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부산시립 대학원인가?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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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컬대학30 사업 본선정 이후 부산교육대학교와 통합 최종합의서에 서명한 부산대 전경. 부산일보DB 글로컬대학30 사업 본선정 이후 부산교육대학교와 통합 최종합의서에 서명한 부산대 전경. 부산일보DB

“R&D(연구개발) 프로젝트를 학부생들로만 진행할 수가 없잖아요. 이렇게라도 해야 연구할 수 있습니다!” 바이오 전공 부산 A 대학 K 교수! 국내 최고 학부에 세계 적인 대학에서 박사학위까지 받고 최근에 부산에 자리를 잡았다. 랩실까지 꾸려서 SCI(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급 논문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고민이 생겼다. 그나마 줄어든 정부 R&D 프로젝트를 받아도, 함께 연구할 대학원생이 없기 때문이다. 대학원을 지원하는 학부생도 없는 데다가, 그나마 인력조차 장학금이 부족해, 자비를 털어 충당하고 있는 상황이다.

부산지역 석박사 대학원 충원율은 국립대인 부산대와 부경대가 80% 안팎을 겨우 유지하고 있다. 정원의 20%가 미충원이다. 그 외 사립대학은 60% 이하 수준이다. 이마저도 계약학과, 산업대학원, 야간경영대학원 등을 총동원해야 나오는 수치다. 부산의 대학원이 텅 비어가고 있다. K 교수는 “지역 대학원 충원이 힘들어지면서, 국가 R&D 사업을 수행할 인적 역량을 갖추기조차 힘들다”라고 토로했다.


■대학원은 비고, 부산시는 대학원 설립

이처럼 부산의 대학원이 지원 인력 부족으로 비어가는 상황에서 부산시가 ‘부산시립 대학원대학’ 설립을 시도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대학원 대학은 현행 고등교육법상 특정 분야 전문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대학원만 두는 대학이다. 첨단 미래산업을 이끌 인재 육성과 기업 유치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만약 설립된다면, 국내에서는 지자체가 설립한 첫 대학원 고등교육기관이다.

부산시의회 기획재경위원회는 지난 10일 부산시가 제출한 ‘대학원대학 추진 업무협약 동의안’을 부결했다. 입학자원 감소, 청년 인재 유출 등을 고려해 예산 투입 대비 실익이 적다는 판단이었다. 하지만, 하루 뒤인 지난 11일 재논의를 거쳐 3억 원의 ‘부산형 대학원대학 타당성 분석 연구용역 실시 계획안’ 용역비를 통과시켰다. 부산시 고위층의 강력한 요구가 있었다는 후문이다.

부산시 남정은 청년산학정책관은 “부산에서 연구 역량을 키울 지역 인재를 확보하고 미래 첨단 산업 분야 선도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시립 대학원이 필요하다”며 “대학원 설립과 함께 지역 인재가 부산에 정주하며 첨단 기술 분야에 진출할 방안도 마련하겠다”라고 설명했다. 부산시는 지역 S대가 기부체납하는 부지에 향후 5년간 1500억 원의 시비를 투입해 대학원 본관과 강의동을 신축하고, 운영비로도 활용할 계획이다.


■대학원 충원율 풍선효과 우려

지난해 부산지역 출생아 수는 1만 2900명. 부산지역 대학 입학정원(4만 81명)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10여 년 뒤 부산지역 대학 셋 중 두 개가 문을 닫거나, 정원의 3분의 2를 줄여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는 학부의 상황이고, 그 부족한 학부생을 대상으로 하는 대학원 현실은 더욱 심각하다.

대학 교수단체의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부산권 국립대학 교수회연합회(부국련)는 17일 “부산시가 추진 중인 부산시립 대학원대학교 설립을 중단할 것을 촉구한다”라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부경대 교수회 회장, 부산교대 교수평의회 회장, 부산대 교수회 회장, 한국해양대 교수회 회장 등이 참여한 이번 성명에서 “학령인구 격감이라는 지역 교육 환경을 고려치 않은 건 물론이고 정부의 지역 대학 육성 정책과도 엇박자를 내는 부산시립 대학원 설립 추진 중단”을 촉구했다. 또한, “첨단분야 인력 양성을 위해선 새로운 대학원 설립이 아닌 기존 지역 대학들에 투자하는 것이 맞다”라고 강조했다.

