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수의 지금 여기] 다시, 새로운 시간 앞에 서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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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위원

새해 같지 않은 을사년 새해
계엄이 촉발한 국정 혼란 여전

내란 비호, 탄핵 심판 어깃장
반민주적, 반헌법적 세력 준동

또 다른 역사 쓰는 대한민국
눈 부릅뜬 주권자가 운명 좌우

2025년 을사년(乙巳年)이 밝았다. 을사년이라면, 1905년 일제에 국권을 뺏긴 을사늑약의 치욕이 먼저 떠오른다. 육십갑자가 두 번이나 돌았으니, 햇수로 120년 만이다. 올해 을사년의 시작도, 무슨 운명처럼 ‘을씨년스럽다’.

무엇보다 예년과 달리 시간의 경계를 못 느끼겠다. 새로운 시간 앞에서 결심을 세우고 잊었던 다짐도 애써 찾아보지만, 허사다. 시간의 경계 이쪽에서의 새로운 출발이란, 경계 저쪽에서 하나의 매듭이 지어져야 가능한 법이다. 그러나 계엄으로 촉발된 국정 혼란은 해소될 기미가 없고, 역사의 반역 세력들은 계엄 비호와 탄핵 심판 지연에 혈안이 돼 있다. 그래서 지금은 ‘2024년 13월’이다.

역사의 물줄기는 도도하다. 만절필동(萬折必東)이라는 말이 여기에 부합한다. 굽이굽이 꺾이고 뒤틀리고 휘청거릴망정 끝내 당도해야 할 곳을 잊지 않는다. 이 장대하고 거센 흐름을 거스르는 자들은 어느 시대나 있기 마련이다. 시간을 거꾸로 돌리려는 무지몽매의 몸부림은 결국 소멸의 운명을 맞을 수밖에 없다. 역사의 가르침이 그러하다.

18세기 프랑스는 구질서와 새 질서의 전쟁터였다.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 제도를 이룩한 시민혁명의 결과, 자유와 평등·인권의 가치를 기초로 하는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 현대 민주국가의 정치·사회 체제의 근간이 상당 부분 여기에 의지한다. 달리 말하면, 그것은 숱한 희생과 피의 대가다. 당시 ‘반혁명’ 세력의 준동이 끊이지 않았음을 주목해야 한다. 반혁명 세력이란 왕정복고와 구체제로의 회귀를 도모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목적 달성을 위해 외국군을 끌어들이는 반동적 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혁명-반혁명을 가르는 기준은 민중이다. 민심과 함께하면 혁명, 그것과 분리되면 반혁명. 그 싸움의 결정적 역할은 바로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들의 열망이었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반혁명 세력은 누구인가. 물론 ‘혁명’은 시대에 맞지 않는 과격한 언어다. 하지만 상황 자체는 그에 못잖게 엄중하다. 반혁명 세력을 현재에 맞게 고쳐 말하면, '반민주적' '반헌법적' 세력이다. 바로 불법 계엄을 자행하고 내란을 옹호하는 사람들이다.

그 우두머리는 두말할 것 없이 윤석열 대통령이다. 국회에 대한 무력 장악이 대통령 본인의 적극적인 의지였음이 다 드러났다. 검찰은 적어도 지난해 3월부터 계엄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있었다고 본다. 치밀하게 계획된 국헌 문란 목적의 폭동. 이게 검찰 수사의 결론이다. 형법상 내란죄 구성 요건을 모두 갖췄고 대법원 판례에서 규정한 조건에도 맞는다.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은 어떤가. 계엄과 내란 수괴를 비호하는 반민주, 반헌법 세력임이 분명해졌다. 탄핵소추안 가결 뒤 비상식적인 명분으로 헌재 재판관 임명을 거부하고 권한대행의 탄핵 의결정족수 문제를 들어 헌재에 권한쟁의심판까지 청구한 상태다. 대다수 국민들의 마음을 대놓고 무시하는 후안무치한 행보는 점입가경이라는 말로도 모자랄 지경이다.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대통령과 소속 정당의 현실 인식이나 행동양식이 극우 세력의 자장 안에 있다는 사실. 이들은 종북좌파론, 부정선거론 같은 각종 허위·사이비 논리를 앞세워 윤 정권을 흔들더니 지금은 계엄 엄호와 여론 반전을 위한 집단행동을 선동하고 있다. 이미 정권 외곽에서 정권 내부로 깊숙이 들어와 있는 관련 인사들도 부지기수다. 극우 세력이 그동안 저지른 폭력 행위의 정점에 12·3 계엄이 있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실린다. 극우 세력은 한 마디로 반민주, 반헌법 세력의 본산이었던 것. 이들이 원하는 건 혼돈 상황의 지속, 결국은 윤 대통령의 직무 복귀다. 탄핵안 가결 뒤 계엄 옹호와 탄핵 지연에 필사적으로 나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프랑스 혁명은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국을 수립한 뒤 국왕을 처단했다. 왕의 처형은 공화국 수립의 필연적 결과이자 시대적 상징이다. 하지만 이것이 혁명의 완성은 아니다. 희생을 무릅쓰고 얻은 자유를 지키기 위해서는 나라 안팎의 반혁명 세력과의 싸움에서 승리해야 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새로운 을사년, 대한민국 주권자가 시퍼렇게 눈을 뜨고 있다. 도저한 역사의 흐름 앞에서 한 줌도 안 되는 반민주, 반헌법 세력의 저항을 가만히 보고 있지 않을 것이다. 나라와 민생보다 자신의 안위와 기득권 지키기에 매몰된 자들은 이 땅에 설 자리가 없다. 을사년의 진정한 출발은 이 문제를 매듭짓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새 시대를 열어나갈 우리 국민들의 저력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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