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불안한 추석 연휴… 더는 억울한 죽음 생겨선 안 된다
여·야·의·정 협의체로 의료 붕괴 막아야
유연성·책임감 갖고 7개월 갈등 종식을
유난히 길어진 추석 연휴를 앞두고 의료 공백 사태에 대한 국민의 불안감이 잦아들지 않고 있다. 응급실 문전박대는 일상이 되고, ‘응급실 뺑뺑이’ 끝에 사망할 수도 있는 나라가 됐기 때문이다. 심지어 의사 출신인 이주영 개혁신당 국회의원은 최근 “명절에 가급적 멀리 이동하지 마시라. 교통사고가 나거나 했을 때 아마 병원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 평소 같았으면 괴담 유포자로 지탄받았겠지만 “의료 인프라가 다 무너졌다”는 진단에 고개를 끄덕이는 세상이 됐다. 파국을 막아야 한다. 여·야·의·정 협의체가 마지막 기회다. 이견과 요구 조건이 있다면 대화의 장에 나와 풀어야 한다. 논의의 틀에 참여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여야와 정부가 의료 단체와 접촉해서 협의체 참여를 설득하는 사이 믿기 어려운 소식이 들려왔다. 한 의료인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추석에 응급실 대란이 진짜 왔으면 좋겠다’거나 ‘매일 1000명씩 죽어 나갔으면 좋겠다’ 등의 막말이 올라온 것이다. 이에 앞서 응급실로 복귀한 의사를 부역자로 규정한 블랙리스트가 나돌았다. 엄벌이 필요한 범죄 행위다. 의료계 전체가 아닌 극소수의 일탈이라 해도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의료인이 응급 현장이 위험에 빠져도 상관없다고 인식한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직업 윤리의 추락이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치달은 데는 일방적 추진과 자극적인 언행으로 일관한 정부에도 책임이 있다.
의료 대란의 핵심은 불신이다. 정부가 애초에 2000명 증원의 구체적 근거를 제시하고 설득하지 않은 게 불신의 출발점이다. “6개월만 버티면 이긴다” “환자 본인이 전화할 수 있으면 경증” 등 고위 당국자들의 실언도 사태를 악화시켰다. 응급실 근무를 거부한 파견 군의관에 징계를 추진했다가 철회하는 오락가락 행정도 비판을 불렀다. 그나마 특검 정국으로 대치 중이던 여야 정치권이 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협의체 구성에 합의한 것은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대통령실도 2025년도 의대 정원에는 난색을 표하면서도 “전제 조건 없이 자유롭게 대화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제 공은 의료계로 넘어갔다.
의사협회 등은 협의체 참여의 전제 조건으로 대통령 사과와 책임자 문책 그리고 2025년도 증원 백지화를 요구한다. 의료 시스템 붕괴를 막고 입시 안정성도 보장해야 하는 난제다. 하지만 대화를 해야 해법에 이를 수 있다. 따라서 의료계가 협의체에 참여하고, 대화의 장이 열리는 게 중요하다. 국민을 설득할 책임은 정부뿐만 아니라 의료계에도 있다. 여·야·정은 ‘열린 자세’를 천명하고 있다. 의료계도 공론장에서 불신을 푸는 계기를 찾아야 한다. 정부와 의료계 모두 유연하되 책임감 있는 자세로 7개월간 이어진 의정 갈등의 출구를 모색하라. 더 이상 억울한 죽음이 나와서는 안 된다는 국민의 염원을 명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