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살아 있는 것은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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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림(1935-2024)

살아있는 것은 아름답다

하늘을 훨훨 나는 솔개가 아름답고

꾸불텅꾸불텅 땅을 기는 굼벵이가 아름답다

날렵하게 초원을 달리는 사슴이 아름답고

손수레에 매달려 힘겹게 비탈길을 올라가는

늙은이가 아름답다

돋는 해를 향해 활짝 옷을 벗는 나팔꽃이 아름답고

햇빛이 싫어 굴속에 숨죽이는 박쥐가 아름답다

붉은 노을 동무해 지는 해가 아름답다

아직 살아있어, 오직 살아있어 아름답다

머지않아 가마득히 사라질 것이어서 더 아름답다

살아있는 것은 다 아름답다

시집 〈살아있는 것은 아름답다〉 (2025) 중에서

살아있는 것은 아름답다. 아직 살아있고, 오직 살아있어 더 아름답고, 다 아름답다! 평생 가난했고 자주 병고에 시달렸던 노시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봅니다.

나도 살아있는 것만으로 아름다운 사람이겠구나. 따듯한 위안에 눈시울부터 뜨거워집니다. 머지않아 사라질 것이어서 더 아름답다는 선언은 또 왜 그렇게 비장한지요.

지난해 타계한 시인의 유고시집에는 작고 소외된 존재들에 대한 한결같은 연민들이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힘들고 지친 우리에게, 이 고단한 시대를 살아내고 있는 우리에게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보라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세상 모든 것은 존재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당부의 말씀. 사라지고 잊히는 것이 두려운 우리에게 남겨주신 유언,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신정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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