 삶과 기억, 그리고 사라져가는 포구의 풍경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기록했다. 산업화와 도시화의 물결 속에서 밀려난 어촌과 영세 포구의 현실, 고령화된 어민 공동체의 생존 문제, 해양환경의 변화 등을 예술의 언어로 전환했다. 전시는 판화 작업에만 머물지 않는다. 회화, 설치, 영상까지 두루 아우른다.

부산판화가협회 ‘판의 경계, 경계의 포구’에 전시된 이현숙 작가 작품. 김은영 기자 key66@ 부산판화가협회 ‘판의 경계, 경계의 포구’에 전시된 이현숙 작가 작품. 김은영 기자 key66@
부산판화가협회 ‘판의 경계, 경계의 포구’ 설치 전경. 부산판화가협회 제공 부산판화가협회 ‘판의 경계, 경계의 포구’ 설치 전경. 부산판화가협회 제공

태국 작가 나티폴 차런투라용의 목판화 속 바다엔 인간과 물고기가 함께 살아가지만, 매혹적이면서 불안정하다. 수세기 후에도 이러한 조화가 가능할지 사유하게 만든다. 일본의 히로야 야스코지는 노아의 방주와 바벨탑을 거대한 유조선에 비유하며 자연에 도전하는 인간의 운명을 그렸다. 정철교는 계속된 원전 돔 건설로 더 이상 고기잡이가 힘들어진 신암마을 붉은 바다를 걸었다. 이현숙은 건조 작업이 한창인 오징어가 먹음직스럽게 말라가는 화면 아래에 해양 쓰레기를 잔뜩 그려 넣은 목판화 작업을 선보였다. 허유경의 리노판화는 포구의 풍경을 인간 내면의 양가적 감정으로 치환했다. 강렬한 원색의 대비와 파격적인 구성이 내면 깊숙한 혼란과 욕망을 드러낸다.

부산판화가협회 ‘판의 경계, 경계의 포구’ 설치 전경. 박영근(왼쪽)과 안나 본다렌코 작품. 부산판화가협회 제공 부산판화가협회 ‘판의 경계, 경계의 포구’ 설치 전경. 박영근(왼쪽)과 안나 본다렌코 작품. 부산판화가협회 제공
부산판화가협회 ‘판의 경계, 경계의 포구’에 전시된 김순관 작가 작품. 김은영 기자 key66@ 부산판화가협회 ‘판의 경계, 경계의 포구’에 전시된 김순관 작가 작품. 김은영 기자 key66@

박영근이 목판화로 작업한, 푸르디 푸른빛으로 담아낸 기장 포구는, 그 풍경을 살아온 세대의 기억을 담은 한 인물과 사라져가는 포구의 낭만이 배어난다. 한효정이 리노판화로 담아낸 따뜻한 포구엔, 오랜 세월 지역 공동체의 삶을 지탱해 온 노동과 기다림의 상징처럼 작은 배들과 방파제, 등대, 고기잡이 바구니가 등장한다. 김순관은 지난봄 많은 이를 눈물짓게 했던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도 등장한 제주 포구의 한 장면을 애절하게 담았다. 그것도 정형화된 목판화 형식을 뛰어넘은 구겨진 판화라는 게 이채롭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온 테리 데니스는 리노판화로 항구의 리듬과 역사, 아름다움을 탐구했다. 작품 속 배경이 영도인지, 케이프타운의 하우트 베이인지 구별이 되지 않는다.

부산판화가협회 ‘판의 경계, 경계의 포구’ 설치 전경. 오서현, 정만영, 정철교 작가의 작품이 보인다. 부산판화가협회 제공 부산판화가협회 ‘판의 경계, 경계의 포구’ 설치 전경. 오서현, 정만영, 정철교 작가의 작품이 보인다. 부산판화가협회 제공
부산판화가협회 ‘판의 경계, 경계의 포구’ 전시 중 정만영 작가가 노 젓는 시범을 보이고 있다. 김은영 기자 key66@ 부산판화가협회 ‘판의 경계, 경계의 포구’ 전시 중 정만영 작가가 노 젓는 시범을 보이고 있다. 김은영 기자 key66@

안나 본다렌코는 예전에 아버지가 일하시던 항구를 방문할 때마다 혼란스러워 보이면서도 동시에 질서정연한 인상을 남긴, 세 가지 항구 패턴의 판화 작업을 선보였다. 이희주가 실크스크린으로 표현한 ‘집(포구)으로…블루피쉬’는 금세라도 풍어 소식을 알려올 것만 같다. 오서현은 실을 통해 사라져가는 포구의 시간을 설치 미술로 엮어냈다. 정만영의 ‘바람아 불어라’는 오래전 낙동강 하단포구에서 노를 젓거나 돛을 올려 바람으로 지나가던 배의 기억을 되살려보려 애썼다. 실제 노를 젓듯 바람을 일으키는 순간,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지는 파도 소리가 거세지면서 금세라도 파도가 밀려올 듯했다.

