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영화관에서 봐야 하는 이유 [경건한 주말]
“정말 ‘악’ 소리가 날 정도로 훌륭한 영화” “영화 예술의 한 궁극을 보여 주는 작품”.
지난 5일 개봉한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를 두고 이동진 영화평론가가 남긴 평가입니다. 웬만하면 만점을 주지 않는 이 평론가이지만, 이 영화는 5점 만점에 5점을 매겼습니다.
영화 좀 본다는 사람들 사이에선 이 평론가 못지않게 유명한 평론가가 있습니다. 냉정하고 직설적인 한 줄 평과 함께 박한 평점을 매기는 것으로 유명한 박평식 평론가입니다. 박 평론가는 “영화는 완전할 수 없다”는 신념하에 단 한 번도 10점 만점에 10점을 준 적이 없고, 최고 평점은 늘 9점이었습니다. 그런 박 평론가가 ‘액트 오브 킬링’(2013) 이후 약 10년 만에 9점을 준 영화도 ‘존 오브 인터레스트’입니다.
도대체 어떤 영화이길래 유명한 평론가들이 극찬을 아끼지 않는 걸까요. 직접 관람해봤습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마틴 에이미스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작품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관리했던 나치 장교 루돌프 회스와 가족들의 시선으로 영화가 전개됩니다. 회스는 아우슈비츠 수용소 소장으로 일하며 유대인 대학살에 직접적으로 가담한 혐의로 전후 처형된 실존 인물입니다.
이 영화는 관점에 따라 지겨울 수 있습니다. 화면만 봤을 때는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시작부터 검은 화면이 2분여 동안 이어지더니 평화롭고 평범한 가족의 일상이 펼쳐집니다. 홀로코스트 영화지만 유대인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보여 주는 장면은 없습니다. 극 중 회스(크리스티안 프리델)의 아내가 정성 들여 가꾼 아름다운 정원은 이 영화의 정적인 분위기를 대표합니다.
연출 역시 마찬가지. 각 쇼트의 길이가 대체로 길고 인물의 전신을 담은 롱쇼트나 와이드쇼트의 비중이 높아 시종일관 차분한 분위기입니다. 그 흔한 줌 인이나 줌 아웃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극적인 사건이나 격렬한 갈등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사운드를 활용해 관객을 불편하고 소름 끼치게 만드는 동시에 첨예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사운드로 보여 주는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
최초의 유성 영화인 ‘재즈 싱어’(1927) 등장 이후 사운드는 명실공히 영화의 핵심 요소가 됐습니다. ‘스타워즈’ 시리즈를 만든 조지 루카스 감독은 “영화가 주는 즐거움의 반은 사운드와 음악이다”라는 명언을 남기기도 했죠.
‘존 오브 인터레스트’ 역시 사운드의 역할이 아주 중요한 영화입니다. 영화는 시작부터 사운드로 관객을 압도합니다. 시작 직후 2분 11초간 스크린은 검은색으로 덮여 있습니다. 둔탁하고 뭉개지는 듯한 불쾌한 잡음이 한동안 이어지더니 새가 지저귀는 평온한 분위기의 소리가 들립니다. 이윽고 어느 한적한 강가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화목한 회스와 가족의 모습이 보입니다.
회스 일가의 평온한 일상은 사택을 둘러싼 장벽 너머로 들리는 불편하고 불쾌한 소리와 병치되면서 불편한 감정을 유발합니다. 밤낮없이 들리는 총격 소리, 비명과 신음, 무엇보다도 거대한 화마가 시체를 태우며 공기를 집어삼키는 소리에도 회스 일가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벽 하나만 넘으면 사람들이 말 그대로 죽어 나가는 곳인데도 얼굴에 수심이 있는 사람이 없습니다.
살육과 갈취를 통해 챙긴 돈으로 세운 여유롭고 평화로운 사택의 모습은 괴리감을 강화합니다. 사택 곳곳을 살펴본 회스의 친척은 ‘낙원이 따로 없다’고 말하지만, 장벽 너머로는 시체들을 태우느라 솟구치는 뿌연 연기가 보입니다.
‘악의 평범성’의 완벽한 극화
회스 가족의 거리낌 없이 당당한 모습을 보면 자연스레 정치 철학자 해나 아렌트가 제시한 개념인 ‘악의 평범성’이 떠오릅니다. 유대인 학살 총책임자인 아돌프 아이히만은 정신 나간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지극히 평범하고 성실했으며 가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아이히만을 관찰한 아렌트는 이 끔찍한 악행의 원인이 바로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것’이었다고 분석하면서 ‘사유’하지 않는 것은 죄라고 지적했습니다.
영화 속 회스 가족의 모습은 이러한 악의 평범성의 전형입니다. 예고편에도 나오는 극 초반부의 코트 착용 신을 예로 들어 볼까요. 회스의 아내인 헤트비히(산드라 휠러)는 고급 모피코트를 입고 거울을 보며 맵시를 확인합니다.