부국련은 “막대한 정부 예산을 투입해 운영되는 우리나라 카이스트, 유니스트, 지스트 등 4대 과기원도 대학원 학생만으로 운영의 어려움이 있어 결국 설립 취지와는 다르게 학부 학생을 모집해 교육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부산 발전을 위한 첨단분야의 인력 양성이 필요하다면 부산지역 대학들에 투자하는 것이 옳다”라고 반박했다.


지속 가능한 수익 창출형 통합 산학협력단 운영 등 연합모델로 교육부의 2024년 ‘글로컬대학30’에 동아대와 함께 예비지정된 동서대 전경. 부산일보DB 지속 가능한 수익 창출형 통합 산학협력단 운영 등 연합모델로 교육부의 2024년 ‘글로컬대학30’에 동아대와 함께 예비지정된 동서대 전경. 부산일보DB

■대학 통폐합 유도하는 정부 정책과도 엇박자

윤석열 정부는 지역 대학의 위기 상황에서 글로컬대학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대학 간 통합과 구조조정을 통해서 대학 숫자를 줄이고, 지역 혁신을 이끄는 경쟁력 있는 대학을 육성하자는 것이다. 기존 대학의 생존이 아니라 지역 경쟁력 활성화 차원이다. 대학 관계자들은 “정부가 대학 간 통폐합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부산시립 대학원 설립은 정부 정책에도 완전히 역행한다”라고 지적한다.

또한, RISE(지자체 주도 대학지원체계) 사업 등 대학 지원 예산을 중앙정부로부터 이양받은 지자체가 그 예산으로 자체 대학원을 설립한다면, 다른 대학과 스스로 설립한 대학의 성과 평가를 공정하게 할 수 있겠느냐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다. 상당수 대학 관계자는 부산시가 지역과 산업계, 대학 간 협력의 조력자가 아니라, 예산과 집행권을 가지고 선수로서 뛰려고 한다는 점을 우려한다. 즉 대학에 갈 예산이 내(부산시) 돈이니 내가 대학원을 설립하고, 교수를 충원하고, 맞춤형 인재를 직접 육성하겠다라고 해석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지속 가능한 수익 창출형 통합 산학협력단 운영 등 연합모델로 교육부의 2024년 ‘글로컬대학30’에 동서대와 함께 예비지정된 동아대 전경. 부산일보DB 지속 가능한 수익 창출형 통합 산학협력단 운영 등 연합모델로 교육부의 2024년 ‘글로컬대학30’에 동서대와 함께 예비지정된 동아대 전경. 부산일보DB

■부산시 주도로 미래 산업 인력 육성 가능할까

부산 대학 교수들 대부분은 황당한 정책이라고 입을 모은다.

지역 국립대학 교무처장과 대학원장을 역임한 S 교수는 “부산시가 1400억 원이나 들여 건물을 새로 짓는 대신에, 기존 대학원의 커리큘럼과 교수진을 강화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그 교수는 “대학원 설립과 동시에 대학원장, 학장 사무실을 만들고, 학사·총무·회계·인사 등 대학의 모든 기능을 갖춰야 한다”면서 “건물 신축에 이어, 최고 연봉의 교수진 인건비 부담, 유지·관리를 부산시 예산으로 감당할 수 있겠느냐”라고 질문했다.

화학 전공의 Y 교수는 “부산시 계획상 건축비 1400억 원, 초기 운영비 100억 원으로 예상돼 있다”면서 “미래 신산업 기술 대학원에 투입될 최신 실험 장비와 장학금, 실험 자재 비용은 어떻게 충당할지 고려조차 없다”라고 힐난했다. 그는 “R&D와 교육에 문외한인 부산시가 대학원을 설립하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면서 “정책 수립 과정을 소상하게 밝혀야 한다”고 질타했다.

D 대학 글로컬 추진위원인 J 교수는 “부산시립 대학원 설립은 대학 간 통폐합을 요구하는 교육부의 인허가 문턱도 넘기 쉽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학들도 서로 규모를 줄이며 특성화하고 있고, 대학원들도 부산에서 대학원생 확보가 어려운 상황에 새로 만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J 교수는 “부산시립 대학원에 투입될 예산을 지금 부산지역 대학원에 지원해서 우수한 국내외 학생을 유치하고 더 발전시키는 것이 맞지 않겠느냐”라고 방향을 제시했다.