황포돛배와 포구 아카이빙 프로젝트 전시 모습. 부산판화가협회 제공 황포돛배와 포구 아카이빙 프로젝트 전시 모습. 부산판화가협회 제공
탁영아·허태명의 포구 아카이빙 프로젝트 전시 설치 모습. 부산판화가협회 제공 탁영아·허태명의 포구 아카이빙 프로젝트 전시 설치 모습. 부산판화가협회 제공

탁영아·허태명의 포구 아카이빙 프로젝트도 눈여겨볼 만하다. 을숙도와 낙동강을 끼고 형성된 포구와 해안과 맞닿아 있는 서부산 지역의 포구 6개(하단포구, 장림포구, 보덕포구, 홍티포구, 다대·낫개포구, 감천포구), 남부산 지역의 포구 4개(미포, 청사포, 구덕포, 가을포)를 아카이빙했다. 전시는 15일까지이고, 8·9·15일 정오부터 도슨트가 열리고, 오후 1~3시엔 젤 프린팅과 지판화(콜라그래피) 시민 체험 워크숍도 마련된다.

부산판화가협회 ‘판의 경계, 경계의 포구’ 개막식에 앞서 열린 강연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부산판화가협회 ‘판의 경계, 경계의 포구’ 개막식에 앞서 열린 강연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9월 30일 부산 영도 스페이스 원지에서 열린 부산판화가협회 ‘판의 경계, 경계의 포구’ 개막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은영 기자 key66@ 9월 30일 부산 영도 스페이스 원지에서 열린 부산판화가협회 ‘판의 경계, 경계의 포구’ 개막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김은영 기자 key66@
부산판화가협회 ‘판의 경계, 경계의 포구’ 개막식(9월 30일) 공연으로 선보인 독일 ‘앙상블 KNM 베를린’의 연주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부산판화가협회 ‘판의 경계, 경계의 포구’ 개막식(9월 30일) 공연으로 선보인 독일 ‘앙상블 KNM 베를린’의 연주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부산판화가협회 ‘판의 경계, 경계의 포구’ 개막식(9월 30일) 공연으로 선보인 독일 ‘앙상블 KNM 베를린’의 연주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부산판화가협회 ‘판의 경계, 경계의 포구’ 개막식(9월 30일) 공연으로 선보인 독일 ‘앙상블 KNM 베를린’의 연주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부산판화가협회 ‘판의 경계, 경계의 포구’ 개막식(9월 30일) 공연으로 선보인 독일 ‘앙상블 KNM 베를린’의 커튼콜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부산판화가협회 ‘판의 경계, 경계의 포구’ 개막식(9월 30일) 공연으로 선보인 독일 ‘앙상블 KNM 베를린’의 커튼콜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한편 이번 전시 개막식이 열린 지난달 30일엔 ‘삶과 예술의 무대가 된 포구, 부산 포구의 미래’를 주제로 한 강연(이옥부·목포대 문화와자연유산 연구소 전임연구원)과 독일 ‘앙상블 KNM 베를린’이 부산국제현대음악제(BICMF)와 협업한 프로젝트 ‘일그러진 대칭성(Crippled Symmetries)-반복, 순환 & 재배치’ 일환으로 ‘연주자 2, 타악기, 전자음악과 비디오 프로젝션을 위한…잔해로부터 아름다움을…’ 연주했다. 미국 현대 작곡가 모튼 펠드먼(1926~1987)의 후기 작품 ‘Crippled Symmetries’(1983)에 영감받은 이 국제 콘서트는 반복, 순환 & 재배치를 통해 그리스, 페루, 한국, 대만과 협업을 통해 새롭고 현대적인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번 부산 공연에 참여한 작곡가 겸 연주자인 ‘아나 마리아 로드리게스와 후안 펠리페 월러’는 한국의 강정용(국악·타악), 앙상블 KNM 베를린의 토마스 브룬스(사운드·비디오)와 함께 40여 분간 열연을 펼쳤다. 로드리게스와 월러는 3차원 음향의 형태로, 각 장소에서 발견한 종이, 직접 제작한 악기, 판지, 포장재 소리를 재활용한 퍼포먼스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이번 전시와 공연 협업은 스페이스 원지 김보현 대표 제안으로 성사됐다.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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