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최후통첩의 최후

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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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후통첩은 무서운 말이다. 일정 기한 내에 특정한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그에 상응하는 행동을 취하겠다는 뜻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주로 국가 간에 사용되는 이 용어는 전쟁이나 국교 단절, 봉쇄, 일정 지역 점령 등의 실력 행사 가능성을 전제로 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최후통첩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전쟁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았다. 제1차 세계대전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황태자 암살 사건 연루 인물들의 처벌을 요구하는 최후통첩을 보냈으나 세르비아가 응하지 않으면서 시작됐다. 제2차 세계대전 역시 연합국이 폴란드를 침공한 독일에 최후통첩을 했으나 거부당하면서 본격화됐다. 이 때문에 외교 관례상 최후통첩은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최근엔 최후통첩이 남발되는 추세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구 최고의 ‘최후통첩 전문가’로 등극한 듯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월 이스라엘과 공방 중인 이란에 핵 개발 포기를 압박하면서 합의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공격할 수 있다는 최후통첩을 날렸다. 그는 ‘최후의 최후통첩(the ultimate ultimatum)’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협상과 관련해서도 최후통첩을 연이어 날리고 있다. 수모에 가까운 최후통첩을 받은 대부분의 국가들은 세계 최강 미국 수장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다만 러시아는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들에 대한 관세 제재 유예 시한을 단축하겠다는 최후통첩을 날리자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 대통령이 “최후통첩은 전쟁으로 가는 발걸음”이라며 반발,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최후통첩 때문에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것이 요즘 지구촌의 현실이다.

최후통첩을 애용하는 것은 미국만이 아니다. 중국은 대만에 침공을 암시하는 최후통첩을 수시로 보낸 데 이어 대만에 우호적인 미국과 리투아니아 등에도 최후통첩을 날리고 있다. 신냉전 갈등이 본격화하면서 지구촌엔 엄포인지 진짜 최후통첩인지 구분키 어려운 과격한 외교 수사들이 횡행한다. 최후통첩은 이제 최후의 메시지가 아니라 외교·통상 전술 수단으로 전락한 느낌이다.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는 ‘자, 마지막으로 말하노라/자연에는 알맹이도 쭉정이도 없다/다만 그대가 알맹이인지 쭉정이인지/늘 성찰해야 한다’라는 짧은 시를 남겼다. ‘최후통첩’이란 제목의 이 시는 무책임하게 최후통첩을 남발하는 신냉전 시대 지도자들을 겨냥한 진정한 최후통첩이라는 생각이 든다. 천영철 논설위원 cyc@


천영철 논설위원 cyc@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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