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리·불황에 쏟아진 경매… 금융위기 때 넘었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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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지역 신규 경매 597건
지난해 동기보다 79.8% 늘어
2007년 이후 17년 만에 최다
경기 침체에 전세사기 영향
상가·오피스텔 등 물량 급증

황령산에서 바라본 부산 연제구와 동래구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정종회 기자 jjh@ 황령산에서 바라본 부산 연제구와 동래구 일대 아파트 단지 모습. 정종회 기자 jjh@

지난 8월 부산에서 경매로 넘어간 물건 숫자가 2007년 이후 17년 만에 최대치를 경신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2009년을 넘어선 수치다. 고금리와 경기 침체를 견디지 못한 자영업자들이 잇따라 상가를 경매로 내놨고, 전세사기 여파로 빌라나 오피스텔도 경매시장에 쏟아지고 있다.

8일 법원 경매정보 통계에 따르면 지난 8월 부산 지역 신규 경매 신청 건수는 59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32건)과 비교해 79.8%나 증가했다. 2007년 8월 680건을 기록한 이후 1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를 기록한 것이다.

8월을 기준으로 최근 10년간 부산 지역 경매 신청 건수는 300~400건 안팎이었는데 올해 들어 순식간에 600건 가까이 치솟았다. 경매 신청 건수는 채권자들이 법원에 신규로 경매 신청을 한 물건의 수다. 전국적으로도 8월 신규 경매 신청 건수는 1만 149건으로 2006년 이후 18년 만에 가장 많은 물량을 기록했다. 2021년 3분기부터 본격화한 금리 인상과 경기 침체로 인해 대출금을 갚지 못한 채무자가 늘어나면서 지난해 연간 신규 경매 신청 건수는 2019년 이후 4년 만에 10만 건(10만 1147건)을 다시 넘겼다.

이런 추세면 올해 신규 경매 신청 건수는 12만 건을 넘어서며 부동산 시장이 극도로 침체했던 2013년(11만 9166건)을 넘어 금융위기 때인 2009년(12만 4252건) 이후 15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할 가능성이 크다.

경매 물건이 증가한 주된 원인은 고금리와 경기 침체로 자영업자들이 막대한 타격을 받아 상가를 경매로 넘기는 일이 빈번해졌기 때문이다. 자영업자 최 모(55) 씨는 "3년 전 신축 아파트 상가를 분양받아 음식점을 운영했지만 대출 이자조차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장사가 안 됐다"며 "헐값에 내놔도 거래가 되질 않아 결국 경매를 신청했다"고 하소연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세사기가 임대차 시장을 휩쓸면서 빌라(연립·다세대 주택)나 오피스텔의 수요도 확 꺾였다. 부동산 호황기 때 임대 수익용으로 빌라나 오피스텔을 구매했던 이들이 고금리를 견디지 못해 경매로 물건을 넘기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같은 현상이 앞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데 있다. 신규 경매 신청은 계속 늘어나는데, 기존 물건은 유찰이 거듭되면서 경매 물건이 적체되고 있는 탓이다. 법무법인 명도의 강은현 경매연구소장은 “경매시장은 금리나 경기 상황에 후행하기 때문에 연내 기준금리 인하가 단행되더라도 당분간 경매 신청 건수는 증가세가 이어질 것”이라며 “최근 대출 규제가 강화된 것도 경매 물건 증가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밝혔다.

동아대 강정규 부동산학과 교수는 “금리 인하와 내수 경기 회복 등 거시 경제 지표가 살아나야 부동산 시장이 움직이고 그 이후 경매 시장도 예전의 활기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예측한다”며 “해운대구나 수영구, 동래구 등 선호 입지 위주로만 경매 거래가 활발해질 수 있으며, 앞으로는 경매 시장에도 양극화가 심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안준영 기자 j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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