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영화 속의 재난, 현실이 되지 않도록”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최홍배 국립한국해양대 교수·한국BC재난안전센터장

2026년 지방선거가 6개월여 앞으로 다가왔다. 예년과 다름없이 후보들은 도시계획, 교통, 지역개발 등을 주요 의제로 삼겠지만, 필자는 오늘 ‘재난안전’이야말로 가장 시급하고 미래지향적인 공약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왜 재난인가. 우리는 지금 기후위기의 한복판에 있다. 2022년 태풍 ‘힌남노’가 부산을 강타했을 때 기장군 정관은 순식간에 물바다가 되었고, 해운대의 일부 해안도로는 붕괴 직전까지 내몰렸다. 그해 가을, 해운대 엘시티 공사장 인근에서는 낙석 사고로 인명 피해가 발생했고 그 이전에도 산사태와 도로 침하, 지하주차장 침수는 해마다 반복되었다.

이처럼 부산, 특히 해운대와 기장은 도시의 브랜드와는 달리 재난에 매우 취약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 바다와 산이 인접하고 고층 건물과 밀집 주거지가 혼재하며 관광객까지 집중되는 이 지역은 자연재해와 도시재난이 한꺼번에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우리의 재난 대응은 아직도 사고 후 복구 중심이다. 더 늦기 전에, 예방 중심의 정책과 기술로 ‘프레임 전환’을 해야 한다.

첫째, 부산형 재난관리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중앙정부 중심의 획일적 매뉴얼을 벗어나 지역 지형에 맞는 재난지도와 생활권 중심의 대응계획이 필요하다. 예컨대 침수 위험지역(좌동천, 온천천), 산사태 위험지역(반송, 일광), 해일 위험지역(송정, 연화리) 등을 유형별로 구분하고, ‘재난관리 생활권 구역제’를 도입해야 한다. 이와 함께 재난관리 시민협의체(가칭 ‘위기 설계단’)를 만들어 주민, 소방, 경찰, 전문가가 함께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재난은 공무원이 혼자 막을 수 없다.

둘째, AI 기반 예측·경보 시스템을 지역 현장에 시범 적용해야 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단지 산업에만 쓰여야 하는 것이 아니다. 기장 정관 하천이나 해운대 좌동천에 AI 기반 침수 예측 시스템을 도입하면, 실시간 기상·하수관거·해수면 정보를 분석해 자동 경보를 울릴 수 있다. 드론, CCTV, IoT 센서를 연결하면 낙석, 균열, 산사태 징후까지 사전에 포착할 수 있다. 여기에 사용자 위치 기반 AI 경보 앱까지 더하면, 고령자나 관광객을 대상으로도 즉시 알림과 대피 유도가 가능하다.

셋째, 재난데이터 통합 플랫폼을 반드시 구축해야 한다. 부서마다 따로 관리되던 정보를 통합하고, 시민과 공유해야 한다. 부산시와 해운대구·기장군의 모든 위험요소와 사고 이력, 예방시설 상태, 기상자료 등을 한눈에 보여주는 AI 대시보드를 도입하고, 이를 웹 기반 플랫폼으로 연동시켜야 한다. 이 시스템은 단지 예보와 경보만이 아니라, 선거 이후 실행력 있는 재난 행정 평가 도구로도 작동할 것이다.

넷째, 시민참여형 예방 훈련을 제도화해야 한다. 지금처럼 상징적 대피 훈련만으로는 실제 위기 상황에 대응할 수 없다. 시민이 직접 앱 경보를 받고, 상황을 판단하고, 이웃을 구조해 보는 시나리오 기반 훈련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동(洞) 단위로 재난 자율대 조직을 꾸리고, 이들을 AI 안전통신망과 연계하면 대피명령 전달, 고령자 확인, 구조 요청까지 연결될 수 있다.

다섯째, ‘회복도시 해운대·기장’이라는 새로운 도시브랜드를 만들자. 부산국제영화제를 개최하는 해운대가 단지 영화의 도시를 넘어, 재난을 이겨내는 도시로 세계에 알려질 수 있다. ‘재난·기후위기 대응영화 특별전’을 개최하고, UN재난위험경감국(UNDRR)이나 록펠러 재난 회복도시 네트워크 등과 협력해 국제도시와 교류한다면, 부산은 아시아의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다.

2026년 지방선거는 기후위기에 맞서는 첫 번째 선거가 되어야 한다. 공공의 안전은 정치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이곳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더 이상 영화 속 해운대처럼 ‘뒤늦은 후회’로 기억될 수 없다. 정치가 진심을 갖고, 시민과 기술이 함께 설계할 때, 우리는 재난을 이기는 도시를 만들 수 있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