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전문대, '한국형 커뮤니티 칼리지'로 거듭나야
김태상 경남정보대학교 총장
전문대학은 1970년대 말, 전문직업인 양성을 목적으로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되었다. 그동안 설립 취지에 맞게 대한민국의 산업화와 정보화시대에 꼭 필요한 일꾼들을 성공적으로 배출해 왔다.
하지만 저출생 문제가 온 나라를 덮치면서 최근 전문대학을 바라보는 시각은 악화일로에 있다. 교육부가 예산 편성에 있어서 전문대학을 홀대한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수험생들은 전문대 진학에 관심이 없는 데다 고교 교사들도 진학 지도에 적극적이지 않다. 내년부터 시행되는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인 라이즈(RISE) 사업에도 지자체들이 전문대학을 차별할 것이라는 우려도 흘러나오고 있다. 사회 어느 한 곳도 전문대학에 우호적인 데가 없을 정도이다.
그렇다면 수많은 산업의 역군들을 배출하며 지난 50년 동안 국가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해온 전문대학은 이제 그 소임을 다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야 하는가?
이 질문 앞에 필자는 오히려 인구 감소, 지역 소멸 등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절박한 사태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전문대학 역할론’이 재부상돼야 한다고 답하고 싶다. 이른바 시민대학으로 일컬어지는 미국의 ‘커뮤니티 칼리지(Community College)’ 모델로 전문대학들이 혁신적 변화를 이뤄내 지역경제 부흥을 위한 교육 발전소 역할을 담당해야 한다는 게 필자의 주장이다.
미국의 커뮤니티 칼리지는 성인 학습자 중심의 평생교육과 밀려오는 외국 이민자들의 교육을 전담할 교육기관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에 생겨났다. 이것은 경제활동인구의 절대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성인들의 재교육과 정주형 유학생 및 외국 근로자들의 교육이 필요한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과 매우 닮아 있다.
하지만 전문대학의 노력만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찾긴 쉽지 않다. 대한민국의 고질적 병폐인 학벌주의에서 벗어나 전문대학에 대한 정부와 지자체, 그리고 시민들의 인식 변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리고 전문대학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을 잘 살릴 수 있도록 행정·재정적 지원 정책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미국의 경우, 주 정부들은 고등교육의 거점으로 커뮤니티 칼리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며,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학령기 학생은 물론이고 시민들과 외국 이민자들도 교육이 필요하면 자기 동네 칼리지를 먼저 찾는다.
필자는 얼마 전 미국 캘리포니아주 소재 커뮤니티 칼리지 두 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 가장 인상에 남은 것은 지역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을 지자체와 지역 기업이 커뮤니티 칼리지에 의뢰하고, 대학에서는 수요 조사를 거쳐 수료 기반의 특별 과정이나 학과를 신설해 인력을 양성한다는 것이었다. 지·산·학의 유기적 소통으로 지역을 살리고 있다는 것이 무척 부러웠다.
물론 일반대학들도 재취업을 원하는 성인과 ‘코리안드림’을 꿈꾸는 외국 유학생을 대상으로 교육을 잘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학문과 연구 중심의 일반대학보다는 기술교육 중심의 전문대학이 단기간에 취업교육을 받고자 하는 그들에게 더 친화적이고, 유연한 학습 환경을 제공할 수 있다.
이제 고등교육기관인 대학은 학령기, 성인, 외국인 등 학습자별 요구에 맞도록 특화되어야 한다. 교육부와 지자체도 학령인구의 감소와 산업구조의 급변에 따른 전문대학과 일반대학의 역할론을 새롭게 규정해 불필요한 중복투자나 지원배제의 전례를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정부와 지자체가 지역 소멸을 막고 국가의 균형발전을 이루고자 한다면, 전문대학의 가치를 깊이 숙고해 전문대학이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아울러 지역의 전문대학들도 시민들에게 없어져서는 안 될 ‘우리 동네 대학’, 진정 사랑받는 대학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혁신의 고삐를 바짝 틀어쥐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