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적자성 채무 900조 돌파, 국가 재정 건전성 잘 살펴야
불과 5년 새 배 늘어, 채무 질 크게 악화해
새 정부 재정 확대 기조… 관리 목표 제시를
국가 재정에 심각한 경고등이 켜졌다. 국민 세금으로 갚아야 하는 적자성 국가채무가 사상 처음으로 900조 원을 넘었으며 전체 국가채무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70%를 돌파했다. 지난달 30일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올해 두 차례의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으로 국가채무는 1300조 6000억 원에 이르렀으며, 이 중 적자성 채무는 923조 5000억 원에 달한다. 더 심각한 것은 2019년 407조 원이던 적자성 채무가 불과 5년 만에 배로 늘었다는 점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일시적 지출을 감안하더라도 증가 속도는 위험 수위를 넘었다는 평가다. 문제는 단순한 나랏빚 증가가 아니라, 채무의 ‘양’과 ‘질’ 모두 악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이 크다.
적자성 채무의 급증은 국민의 실질적 상환 부담을 키울 뿐 아니라 이자 지출 증가로 인해 재정 운용의 경직성도 심화시킨다. 이는 결국 미래세대의 선택지를 제약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국가채무 중에서도 적자성 채무의 비중과 증가율은 특히 엄격히 관리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적자성 채무에 대한 명확한 관리 목표를 세우지 못하고 있다. 앞서 추진한 재정 준칙에도 ‘국가채무 총량을 GDP 대비 60% 이내로 관리한다’는 원칙만 있을 뿐, 정작 국민 부담과 직결되는 적자성 채무에 대한 별도 기준은 빠져 있다. 국회예산정책처가 이번 보고서를 통해 정부의 재정 전략을 강하게 질타한 것도 이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적자성 채무의 증가세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새로 출범한 이재명 정부가 재정 확대를 핵심 기조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아동수당 확대, 기초연금 강화 등 복지 정책은 필요하지만, 재원 조달 방식과 지속 가능성이 문제다. 정부는 5년간 210조 원이 추가로 소요될 것으로 보고 지출 구조조정으로 충당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국채 발행에 의존할 가능성이 크다. 이런 중대한 예산을 논의할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도 2차 추경안 심사 첫날부터 여야 갈등을 빚으며 실망을 안겼다. 국민 세금으로 충당될 추경안을 두고 정쟁에 시간을 허비하는 사이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가고 있다.
지금은 머뭇거릴 때가 아니다. 정부와 정치권은 현 상황을 엄중히 인식하고 실효성 있는 대응책을 서둘러야 한다. 이 속도로 적자성 채무가 늘어난다면 국가 신용등급과 대외 신뢰도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정부는 이제라도 적자성 채무에 대한 별도 관리 목표를 명확히 세워야 한다. 현재의 재정준칙은 총량 관리에 치우쳐 있어 적자성 채무의 비중과 증가 속도에 대한 통제가 어렵다. 이제는 채무의 질까지 고려한 재정 운용으로 전환할 때다. 국민 부담을 전제로 한 부채 지출이 무한정 계속될 순 없다. 복지와 성장, 재정 건전성과 경기 대응 간 균형을 위한 치밀한 전략과 사회적 합의도 필요하다. 더 늦기 전에 국가 재정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