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위기는 저절로 끝나지 않는다
안준영 경제부 기자
국토교통부는 매년 전국 건설사를 대상으로 ‘시공능력평가액’(시평액) 순위를 매겨 발표한다. 시평액이란 간단히 말해 건설사가 어느 정도 규모의 공사를 수행할 수 있는지 돈으로 환산한 수치다. 공사 실적이나 재무 상태, 기술력 등을 종합 평가한다. 대형 프로젝트의 시공사 선정이나 입찰 제한의 근거가 되기에 업계에서는 매우 중요한 성적표다.
올해 부산 지역 건설사들 성적표는 낙제점이나 마찬가지다. 지난해 전국 100위권 내 6개였던 부산 건설사는 올해 4개로 줄었다. 전국 200위권으로 넓히면 작년까지 18개였던 업체가 12개로 급감했다. 중견 건설사들이 잇따라 기업회생 절차에 돌입했다고는 하지만, 이는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전반적인 시평액 감소 수준이 업계 예상을 뛰어넘는다는 평가다.
물론 지난 수년간 건설업 경기 악화는 건설 대기업보다 지방 건설사들에게 더욱 치명적이었다. 원자잿값이 널뛰자 공사비가 치솟아 원가율을 맞출 수 없게 됐고, 부동산 PF 부실 여파로 은행 연체율은 높아져만 갔다. 모기업의 재정적 지원이나 위기를 견뎌낼 펀더멘탈이 갖춰진 대기업과 달리 지방 건설사들은 위기에 그대로 노출됐다.
이런 사정들을 감안하더라도 부산 건설업 규모는 다른 도시들에 비해 너무도 초라하다. 두산에너빌리티(시평액 14위·본사 경남), 계룡건설산업(15위·대전), 제일건설(17위·전남), 우미건설(21위·광주), 금호건설(24위·전남) 등 경기도를 제외하더라도 20위권에 오르내리는 중견 건설사가 다른 지방 도시에는 여럿 있다. 부산에는 시평액 32위 동원개발과 34위 HJ중공업만이 전국 50위권 안에 겨우 드는 수준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부산 대형 인프라 사업을 타 지역 건설사가 수주하는 일이 허다하다. 올해 부산 최대 공공 공사인 서부산 행정복합타운 입찰에도 태영건설과 금호건설이 오래전부터 눈독을 들여왔다. 반면 부산 건설사들은 소극적인 행보로 일관하고 있다. 타 지역 대형 프로젝트는 고사하고, 부산 외 지역에 아파트 브랜드 하나 내는 일에도 좀체 나서지 않는다.
부산의 일부 건설사는 자기 땅에 자기 건물을 직접 지어 시행과 시공을 자체 해결하는 방식을 오랫동안 고집해오고 있다. 리스크를 최대한 줄이는 방식이기는 하지만, 공격적이거나 선도적인 경영 방식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부산의 핵심 요지 곳곳에 땅을 사두고 부동산 경기가 좋아지기만을 기다리며 하염없이 묵혀두는 일이 허다하다.
툭하면 불거지는 지역 건설사 브랜드에 대한 품질 논란은 스스로 종식시켜야 한다. 지역 하도급 업체와의 관계도 재정립해야 한다. 부산의 한 하도급 업체 대표는 “협력업체 사장을 뒤로 불러내 가격을 후려치는 일이 여전히 벌어진다”며 “대기업들은 지역 업체를 잘 안써줘서 그렇지 거래 부분은 깔끔하다. 이런 일 몇 번 겪으면 지역 건설사와 일을 하기 싫어진다”고 말했다.
지역 건설업계에는 변화의 바람이 필요하다. 정부가 부양책 보따리를 풀어놓을 때까지, 지방 부동산 경기가 살아날 때까지 넋 놓고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된다. 사업 구조를 다변화하고 기술 경쟁력을 확보해야 위기를 버틸 수 있다. 젊은 인재를 불러 모아 활력을 불어넣고 과거의 틀에 얽매여있던 경영 철학과 조직 문화도 과감하게 바꿔야 할 때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