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라는 비는 안 오고 바람만 거세져… “악으로 버틴다” [잡히지 않는 영남 산불]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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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하동 산불 현장 가 보니

산청 산불 하동 옥종면까지 확산
24일 오전 강우량 0.1mm 그쳐
현장엔 사람 휘청일 정도의 돌풍
한쪽 불길 잡으면 다른 쪽 연기
진화율 60~70% ‘제자리걸음’
산불 진화대 피로감 극에 달해

산불 발생 나흘째인 24일 산림청 소방헬기가 경남 산청군 일대를 비행하며 진화를 위해 물을 뿌리고 있다. 연합뉴스 산불 발생 나흘째인 24일 산림청 소방헬기가 경남 산청군 일대를 비행하며 진화를 위해 물을 뿌리고 있다. 연합뉴스

경남 산청군 시천면 산불이 발생한 지 나흘째가 지났지만, 불길은 여전히 잡히지 않고 있다. 기다리던 비는 거의 오지 않았고, 불청객인 강풍만 불고 있다. 진화율은 계속 제자리를 맴돌면서 진화 현장의 피로감은 극한으로 치닫는다.

24일 경남도와 산림청 등에 따르면 지난 21일 오후 3시 25분께 산청군 시천면 신천리 한 야산에서 발생한 산불은 강풍에 의해 인근 하동군 옥종면으로까지 번졌다. 처음에는 ‘산청 산불’이었던 명칭도 24일 오후부터는 ‘산청·하동 산불’로 변경됐다.

산불 진화율은 계속 60~70% 수준으로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다. 어느 한쪽에 불길을 잡으면 곧바로 다른 쪽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진화 헬기가 하루 수십 번씩 물을 퍼 나르고 있지만 산불 기세를 꺾기엔 역부족이다.

산 중턱에 머물던 산불이 이제는 산 아래 마을까지 번지면서 지상에 있던 진화대원들은 이를 막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다. 꺼질 듯 꺼지지 않는 산불과 나흘째 싸우고 있는 진화대원들은 피로감이 극에 달해 있는 상태다. 한 진화대원은 “너무 힘들어서 말도 안 나온다. 중간중간 교대를 하지만 연기와 탄 냄새가 너무 심해 머리가 아플 정도다. 무엇보다 산불이 언제 꺼질지 모르다 보니 모두가 지쳐있다. 모든 대원이 악으로 버티고 있는데, 하루빨리 이번 사태가 진정되길 바라는 마음뿐”이라고 말했다.

24일 오전 그토록 기다리던 비가 내렸지만, 기대는 이내 실망으로 바뀌었다. 땅을 적시고 불길을 잡아줄 것으로 예상했지만, 0.1mm 이하 강우량에 그치면서 진화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한 소방대원은 “생각보다 바람이 너무 강하게 분다. 위험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비가 온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아쉽다. 기우제라도 지내고 싶은 마음”이라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비 대신 원치 않은 불청객인 바람만 찾아왔다. 현재 산불 현장에는 평균 5m/s의 바람이 불고 있는데, 순간풍속은 16m/s에 달한다. 사람이 휘청일 정도의 돌풍이 불고 있는 셈이다. 때문에 불씨가 계속 날리며 피해 면적이 넓어지고 있다. 당초 100ha 정도 되던 피해 면적은 어느새 1500ha를 넘어섰다.

화마가 날뛰면서 산청군 일대 재산 피해도 계속 누적되고 있다. 산청 성화사는 이번 산불로 완전히 잿더미로 변했다. 아름답던 산사는 검은 재로 뒤덮여 흔적만 남았다. 안에 있던 주지 스님 등 3명이 대피하지 않았다면 인명 피해까지 날 수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인근 삼신암 역시 소실됐다. 이번 산불로 주택 16곳과 사찰 2곳, 창고 11곳, 공장 2곳, 차량 8대 등 57개소가 불에 타는 등 피해를 입었다. 하동에서는 경남도 기념물인 900살 된 은행나무가 전소되기도 했다.

그러나 극한으로 달려가는 현장 진화대원을 돕기 위한 지원의 손길도 이어지고 있다.

24일 BNK금융그룹은 피해를 입은 지역의 적십자와 연계해 3억 원 상당을 기부하기로 했다. BNK는 계열사인 부산은행과 경남은행을 통해 피해 사실 확인서를 제출한 기업에 경영 안정 자금을 우선 지원하기로 했다. 피해를 입은 이재민 개인에 대한 긴급 생활 지원 자금과 송금·환전 수수료 면제도 제공한다.

앞서 지난 22일에는 BNK 긴급재난구호봉사대 50여 명이 시천면 일대에 직접 투입되어 긴급 지원 활동을 펼치기도 했다.


김현우 기자 khw82@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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