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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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아 소설가

개인의 노력과 관계없이
벌어지는 수많은 비극들
서로에 대한 비난보다
잘못된 시스템서 문제 찾아야

요가를 배우면서 내 몸의 다양한 뼈와 근육의 위치를 새삼스럽게 인지한다. 내전근, 대퇴근, 척추기립근…. 그런 단어들을 들으면 피부 속에 숨은 근육들의 존재를 모처럼 개별적으로 인식하게 된다. 할라아사나 동작을 취했다가 바닥으로 몸을 내릴 때 선생님은 늘 호통을 친다. “한 번에 내려오지 말고! 흉추, 요추, 꼬리뼈 순으로!” 그러면 나는 뼈들의 위치와 순서를 생각하며 몸을 움직이려고 애쓴다. 얼마 전에는 선생님이 날개뼈 쪽 근육을 강화하기 위한 운동을 해보자면서 이렇게 말했다. “날개뼈가 유독 많이 튀어나와 있는 사람이 있는데, 전생에 천사였다느니 그런 말 같잖은 소리 하지 말고 운동하세요. 천사가 아니고요, 본인 견갑골에 이상이 있는 겁니다.”

‘나는 천사가 아니다. 운동을 하자.’라고 머릿속으로 되뇌는 동시에, 날개뼈의 존재를 생각하면서 자세를 취하다 보니 예전 7차 교육과정 때 중학교 2학년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아기 장수 우투리’ 설화가 떠올랐다. 그때 나는 보습학원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에 교과서에 나오는 문학 작품들을 수없이 읽고 해석해야 했다. 시험 대비가 목적이었으나 어떤 작품들은 그렇게 읽어도 마냥 좋았는데, 그중 나는 날개가 달린 채로 태어난 우투리의 이야기에 깊이 매료되었다. 인간 몸에 날개라니, 얼마나 매혹적인가. 게다가 비극적 영웅 서사! 나는 예전부터 한 인간이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고 끝내 승리하는 해피엔딩보다는 독자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슬픔을 안겨주는 서사에 더 빠져들었다.

그 이야기에서 왕은 영웅적 면모를 지닌 채 태어난 아이를 죽이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군사들을 피해 사라졌던 우투리가 어머니 앞에 나타나 콩 한 말을 내밀며 볶아달라고 부탁하자 그녀는 아들을 위해 콩을 열심히 볶는다. 그러다 한 알이 튀어 바닥에 떨어지게 되고, 너무 배가 고팠던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콩 한 알을 주워 먹고 만다. 우투리는 어머니가 볶아준 콩으로 갑옷을 만들어 입고서 군사들과 싸우는데, 한 알이 모자랐기 때문에 왼쪽 겨드랑이 날갯죽지 아래를 가리지 못한다. 군사들이 쏘는 모든 화살이 갑옷에 맞고 튕겨 나가지만 결국 마지막 화살이 우투리의 날갯죽지 아래를 명중해 그는 죽게 된다. 한 인간이 죽음을 무릅쓰고 거대한 세계와 대결하는 것. 끝내 죽음을 맞이했을지언정 그 비장함 자체가 위대하며 아름답다고 느껴졌다.

그런데 나는 한편으로, 주인공의 비극적 결말뿐만이 아니라 우투리 엄마의 마음이 어떠했을지 자꾸만 생각하게 되었다. 자신이 무심코 주워 먹은 콩 한 알이 아들 죽음의 원인이 되었을 거라는 자책. 우투리가 과연 콩 한 알이 부족해서 죽었을까. 엄마가 콩을 한 알도 빼놓지 않고 완벽하게 다 볶아 주었더라도 왕은 어떻게든 우투리를 죽였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우투리가 영웅이 될 만한 시대적 상황이었다면 설령 엄마가 콩을 다 먹어버렸더라도 그는 살았을 것이다. 우투리의 죽음이 단지 엄마의 실수 탓은 아닌데, 언젠가 포털 사이트에 우투리 엄마 안티카페까지 생겼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꽤 충격이었다. 콩 한 알에 아들을 팔아먹었다느니 그런 말들은 아무리 설화 속 인물에 대한 이야기라도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세상의 수많은 비극은 개인의 노력과 관계없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런 일들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우리가 서로를 비난하고 있을 때 잘못된 시스템은 신나게 돌아가고 우투리들은 그 시스템에 깔려 또다시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비장한 서사에 매혹되는 내 취향은 문학으로 족하다. 나는 천사도 아니고 영웅도 아니지만, 내 주변 어딘가에 우투리가 있다면 그가 혹독한 싸움 끝에 마침내 날개를 펼칠 수 있는 세상이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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