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에서] 만나기만 하면 '명승부'… 엘롯기 이름값
KBO 만년 하위 팀 지칭한 유행어
자타공인 최고 흥행 구단 대변신
엘롯라시코, 이틀 연속 9-8 승부
각본 없는 드라마, 양 팀 팬 열광
롯데-KIA, 5시간 20분 연장 혈투
최다 점수 차 무승부 타이 대기록
최근 ‘엘롯기’가 만나기만 하면 4시간이 넘는 명승부를 펼치며 한국 프로야구의 최고 인기 구단임을 다시 한번 입증하고 있다.
엘롯기는 LG 트윈스와 롯데 자이언츠, KIA 타이거즈의 첫 글자를 딴 신조어로 2000년대 초반 KBO리그 만년 하위 3개 팀을 일컫는 유행어였다. 2001부터 2004년까지는 롯데가, 2005년과 2007년은 KIA가, 2006, 2008년은 LG가 꼴찌를 차지하면서 엘롯기라는 단어가 야구 팬들에게 점차 각인되기 시작했다.
당시 엘롯기가 모두 가을야구에 진출하면 ‘대한민국이 폭발한다’는 속설도 떠돌았다. 실제로 엘롯기가 동시에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엘롯기 3개 팀이 포스트시즌에 전부 탈락한 경우는 1982년, 1985년, 2001년, 2005년, 2007년, 2015년으로 총 6번이나 있다.
LG는 1994년 이후 2022년까지 20년이 넘게 우승을 못 하다 지난해 통합우승의 기쁨을 만끽했다. 롯데는 한술 더 떠 1992년 이후 무려 30년이 넘게 우승컵을 들지 못했다. 봄에만 반짝해 ‘봄데’라는 오명까지 보유하고 있다. 이대호마저 은퇴식에서 “롯데 팬들이 꿈꾸고 나 또한 바랐던 우승을 끝내 이루지 못 했다”고 울먹였다. KIA는 그나마 2000년 이후 두 차례나 우승을 해 체면치레는 했다.
지난 4월 30일 KBO리그에서 33번째로 통산 100승을 달성한 한화 류현진에게 가장 많은 승리를 헌납한 팀도 바로 엘롯기이다. 류현진은 100승을 쌓는 동안 LG전에서만 22승을 챙겼다. 2위는 롯데로 17승, 3위는 KIA로 15승을 각각 챙겼다. 유독 류현진에게 약한 모습을 보였던 엘롯기가 그에게 무려 54승을 헌납한 셈이다.
하지만 반대 의미로 엘롯기는 자타공인 국내 최고 인기 구단을 의미하기도 한다. 각각 서울, 부산, 광주라는 대도시를 연고지로 삼은 대표적 흥행 구단이어서 그만큼 극성적인 팬덤을 가진 팀들이라는 것이 공통점이다. 최근 성적도 LG와 KIA는 꾸준하게 상위권을 맴돌며 우승 후보다운 면모를 과시하고 있고, 롯데는 비록 하위권에 처져 있지만, 폭발력 있는 ‘불방망이’를 앞세워 중위권 도약을 노리고 있다.
수도 서울의 제1구단이라고 할 수 있는 LG, 구도(球都) 부산을 연고지로 하는 롯데, 호남권의 인기를 독차지하며 ‘해태 시절’ 화려한 기록에 힘입어 전국적으로 팬이 많은 KIA가 이처럼 이름값에 걸맞은 경기력으로 최근 3개 팀 간 맞대결마다 명승부를 연출하고 있다.
엘롯기의 최근 가장 인상적이었던 명승부는 지난달 14~16일 서울 잠실구장에서 펼쳐진 LG와 롯데의 주말 3연전 ‘엘롯라시코’였다. 엘롯라시코는 레알 마드리드와 FC바르셀로나의 더비 매치를 부르는 말인 ‘엘 클라시코’에서 각 팀의 앞 글자를 붙여 만들어졌다.
3연전 중 14일엔 LG가 5-3으로 낙승을 거뒀고, 15일에는 롯데가 9회초 2사 1, 2루에서 터진 나승엽의 결승타에 힘입어 9-8로 이겼는데 이날 경기가 1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하는 ‘각본 없는 드라마’와 같았다. 무려 6번의 역전이 펼쳐진 ‘진땀 승부’였기 때문이다.
이날 역전과 재역전, 재재역전을 주고받은 양 팀은 9회까지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거듭했다. 6-7로 뒤진 롯데가 8회초 박승욱의 2점 홈런으로 또 다시 역전하자 LG는 8회말 박동원의 적시타로 8-8을 만들었다. 9회초 윤동희가 LG 마무리 유영찬에게 2루타를 뽑아내 득점권 기회를 만들었고, 나승엽이 우전 적시타로 천금 같은 결승타를 때려 4시간이 넘는 승부에 마침표를 찍었다.
다음 날인 16일 경기는 반대 상황이 벌어지며 롯데가 8-9로 분패했는데 이 또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혈투였다.
전날처럼 역전과 재역전을 거듭하며 롯데가 8-3으로 앞서 승리를 챙긴 듯했다. 하지만 LG는 이대로 물러나지 않았다. 8회와 9회말 3점과 2점을 얻어 8-8 동점을 만든 뒤 승부를 연장으로 끌고 갔다. LG는 10회말 무사 만루의 기회에서 신민재가 끝내기 희생플라이로 결승 타점을 올려 4시간 25분의 혈투를 마무리했다.
지난달 25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롯데와 KIA의 경기도 양 팀 팬들을 울고 웃긴 ‘영호남대전’이었다.
경기 초반 1-14로 뒤졌던 롯데는 4회말 6득점을 올렸고, 5회와 6회말 2점과 3점을 보태 12-14로 점수 차를 좁혔다. 롯데는 마침내 7회말 고승민의 2타점 적시타로 동점을 만든 후 이정훈의 희생플라이로 기어이 15-14로 경기를 뒤집었다. 그러나 KIA는 8회초 2사 2루에서 홍종표의 15-15 동점 적시타가 나왔고 이후 두 팀은 연장 12회까지 가는 투수전을 벌이면서 승부를 가리지 못 했다. 이날 경기는 역대 최다 점수 차 무승부 타이 기록으로 인정됐다. 또 5시간 20분 동안 혈투가 이어져 올 시즌 최장 경기로 기록되기도 했다.
변현철 스포츠부장 byunhc@busan.com
변현철 기자 byunhc@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