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초파리 뇌 지도 완성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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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와 배 등 과일이나 음식물에 잘 꼬이는 초파리는 사람들에게 두 얼굴의 존재다. 모기처럼 흡혈을 하지는 않지만 달콤새큼한 음식물은 귀신같이 알아 보고 달라붙어 보는 이에게 불쾌감을 일으킨다. 조금만 방심해도 어디서 왔는지 순식간에 모여드는데, 인간에게 직접적인 해가 되지는 않아도 병원균을 여기저기 옮길 수 있어 대부분 환영받지 못한다. 일상에선 일단 기피 대상인 것이다.

그런데 과학의 영역에선 완전히 딴판이다. 세상에 이만한 곤충은 없다는 듯이 과학자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 특히 돌연변이, 생체 주기, 면역 등 인간의 각종 질병과 유전, 신경망 연구에서 초파리는 없어서는 절대 안 되는 존재다. 인간을 대상으로 직접 연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초파리는 매우 유용한 대안 역할을 수행한다. 과학자들에겐 최적의 연구 대상인 것이다.

초파리가 인간과 관련한 과학 연구에서 각광을 받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총 1만 3000개의 유전자를 가진 초파리는 이 중 70% 정도가 인간과 같다. 이 때문에 인간 유전 질환의 4분의 3은 초파리에서도 유사한 형태로 나타난다고 한다. 또 초파리는 생명 주기가 2주 정도로 한 번에 100~200개의 알을 낳는데, 이는 많은 실험 개체 수 확보와 실험 결과의 빠른 확인이 긴요한 과학자 입장에선 놓칠 수 없는 이점이다. 초파리를 이용한 논문만 수십만 건이라는 사실이 이를 잘 보여 준다. 그동안 과학자들은 초파리의 유전체(게놈) 연구를 통해 기억상실, 치매, 유전 질환 등 인간 질병에 관한 많은 힌트와 아이디어를 얻었다. 무려 10명의 과학자가 이런 노력을 인정받아 노벨상을 받았다.

20세기 초부터 시작된 초파리 연구의 오랜 도정에서 최근 기념비적인 성과가 나왔다. 한국인 연구자가 포함된 미국 프린스턴대 연구진이 처음으로 초파리 성체의 복잡한 뇌 지도를 완성한 것이다. 크기가 1㎜도 되지 않은 초파리 뇌를 촬영한 전자현미경 사진 2100만 장을 분석해 만들었다고 한다. AI(인공지능)의 도움으로 완성된 초파리 뇌 지도는 앞으로 인간의 뇌 기능과 알츠하이머 등 퇴행성 뇌 질환, 유전병 연구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과학계는 기대하고 있다.

12년이 걸렸다는 이번 연구를 접하면서 새삼 같은 사람으로서 인간 능력의 특출함에 경이로움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론 ‘미물’이라는 곤충과 인간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친연성에도 숙연함을 감출 수가 없다.

곽명섭 논설위원 kms01@


곽명섭 논설위원 kms01@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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