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음력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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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온(1966~)

짙은 숲과 푸른 강을 섞으면 이런 감정이 들까

애기 주먹만 한 아픔이 돋는다

쓸개 같은 구멍 숭숭 난 허파 같은

맨 살갗 아래로 파고드는 바람

갈 사람들 다 가고

고봉으로 담긴 밥과 탕국과 노르스름한 부침개가 남았다

말 한마디, 주름진 손, 웃을 때 도드라지는 송곳니, 미안하다, 아니요 보고 싶어요

잘못은 왜 뒤늦게 오는가

쓸개처럼 허파처럼 서러워 막 울고 싶다

지나가는 아무나 끌어안고 잘못했어요 빌고 싶다

울지도 빌지도 못하는 이 마음을 두고 빙빙 도는데

쇠북 같은 게슴한 달이 뜨네

시집 〈소리들〉 (2023) 중에서

음력 8월은 가을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달이라 하여 중추(仲秋), 달빛이 고울 때라 하여 가월(佳月)이라 불리기도 합니다.

논밭의 작품들을 수확하느라 바쁘기도 하지만, 풍요와 여유를 갖게 되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특히 음력 8월에는 가장 큰 보름달을 맞이하며 조상에게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는 추석 명절이 있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속담처럼 맛있는 음식 차려놓고 밤낮을 즐겁게 놀 듯 한평생 지내고 싶다는 뜻입니다만, 그 좋은 시절도 하나 둘 떠나고 남은 뒷자리는 울 수도 없게 적적합니다.

아무나 끌어안고 잘못했다 빌고 싶은 회한을 어쩌지 못해 눈물 너머의 달빛만 바라보게 됩니다. 보고 싶은 얼굴들, 뒤늦게 찾아온 잘못이 주먹만한 아픔으로 맺힙니다. 신정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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