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일영화상 2024] 여우주연상 '정순' 김금순 “경력단절 딛고 찍은 영화, 힘과 위로 됐으면…”(종합)
“심장이 터질 것 같습니다. 전통과 역사를 자랑하는 부일영화상에서 제가 여우주연상을 받다니 가문의 영광입니다. ‘정순’을 보시는 분들에게 힘과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영화 ‘정순’(감독 정지혜)에서 하루아침에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가 되어 붕괴된 일상과 고통을 겪다가 다시금 자신의 삶을 쟁취하는 중년 여성을 세밀하고 밀도 있게 그려낸 김금순(51) 배우가 2024 부일영화상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전까지 여러 단편영화에 출연했지만, 영화의 무게가 그렇게 크게 다가온 적도 ‘정순’이 처음이었다고 한다.
지난 4월 국내 개봉한 ‘정순’은 김금순의 첫 주연 영화이다. 결혼과 동시에 연기 생활을 그만두고 출산과 육아에 전념하다 두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다시 일을 시작한 지 10년 만이다.
“아이가 둘이나 되다 보니 저도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영화를 하면 애들 반찬값은 나온다고 해서 ‘필름메이커스’라는 플랫폼에 결혼 전에 했던 연극 프로필과 집에서 셀프로 찍은 사진을 넣어서 올렸는데 바로 연락이 왔어요. 에너지 넘치는 엄마 역할이었고, ‘거마비’라면서 처음으로 5만 원을 받았어요.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10년의 ‘경력 단절’을 딛고 새롭게 시작한 일이었던 만큼, 그는 한 커트밖에 나오지 않은 영화 출연도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하루에 세 편의 단편영화에 출연한 적도 있었다. 기차 안에서 옷을 갈아입기도 하고. 지금은 그게 다 추억이 되었다.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일을 많이 할 수 있어서요. 10년의 공백이 제겐 너무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엄마 역할을 했던 모든 게 저한테는 도움의 시간이니까요. ‘정순’의 엄마 역할도 살림하고 아이들 키울 때 경험을 떠올릴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습니다.”
‘정순’은 2022년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제17회 로마국제영화제, 제70회 산세바스티안 국제영화제, 제66회 런던국제영화제 등 전 세계 19개 영화제에 초청돼 8관왕을 수상할 정도로 주목받았다. 김금순은 이 중 로마국제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또 2022년 제24회 부산독립영화제에서 최우수연기상을 공동 수상했다.
그런데 이 작품은 ‘정순’보다 먼저 올해 1월 개봉한 ‘울산의 별’(감독 정기혁)과 비슷한 시기에 촬영된 데 이어 전혀 다른 캐릭터로 주연을 맡아서 쌍둥이처럼 언급된다. ‘울산의 별’은 2022년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올해의 배우상과 2024년 제11회 들꽃영화상 여우주연상의 영예를 김금순에게 안겼다. 남편과 사별 후 조선소에서 30년간 노동자로 근무한 50대 가장 역할이다. 그는 스포츠형으로 머리를 아주 짧게 자르고 억척스러운 조선소 노동자로 변신했다.
“다른 작품 출연도 계속해야 하는데 (감독이) 완전 쇼트커트를 해야 한다니까 저로선 처음엔 충격이었죠. 지금 생각하면 두 영화를 만나게 된 건 운명 같았습니다. 10년의 공백기 이후 다시 영화 일을 시작하면서 독립 단편영화 작업을 많이 했고, 거기서 얻은 에너지가 굉장히 큰 작용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나 많은 작품에 출연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되는 건 없구나 싶습니다.”
‘울산의 별’의 윤화, ‘정순’의 정순, 두 김금순은 확연히 다르다. 윤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분노에 찬 역할이라면, 정순은 웬만하면 화내지 않고 웃음으로 풀어내는 그런 역할이다. 너무나 상반된 캐릭터를 연기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을까. “어느 게 더 쉽고 어렵다기보다는 연기할 때 모든 배우가 그렇지만, 통증을 가지고 합니다. 두 작품의 감독님 모두 오랜 시간을 두고 이야기를 담아낸 거라(갑자기 경상도 억양이 툭 튀어나왔다) 제 고민의 양보다 훨씬 더 깊이 와닿았고, 감독님이 원한 지문이나 미팅에서 당부한 걸 토대로 연기했습니다. 다만 ‘정순’은 영화적 무게가 엄청 크게 다가왔고, 내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던 게 사실입니다.”
김금순은 강원도 속초 출생으로, 중·고등학교는 경남 진주에서 다녔다.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연극을 시작해 고교 졸업 후에는 진주극단 현장에서 3~4년간 활동하다 서울로 옮겼다. 서울에선 정극과 뮤지컬, 현대무용, 마임 등 다양한 분야에 출연하다 결혼과 함께 중단했고, 다시 영화 현장으로 나와 ‘지천명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최근엔 영화와 TV 드라마를 오가며 종횡무진 활약 중이다. 올해만 해도 주인공 도다해(천우희 분)와 채무 관계로 얽힌 가짜 엄마 백일홍 역(JTBC ‘히어로는 아닙니다만’), 호탕한 성격의 분위기 메이커 도재숙 역(2024년 tvN ‘엄마친구아들’) 등에 얼굴을 내밀었다. 이번 BIFF에도 두 작품과 함께 찾았다. 주인공 이동휘(이동휘 분)의 엄마 정복자 역할로 등장하는 영화 ‘메소드연기’와 이명세 감독의 주도 아래 여섯 명의 감독이 참여한 옴니버스 영화 ‘더 킬러스’의 보이스 역 등이다.
앞으로 특별히 도전하고 싶은 역할이 있느냐고 물었다. “액션에 도전해 보고 싶어요. 아름다운 액션 말고요, 둔탁하지만, 실생활에서 한 대 때리기 너무 힘든 그런 상황에서 물고 뜯고 싸우는 거요. 최민식 선배가 나온 ‘올드보이’의 장도리 신 같은 게 욕심나요. 그리고 제가 물리학과 우주, 미래 이야기를 좋아하는데 그런 영화에도 출연하고 싶습니다.”
2022년 BIFF에서 올해의 배우상을 받을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이영애 배우가 들려준 심사평을 잊지 못한다. “아직도 이렇게 훌륭한 배우를 몰랐다니 나의 무지를 탓한다. 그녀는 충분히 젊고 새롭고 신선한 배우이자 올해 주목받아 마땅한 찬란한 배우이다.”
‘이웃집 언니’ 같은 푸근함과 친근함이 매력인 50대 중년 배우 김금순의 변신과 도전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그는 “한 장면 한 장면 더 정성스레 연기하면서 나아가겠다”는 마지막 수상 소감으로 각오를 다졌다.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