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훈의 생각의 빛] 나체와 속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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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민락동 수변공원, 음주 금지로 청결해져
관광객 유입·이윤 추구에 집착하는 마음
도시 전체 관점에서 이제는 벗어던질 때

장마 한복판이다. 장마가 끝나면 올해 중 가장 무더운 시간이 우리를 덮칠 것이다. 상반기 동안 지쳐버린 몸과 마음을 여름철 휴가를 맞아 시원하게 씻어 낼 방도를 계획하는 사람들도 많다. 열심히 살았건 그러지 못했건 여름은 어쨌든 우리에게 낭만과 추억을 쌓게 하는 계절이다. 필자 또한 이곳 부산에 살면서 여름에 얽힌 추억이 적지 않다. 아무래도 바다로 유명한 곳이니만큼 해운대나 광안리해수욕장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특히 여름밤 민락동 수변공원에 친구들과 삼삼오오 앉아 술을 마시면서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곤 했던 때가 떠오른다.

그땐 무슨 고민거리가 그리 많았던지. 지금 생각하면 대수롭지 않은 일인데도 마치 세상을 다 짊어진 것처럼 심각했던 날들이었다. 친구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검푸른 여름 밤바다 저 멀리 펼쳐진 수평선 앞에서 당장 해결해야 할 일과 안개처럼 자욱하고 불분명했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무시로 마음을 흔들던 시절이었다. 취기가 오르면 박인환 시인(1926~1956)의 시구절대로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목마와 숙녀’ 중) 가슴 벅찬 운명의 예감에 몸서리치거나 미친 듯 파도를 몰아치는 바람에 몸을 실어 밤하늘에 휘발되고 싶었던 기억도 새록새록 떠오른다. 그러다 늦은 밤이나 새벽녘이 되어 자리를 뜰 때쯤이면 엉덩이에 깔았던 신문지며 술병이며 먹다 남은 안주가 밤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곤 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낭만’과 ‘청춘’이라는 허울이 풍광 좋은 도시 수변공간을 헤집고 다니지 않았나 싶다. 젊음은 아직 활짝 열리지 못한 시선으로 한 곳에만 깊이 파고드는 성향을 거느리기에, 우리가 어질러 놓은 고민의 흔적을 미처 살피지 못해 실수가 잦을 수밖에 없었다. 얼마 전 민락동 수변공원 부근에 갈 일이 있어서 그 옛날을 회상했다. 당시엔 수많은 인파가 만들어 내는 소음과 노랫소리, 그리고 더러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추태를 흔히 볼 수 있었다. 나도 이들 무리 속의 하나였다는 생각이 들자 괜히 속내를 들킨 듯 부끄러워졌다.

지난해 7월부터 수영구청이 민락동 수변공원 내 음주 행위를 금지한 이후로 주변 쓰레기 배출량이 크게 줄어 일대가 훨씬 청결해졌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동안 수변공원은 사람들이 붐비는 왁자지껄한 풍경도 좋았지만, 그 반대급부로 각종 소란과 무질서한 음주 행위로 말미암은 추악한 흔적 때문에 주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수영구청의 과감한 결단으로 수변공원은 깨끗한 장소로 탈바꿈한 것이다. 반면에 인근 상인들의 볼멘소리도 흘려들을 수는 없다. 수변공원 일대의 음주 행위가 금지되자 자연히 찾는 사람도 적어지고 횟집이 밀집한 주변의 상인들로서는 울상을 지을 수밖에 없는 결과로 이어졌다.

최근 달라진 수변공원에 관한 지상파 방송을 본 적이 있다. 청결해진 수변공원에 화색이 도는 인근 주민과 청소 봉사자, 그리고 이들과 달리 구청을 원망하는 주변 상인의 인터뷰들이 내심 생각거리를 던졌다. 확인된 바로는, 구청이 결단을 내리기 전부터 상인들에게 영업이익이 발생하는 만큼 청소나 부대 비용을 구청과 상인들이 서로 협조해서 분담하는 방식으로 처리하자고 여러 차례 권고했다고 한다. 아울러 오래전부터 광안리 해변의 음주 금지가 수변공원 내 음주 허가와 부딪쳐 형평성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이렇게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었던 터라 구청으로서도 쉽게 결단을 내릴 사안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도시미관과 중소상공인의 현실, 그리고 주민과 이곳을 찾는 사람들 사이에 벌어지는 ‘고차방정식’을 생각하면 관할 구청의 결단과 집행은 어떤 식으로든 잡음을 남긴다는 사실을 민락동 수변공원의 경우를 보면서 알게 되었다. 어쨌든 행정기관과 주변 상인 및 주민의 이해와 요청 사이에서 협의 지점을 찾은 결과가 지금처럼 쾌적해진 수변공원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여기에서 안데르센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을 떠올리게 된다. 멍청하거나 바보 같은 사람 눈에는 절대 볼 수 없다는 재단사의 말만 믿은 나머지 ‘완성된 옷’을 걸치고 거리를 행진했던 임금 말이다. 벗은 몸으로 활보하면서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오히려 으스대면서 뽐내었던 어리석은 임금님의 정신문화가 불과 몇 년 전 한국 사회의 풍경이었다면 지나친 말일까. 관광객 유입과 이윤에만 눈이 멀었던 지자체와 상인들의 마인드가 오늘날에도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저 동화 속 임금처럼 도시미관 같은 공동체 전체의 큰 그림을 그리지 못하고 당장의 이익에만 욕심을 부려 스스로를 꾀었던 우리 모두의 ‘속임수’가 이제는 환하게 벌거벗겨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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