그런데 이 코트는 새것이 아닙니다. 주머니에 무언가 있어 꺼내 보니 립글로스입니다. 관객은 이 코트가 수용소에 끌려온 유대인의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이 코트의 원래 주인은 벽 너머에 있는 수용소에서 온갖 고초를 겪고 있거나, 이미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원래 주인의 처지를 생각해 보면 이 옷을 그대로 입는 건 상당히 찝찝하고 불편한 일입니다. 그러나 헤트비히는 개의치 않고 유대인 하인에게 옷을 건네며 ‘좋은 옷이니 세탁해 두라’고 지시합니다. 타인의 입장을 생각해 보지 않는 ‘무사유’가 인명에 대한 철저한 경시로 이어지는 겁니다.
남편인 회스가 사택을 방문한 자들과 대화하는 장면도 비슷합니다. 이들은 더 효율적인 소각 시설에 대해 논의합니다. 쓰레기 소각장 건설 계획을 세우는 듯 평범한 어투와 차분한 목소리로 대화하지만, 맥락상 이 소각장에서 태우게 될 것은 사람의 시체입니다. 이들의 표정과 말투에서는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는 끔찍한 상황에 대한 어떠한 우려도 보이지 않습니다.
회스를 비롯한 나치 장교들이 모여 학살 작전을 주제로 회의하는 모습은 마치 성실한 공무원들이 회의를 하는 장면처럼 보입니다. 마찬가지로 그 누구의 얼굴에서도 죄의식을 볼 수 없습니다.
영화는 당대의 나치만 비판하는 것이 아닙니다. 벽 너머로 억압과 살육의 소리가 들리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영위하는 회스 가족의 모습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분쟁과 재해로 신음하는 사람들의 소식을 듣고도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현대인의 초상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 영국 감독인 조너선 글레이저는 지난 3월 제96회 오스카 시상식에서 ‘존 오브 인터레스트’로 국제영화상을 받은 뒤 무대에 올라 “(이 영화는)‘그들(나치)이 그때 무엇을 했는지 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 보라!’고 말하는 것”이라면서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를 낳고 있는 가자전쟁을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재미’ 묻는다면 ‘글쎄’…그럼에도 극장에서 봐야 하는 이유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글레이저 감독이 스칼릿 조핸슨 주연의 ‘언더 더 스킨’(2014) 이후 10년 만에 만든 신작입니다. 글레이저 감독은 전작에서처럼 영상미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집착에 가까운 대칭으로 구현한 미장센이 웨스 앤더슨의 작품을 연상케 합니다.
독특한 연출과 편집도 인상적입니다. 글레이저 감독은 오스카상 수상 소감 당시 “알렉산드라 비스트로니-코우오제치크, 영화에서처럼 실제로도 빛났던 소녀의 삶과 저항 정신에 이 상을 바친다”고 말했습니다. 그가 말한 코우오제치크는 실존 인물로, 포로들을 위해 밤마다 사과를 숨겨 놓았던 폴란드 출신의 비유대인 소녀입니다. 글레이저는 일반적인 극영화에서 자주 사용하지 않는 촬영 기법으로 코우오제치크가 빛나는 것처럼 보이게 연출했습니다.
학살에 대해 다루는 전설적인 다큐멘터리 영화 ‘액트 오브 킬링’ 속 명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을 자연스럽게 녹여낸 점도 관람 포인트입니다. 현대와 과거를 오가는 교차 편집이나, 검은 화면으로 시작해 검은 화면으로 끝나는 수미상관식 구성도 인상적입니다.
이처럼 영화는 여러모로 흥미롭고 기억에 오래 남을 만한 작품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체면을 내려놓고 솔직하게 말해 보자면, 평론가들의 극찬만큼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쉽게 말해서 심심합니다. 올해 오스카 시상식에서 상을 휩쓴 ‘오펜하이머’(2023) 수준의 대중성을 갖춘 작품은 전혀 아닙니다. 취향에 맞지 않는다면 극장에서 졸다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 정도면 관객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크게 갈려야 정상인데, 전문가들이 워낙 호평을 하니 ‘영화 모르는 사람’이 될까 봐 악평을 자제하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이러한 이유로, 기자는 이 영화를 ‘인생 영화’나 ‘필람 영화’로 강력히 추천하지는 못하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선택한다면 꼭 극장에서 볼 것을 추천합니다. ‘메타포’(상징)가 많은 덕에 극장에서 나온 후 다양한 해석을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메시지가 시의적절하고, 생각을 자극해 ‘무사유’하는 인간이 되지 않도록 일깨웁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국제장편영화상에 더해 음향상도 수상했습니다. 제작진이 실제 아우슈비츠 수용소와 사택의 거리 등을 계산해 설계한 섬세한 사운드와 종종 소름이 돋게 하는 음산한 배경음악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극장 관람은 필수입니다.
영화가 끝난 뒤 엔딩 크레디트가 나올 때의 배경 음악은 독일 베를린 지하철, 함부르크 축구 경기장, 2022년 프랑스 파리 폭동 등 전 세계에서 수집한 소리로 만든 음악이라고 하니 끝까지 자리에 앉아 감상해 볼 것을 권합니다.
조경건 부산닷컴 기자 pressjkk@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