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관성과 변화
서정아 소설가
잘못된 관성 멈추려면
엄청난 에너지 필요해
우리의 내적인 힘으로
더 나은 세계 찾을 것
나른하게 누워있는 고양이 사진에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이미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만 더 격하게 아무것도 안 하고 싶다.’ 한때 유행했던 밈(Meme)이다. 침대에 누운 채로 시간을 흘려보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얼마나 편하고 쉬운 일인지. 그건 그가 특별히 게으른 사람이어서가 아니다. 어떤 힘이 가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기존의 상태를 계속 유지하려고 한다. 가만히 있는 상태에서뿐만이 아니라 어떤 행동을 반복하고 있을 때에도 마찬가지다. 특별한 계기가 없으면 지금 하고 있는 행동 패턴을 반복하는 것이 편하다. 뉴턴의 제1운동법칙, ‘어떤 물체에 외부에서 힘이 작용하지 않는 한, 정지해 있던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으려 하고, 운동 중인 물체는 계속 같은 속도로 직선 운동을 한다.’ 이 법칙을 삶의 여러 측면에 폭넓게 적용해보면 우리의 관성적인 행동이 매우 자연스러운 물리 현상이라는 점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해서 모두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잘못 굳어진 관성은 하루를 망칠 뿐만 아니라 몇 년의 세월을 그릇된 방향으로 흘러가게도 한다. 나는 20대 후반에 취미로 시작했던 풍물패 활동을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데, 대학 풍물패 출신이었던 초창기 멤버들과는 달리 기본기가 아예 없는 상태에서 모임에 들어온 케이스였다. 선배들은 얘를 어떻게 해야 하나, 난감해 하면서도 내치지 않고 끈기와 인내로 장구 강습을 해주었다. 그러나 대학 시절 매일 동아리방에 드나들며 악기를 두드리고 방학 때마다 각종 전수 프로그램을 통해 기량을 쌓아나가던 이들과 내가 같을 수는 없었다. 평일에는 직장 생활을 하고 주말에만 두어 시간 연습을 하는 처지에 기본기를 차곡차곡 쌓아나가기는 아무래도 어려웠다. 일주일에 한 번 모이는 상황이었기에 선배들도 나에게 몇 달 동안 ‘쿵’만 치라고 할 수는 없었을 것이고, 나로서도 빨리 다양한 가락을 익혀 선배들과 같이 공연을 하고 싶은 욕심이 컸다. 그러다보니 기본 타법이나 자세가 바르게 잡히기 전에 여러 가락들을 배우며 공연 연습을 하게 되었고, 가락을 외우는 일과 빠르게 속도를 내는 일이 시급했기에 잘못된 타법과 자세는 그대로 굳어지고 말았다. 가끔 선배들이 지적을 해주기도 했지만 그 순간에만 잠시 신경을 쓸 뿐 나는 금세 기존의 잘못된 습관을 되풀이하게 되었다. 늘 하던 대로 하는 것이 편하니까. 그러나 잘못된 관성은 결국 문제 상황을 맞닥뜨리게 하고 그로 인한 한계를 직면하게 한다. 나는 가락을 다 외웠으면서도 일정 빠르기 이상의 속도를 내지 못했고, 힘을 빼고 쳐야할 부분에서도 자꾸만 힘을 줬다. 그것이 잘못된 타법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여전히 고치기는 쉽지 않다. 뉴턴의 제1운동법칙에 따르면 이러한 관성을 깨기 위해서는 힘의 작용이 필요하다. 물체의 운동에 국한한다면 그건 외부의 물리적인 힘을 뜻하는 것이겠지만, 우리의 관성적 행동 패턴에 적용해 본다면 그 힘은 강한 내적 동기나 새로운 목표, 변화를 향한 의지 등으로 볼 수 있겠다.
변화는 어렵다. 과거에 우리가 고수했던 사고방식이나 이미 굳어져버린 패턴에 자꾸 부딪친다. 익숙해진 무언가를 바꾸는 일은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는 것보다 더 큰 에너지를 필요로 하므로, 지금까지 그 일에 들인 시간보다 기존의 관성에서 벗어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이는 개인에게 국한된 문제만이 아니다. 사회나 국가 차원의 집단적인 관성도 있다. 사회 전체의 잘못된 관성을 멈추거나 변화시키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는 그러한 내적인 힘이 충분히 있다는 것을, 그 힘으로 더 나은 세계를 찾아갈 수 있으리라는 것을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