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인3색 성이야기] 나이와 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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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회 부산대 명예교수

MZ세대에게 사람이 몇 살쯤 되면 섹스를 그만둘 것 같으냐고 물으면 대부분 오십에서 육십 전후일 것이라고 말한다. 이를 노년기의 남녀에게 물어보면 뭐라고 할까? 아마 말은 안 해도 누구나 그들의 표정에서 성에 대한 강한 의지를 읽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로부터 섹스를 얘기하면 무엇보다 그 능력을 앞세웠다. 그러니 나이가 들면서 일어나는 육체적 변화에 얼마나 예민하겠는가? 그게 성적인 것이든 아니든, 아직 오십도 되기 전에 이미 ‘아, 나는 이제 틀렸구나’ 하고 낙심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여자의 경우, 폐경이 되면서 몸에서 여성호르몬이 떨어지며 일어나는 불편함이 없지는 않지만, 이는 의학적으로 얼마든지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젊었을 때 성에 큰 가치를 두고 살았던 여자, 성을 마음껏 구사했던 남자가 나이가 들었다고 성을 외면하게 되는 일은 절대 없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좋다. 성을 좋아했지만,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던 경우도 마찬가지다. ‘파트너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자신의 흥분된 몸’이라는 말도 있는데, 우리는 오랜 유교문화 탓인지 그걸 잘하지 못했던 것이 탈일 뿐이다.

젊었을 때 성에 대해 가졌던 가치나 욕구 같은 것들을 절대 버리지 말고, 비록 몸이 느끼는 반응이 예전만 못하더라도 거기서 얻어지는 부수적인 성적 웰빙을 꼭 얻도록 하시라. 성 표현으로 인하여 생성되는 도파민이나 옥시토신 같은 여러 가지 뇌의 화학적 부산물들은 마음을 편하고 행복하게 해줄 뿐 아니라 우리를 외형적으로도 더 여자답게 또는 남자답게 만들어 준다.

오르가슴 또한 반드시 느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성적 긴장이라는 것이 꼭 오르가슴이 있어야 풀어지는 것이 아니며, 이는 나이가 들수록 더욱 그렇다. 그건 자위만 해도 거의 백 퍼센트 얻을 수 있는 것이므로 별것도 아니다. 공연히 남편 탓, 아내 탓 하지 마시기를 바란다. 어떤 면에서든 즐겁고 의미가 있었으면 만족하는 것이 좋다. 아니면 별로 투자도 안 하고 큰 소득을 바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성적 만족의 평가는 결국 뇌가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게 꼭 여러분이 원했던 성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친밀감이 더해지고 사랑하는 이가 즐거웠으면 거기에 큰 가치를 두기 바란다. 그저 단순히 허그만 했거나 손만 잡고 손가락으로 만지작거리는 것 같은 간단한 행동만 했어도 오랜 추억으로 남거나 삶의 질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게 성이다.

흔히 섹스를 일컬어 커뮤니케이션이라고 한다. 이는 몸과 몸이 맞닿아 서로의 소통을 이뤄내는 작업이라는 뜻도 있겠지만, 대화가 필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성의 가장 큰 적은 침묵이라는 말이 있다. ‘묵묵히’ 언어장애인인 체하는 우리의 성 문화는 빨리 바꾸는 것이 좋다. 몸으로 못하는 많은 부분을 언어가 대신해 줄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능력은 성에서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성적 욕구와 이를 받아들일 마음의 자세만 있으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한 예로 입으로 상대를 자극하는 것을 생각해 보자. 여자가 남자의 성기를, 그리고 남자가 여자의 성기를 입으로 자극하는 것을 각각 펠라티오와 쿤닐링구스라고 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물론 나이와 관계없고 마치 이순신의 남은 열두 척과 비견할 만한 무기라고 생각해도 좋다. 성기는 절대로 더러운 곳이 아니며 몸의 다른 피부 부위와 다를 것이 없다.

성은 신이 우리 인간 모두에게 공평하게 주신 몇 안 되는 선물 중 하나이다. 여기에는 학력도, 재산도, 명예도 아무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우리는 삶의 가치를 불공평하기 그지없는 돈 같은 데 두지 말고 이처럼 공평하고 원초적인 곳에 두어야 한다. 더구나 살날이 산 날보다 덜 남았음에랴? 성을 아는 사람이 사랑을 알게 되고 그래야 자신의 육체와 정신을 진실로 사랑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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