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어쩌다 투자금은 부동산으로, 해외로…
김백상 경제부 금융·블록체인팀장
밸류업 운동 속 되레 해외투자 늘어
해외주식형 펀드, 국내보다 규모 커져
국민 자산 중 64% 넘게 부동산 쏠려
'주식=투기' 인식 개선 노력해야 할 때
올해 금융 투자 시장에선 ‘밸류업’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했다. 평가절하된 우리나라 기업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고 투자를 많이 끌어내자는 움직임이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 차원에서 기업의 해외 IR(기업 설명회)도 활발했고, 정부와 관련 기관들도 적극적으로 도왔다.
이 와중에 대형 증권사들의 호실적 소식이 눈길을 끈다. 국내 5대 증권사의 2분기 전체 당기 순이익 전망치가 9519억 원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지난해보다 15% 가까이 늘어난 규모다. 부실 부동산PF 여파 속에서도 증권사들이 역대급 이익을 늘릴 수 있었던 비결은 늘어난 해외투자이다. 해외주식 거래대금이 늘면서 증권사들의 브로커리지(위탁매매) 수익이 커진 것이다. 해외주식형 펀드 기준 순자산이 70조 원을 넘어서면서, 국내주식형 펀드 순자산 67조 원을 넘어섰다는 소식도 있다. 열심히 “밸류업!”, “밸류업!”을 외치고 있지만, 오히려 국내 투자자들마저 국장을 벗어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투자금이 엔비디아, 테슬라 등 세계적으로 주목 받는 기업을 쫓아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미국 주식이라고 마냥 좋은 것도 아니고, 미국 대형 종목 중에서도 상당수가 손실을 내고 있다. 국내 기업 중에서도 상대적인 성장 폭만 놓고 보면, 미국 빅테크 기업 못지않은 곳도 있다. 어쨌든 지금은 해외에서 투자금을 끌어오는 것 이상으로 해외로 돈이 빠져나가는 걸 걱정해야 할 판이다.
문득 어느 전직 애널리스트의 하소연이 생각난다. 국내 기업들에 대한 투자를 받기 위해 열심히 해외 IR을 하다 보면, 종종 “왜 한국 사람은 자기 나라 기업에 투자를 안 하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국민 1400만 명 이상이 그러니까 우리나라 인구 4분의 1을 넘는 이가 주식 보유자인데 이게 무슨 소리냐고 할 수도 있다.
규모의 문제다. 대부분 사람은 몇십만 원, 몇백만 원 수준에서 주식을 하면서 기업의 주주가 되어 본다. 몇천만 원 이상을 넣으면 간 큰 사람 취급을 받는다. 평범한 직장인이 억대로 주식을 사고파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주식을 해보거나 하는 사람은 많아도, 다수 투자자의 투자 규모는 매우 작은 것이다.
2022년 금융투자협회가 발표한 ‘주요국 가계 금융자산 비교’를 보면, 우리나라 국민의 자산 중 주식·채권 등 금융투자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9% 정도다. 미국 41.5%와는 비교가 안 된다. 일본 9.4%나 영국 8.4%와는 큰 차이는 없다. 대신 일본은 현금·예금 비중이 34.5%에 이르다는 게 큰 특징이다. 영국은 보험·연금 비중이 28.6%에 달해, 안정적인 금융 자산을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럼 우리나라의 특징은 무엇인가. 비금융 자산 비중이 64.4%로 매우 크다는 거다. 미국(28%), 일본(37%), 영국(46.2%) 등과 비교하면 상당히 압도적이다. 비금융 자산은 당연히 부동산이다. “평생 돈 벌어서 집을 산다”, “부동산이 최고의 투자 시장” 등 세간의 말이 여실 없이 반영된 결과다.
국내에선 목돈 투자는 주식보다 부동산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당장 가족이나 친척이 억대로 아닌 몇천만 원을 가지고 주식을 한다고 하면, 걱정부터 할 것 같다. 일확천금을 노리고 도박 시장에 뛰어 들어가는 걸 말리는 것 같은 기분일 것이다. 반대로 몇억 원의 빚을 내면서도 부동산을 사는 것엔 상대적으로 관대하다. 설령 몇천만 원 이상 집값이 내려도, 그럴 수 있는 일로 취급할 수 있다.
당장 하반기 금리 인하 가능성이 커지는 것에 대한 시장의 반응을 보라. 미국에선 금리 인하 가능성을 주식 시장이 반기고 있다. 국내에선 주식 시장의 반응은 사실상 없다. 대신 이미 수도권을 중심으로 집값이 빠르게 반등하고 있다고 한다. 지역에서도 변화의 기미가 슬슬 읽힌다. 확실히 우리나라에선 목돈 투자는 부동산을 더 선호하는 것 같다.
도대체 왜 국내에선 주식은 ‘용돈벌이’일뿐, 목돈 투자는 ‘도박’이라는 인식이 강할까. 실제로 그런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국내 주식 시장에선 뉴스나 이슈 중심의 단기 투자가 선호되고, 투자하는 사람들도 일확천금을 바라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 공매도 논란 등으로 기관들의 신뢰도도 높지 않고, 금융기관의 대처도 미흡하다는 개미 투자자들의 불만도 크다.
최근 야당은 정부의 ‘밸류업’이 기대 이하라며 ‘코리아 부스트업’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자는 프로젝트다. 물론 기업의 가치를 세계에 알리고 제대로 평가받는 것도, 지배구조를 바로잡는 것도 중요하다. 다만 좋은 기업에 대한 장기간 투자가 선호되는 분위기가 조성되고 시장의 신뢰성도 올라가는 등 주식시장의 근본적인 변화도 필요해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투자금은 부동산으로 쏠리거나 해외로 빠지는 걸 막기 어려울 듯하다.
김백상 기자 k103@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