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두 쪽 난 베네치아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원도심은 400여 개의 다리로 연결된 섬 118개로 이뤄져 있다. 도시 전체에 걸친 수로를 통해 배로만 다닐 수 있는 ‘물의 도시’로 유명하다. 유네스코는 1987년 베네치아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인정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베네치아는 비엔날레, 국제영화제, 카니발 등 세계적인 문화예술 축제 개최지이기도 하다. 유네스코는 2023년 홍수를 비롯한 기후 변화 영향과 대규모 관광 등을 이유로 베네치아를 ‘위험에 처한 세계유산’ 목록 등재를 검토했다가 보류하기도 했다.
베네치아는 ‘오버 투어리즘’(과잉 관광)을 상징하는 도시다. 지난해 오버 투어리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세계 최초로 도시 입장료 제도를 도입했다. 당일치기 방문객을 대상으로 도시 입장료 1인당 5유로(8000원)를 부과한 것이다. 올해도 지난 4월 18일 시작해 오는 27일까지 주로 주말과 공휴일에 입장료를 받는다. 올해 입장료도 1인당 5유로인데, 방문 예정일로부터 3일 이내에 예약할 경우 10유로(1만 6000원)를 내야 한다.
베네치아의 여론이 둘로 쪼개지는 일이 벌어졌다. 아마존 창립자이자 2150억 달러(293조 원)의 자산을 보유한 ‘세계 3위 갑부’ 제프 베이조스가 지난달 26~28일(현지 시간) 사흘간 베네치아에서 폭스 TV 앵커 출신인 약혼녀 로런 산체스와 초호화 결혼식을 올린 것이 발단이었다. 결혼식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 배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 모델 킴 카다시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딸 이방카 트럼프와 사위 재러드 쿠슈너 등 200여 명의 세계 유명 인사들이 참석했다. 인근 공항 3곳에 전용기 90대, 베네치아 대운하에 수상 택시 30여 대가 동원됐고, 하객들은 최고급 호텔 5곳에 나눠 숙박했다. 결혼식 비용만 최소 4000만 유로(640억 원)에 달했다.
과잉 관광에 민감한 시민단체들은 “억만장자들이 와서 도시를 놀이공원처럼 사용했다. 세계문화유산인 베네치아를 상품화했다”라고 비판했다. 반면 이탈리아 관광부는 베이조스의 결혼식이 9억 5700만 유로(1조 5000억 원)의 경제 효과를 낼 것으로 기대했고, 베네치아 자영업자들도 결혼식에 찬성 입장을 밝혔다. 부자가 자기 결혼식에 막대한 돈을 쓴 것에 대해 나무랄 수는 없다. 하지만 이 ‘세기의 결혼식’이 경제적 불평등 이슈를 환기하면서 소음, 사생활 침해 등을 겪는 베네치아 민심에 생채기를 낸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김상훈 논설위원 neato@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