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성한 추석 한가위지만…양극화된 정치는 시민들 한숨만
민족 최대의 명절 한가위 연휴가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이번 명절은 긴 연휴가 주어진 만큼 모든 이들이 들뜬 마음으로 오랜만에 고향을 찾는다. 그러나 곳곳에 풍성한 추석을 기원하는 정치인들의 현수막은 오히려 시민들의 한숨만 자아낸다. 최악의 양극화된 정치 지형은 가족과 함께하는 추석 밥상머리에서도 국민들이 마냥 웃을 수 만은 없게 하는 이유다.
여야는 추석 연휴 목전인 12일까지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 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충돌했다. 특히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부터 지금까지 입씨름을 벌여온 최고의 이슈인 의대 증원과 이로 촉발된 의료 공백 사태를 두고 이전보다 더욱 날 선 반응을 쏟아냈다.
의대 증원 공방은 진영을 가리지 않고 벌어지고 있다. 이날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의료대란 해결을 위해 국정 최고 책임자인 윤석열 대통령님의 결단을 촉구한다”며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1년 유예하자”고 했다. 그러자 홍준표 대구시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뒤늦게 나서서 오히려 혼란을 더 부채질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런 상황에 의사·의대생 커뮤니티에서 일부 의대생들이 “(환자들이)응급실을 돌다 죽어도 감흥 없다” 등의 패륜 발언을 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의정을 둘러싼 갈등은 일반 국민들에게도 번진 상황이다. 이날 정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젊은 의사 중심의 커뮤니티인 ‘메디스태프’에는 최근 ‘응급실 뺑뺑이’ 등의 의료공백 사태를 두고 입에 담기 어려운 발언들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이들은 국민을 ‘견민’, ‘개돼지’라고 칭하며 비난을 퍼붓고 있다.
이처럼 고조되는 갈등에 의대생 자녀를 둔 가족들의 표정은 추석을 앞두고도 어두운 기색이 역력했다. 의대생 자녀를 둔 50대 권 모 씨는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일 예정인데 휴학 중인 아이를 생각하면 모두가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어떤 방향이든 조속히 타협안을 찾아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대한민국 국민 3분의 1에 달하는 1400만 개미 투자자들도 명절을 앞두고 답답한 것은 마찬가지다. 여당은 금투세 도입으로 투자자들이 절망에 빠질 것이라, 야당은 형펑성 차원에서 당연히 부과해야할 세금이라는 것이라며 맞부딪히고 있다. 의대 증원처럼 금투세 도입과 관련해서도 민주당 내 입장은 첨예하게 갈린다. 민주당 정책 전략을 책임지는 진성준 정책위의장과 이소영 의원은 지난 10일부터 소셜네트워크(SNS)상에서 금투세 시행과 유예를 두고 맞붙고 있다.
여기다 거듭되는 정치권 막말은 외면을 넘어 혐오를 불러일으키며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제는 정쟁 장의 상징이 되어버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민주당 정청래 의원이 회의에 참석한 박성재 법무부 장관과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을 향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언급하며 “감옥에 간 사람도 있다”고 말하면서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자질을 의심케 했다. 특히 정 의원의 경우 불과 일주일 전인 지난 5일에도 ‘ 악당의 꼬붕(부하의 비표준어)’ 발언으로 논란이 된 바 있어 더욱 민심을 들끓게 한다. 해운대에서 직장 생활 중인 30대 정 모 씨는 “기사를 접할 때마다 국민들의 짜증 지수를 올리는 막말들이 여전히 널려있다”며 “국회의원으로서 품격을 지켰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나마 지난 11일 국회 법사위를 통과한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특별법이 뜻밖에도 우원식 국회의장이 추석 전 본회의 상정을 제지하면서 한숨 고르기에 들어간 모습이다. 12일 우 의장은 “국회법 절차에 따라 신속히 처리하자는 게 야당의 요구이지만 지금은 국민이 처한 비상 상황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여당은 추석 연휴 내내 골머리를 앓지 않게 됐지만, 야당의 반발은 만만치 않다. 우 의장은 일단 추석 연휴 이후인 19일 법안을 처리할 수 있도록 양당이 협의해 달라고 했지만 추석 연휴 직후 상정과 직전 상정이 무슨 큰 차이가 있느냐는 야당의 반발로 연휴 직후부터 특별법 충돌은 기정사실이 됐다. 이에 추석 내내 여야가 쏟아낼 양극단의 정치적 메시지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부산에 한 대학을 다니는 김 모 씨는 “민주당에서 이미 신친일파 척결 릴레이를 시작했다. 2024년에 친일 프레임을 꺼내 든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며 “다수 정당이 민생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정책에 집중했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반면 부산진구 한 버스 정류장에서 선물세트를 양 손에 든 채 만난 정 모 씨는 “윤석열 대통령이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대통령답게 진짜 민심을 청취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치와 더불어 추석 연휴 내내 30도를 웃도는 폭염이 불쾌지수를 높여갈 것으로 보인다. 연일 기록을 갱신하는 열대야 등 이상기후와 관련한 민심 동향도 정치권의 큰 관심사다. 이미 지난 8월 전국의 전기요금이 평균 13% 이상 증가했고, 폭염으로 인한 경제활동 위축으로 당장 10월부터 경제지표의 악영향은 불가피하다.
이은철 기자 euncheol@busan.com , 권상국 기자 ks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