대학 총장을 지낸 L 명예교수는 “부산시가 어떤 첨단산업을 할 것인지, 어떻게 인재 육성을 할 것인지 노하우나 계획, 비전을 갖고 있느냐“고 질문했다. 그는 “시가 필요하면, 부산의 어느 대학이라도 기존 건물을 내어줄 용의가 있다”면서 “부산시립 대학원은 혈세 낭비”라고 질타했다. L 명예교수는 “부산시는 부산의 대학 인재 양성 고등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고, 선택과 집중, 산업적 연계를 주도해야 한다”라고 충고했다.


지난 10일 부산시립 대학원 설립 동의안을 부결시킨 부산시의회 정례회 장면. 부산일보DB 지난 10일 부산시립 대학원 설립 동의안을 부결시킨 부산시의회 정례회 장면. 부산일보DB

■부산시의회 대학원 설립 동의안 부결시켜

부산시의회에서도 국내에서 지자체 대학원 설립 시도가 모두 실패했다면서 반대 기조를 분명히 했다. 시의회는 대학원 설립 동의안 안건을 부결하고, 당초보다 대거 삭감한 용역비 3억 원만 통과시켰다.

부산시의회 김형철 시의원은 “2014년에 경기도 남경필 지사가 지금 부산시와 똑같은 첨단산업 인재 양성을 명분으로 경기도립대학원 설립을 공약으로 추진하다 실패했고, 제주도가 2017년 수백억 원의 예산으로 탐라대학 부지를 매입해 대학원 설립을 추진했지만, 역시 진척이 없다”라고 반대 이유를 분명히 했다. 김 의원은 “막대한 건립비와 운영비로 부산시가 특정 위치에 대학원을 만들어 대학원생을 유치하면, 결국 다른 대학은 충원율이 떨어지는 풍선효과만 발생한다”면서 “기존 대학원에서 부산의 신성장 동력에 맞는 인재를 육성하도록 지원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기껏 인재를 육성해도, 부산에 취업이나 정주하도록 강제할 방법이 없다”면서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이승우 시의원도 “부산의 대학이 축소·통합하는 추세에서 시 예산 100%로 시립대학원을 만드는 것은 옥상옥 행정”이라면서 “산학협동을 통해 기존 대학을 활성화하는 검토가 필요하다”라고 권고했다.

포화처럼 쏟아진 시의회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부산시는 시립대학원 입장을 고수했다. 10~11일 이틀에 걸쳐 열린 부산시의회에서 부산시 남정은 청년산학정책관은 첫날 동의안 부결에도 불구하고, 결국 용역비 3억 원을 챙겼다. 남 청년산학정책관은 시의회에서 “전국을 대상으로 80명 규모를 충원해 신산업이 요구하는 연구 과제를 기존의 대학 연구 분야와 중복되지 않도록 하겠다”면서 “교수들이 연구를 안 하고 있는 분야를 시립대학원에서 중점적으로 연구를 해서 전체 산업 생태계에서 시너지를 내도록 하겠다”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중복을 회피할 분야,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방안은 설명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본인 용역비를 모아 대학원생을 지원해 랩실을 운영하는 A 교수는 “가능하지도 않을 대학원 설립 타당성 용역비 3억 원을 우리 연구실에 지원해 주면, 바이오 분야 인재 양성과 SCI급 논문 생산이 가능하다”라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그 정도 돈이면 우수한 유학생도 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연구밖에 모르는 과학자의 조심스러운 의견이었다.


※취재 후기

기자 생활 30여 년간 수많은 대학 보직교수, 전·현직 총장들과 인터뷰를 했다. 정권에도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던 과거의 모습과 큰 차이가 있었다. 대부분이 익명을 전제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유는 부산시가 대학의 예산 집행권을 갖고 있기 때문이었다. 속된 말로, 돈을 쥔 부산시가 ‘갑’으로 행세할 경우 소속 대학이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 있다는 속내였다. 최고 지식인인 대학 전·현직 총장과 교수들이 자기의 이름으로 지자체와 정부 정책을 비판하지 못하는 사회가 건강할까. 이러고서야, 지역 고등인재 양성과 대학, 도시의 미래가 있을까. 부산시립 대학원의 운명보다도 더 걱정되는 부분이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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