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카르미나 부라나', 운명을 통과하는 인간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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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평론가

운명의 수레바퀴가 그려진 '카르미나 부라나' 표지. 위키미디어 제공 운명의 수레바퀴가 그려진 '카르미나 부라나' 표지. 위키미디어 제공

“오 운명이여, 그대의 변덕스러움이 달과 같구나. 언제나처럼 차올랐다가 또 이지러지는구나. 잔혹한 인생, 제 마음대로 괴롭히다가 어루만져 주네. 가난도 권력도 모두 얼음처럼 녹여 버리네…”

1895년 태어나 1982년 3월 29일 세상을 떠난 작곡가 칼 오르프의 명곡 ‘카르미나 부라나’. 그 첫 곡인 ‘오 운명이여’는 이런 가사로 시작한다. 마이클 잭슨의 뮤직비디오부터 한국의 드라마와 CF에도 단골로 등장하는 곡이다. 팀파니를 동반한 합창의 강력한 힘이 듣는 사람을 단박에 휘어잡는다.

독일 뮌헨에서 태어난 칼 오르프는 5세부터 첼로, 피아노, 오르간을 배웠고, 11세에 가곡을 작곡한 천재였다. 뮌헨음악원에서 작곡과 지휘를 공부한 후 만하임, 다름슈타트 등지에서 악장을 역임했다. 바로크 작곡가들의 작품을 편곡하기도 하고, 현대적인 곡도 꽤 썼지만, 1937년 ‘카르미나 부라나’를 발표하면서 이전의 작품을 모두 잊게 했다. 그만큼 결정적인 히트작이었다.

‘카르미나 부라나’는 ‘보이렌의 노래’라는 뜻이다. 1803년 독일 뮌헨 부근에 있는 보이렌 수도원에서 발견된 시가집에는 11~13세기에 활동하던 익명의 유랑 악사와 음유시인이 남긴 세속 라틴어 시가 250여 곡 들어 있었다. 오르프는 그중에서 24곡을 추려 3부의 세속 칸타타를 만들었다. 가장 유명한 첫 곡 ‘오, 운명이여’는 서곡에 해당하는 노래다. 고대와 중세 철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운명의 수레바퀴’를 인용해서 운명의 변덕스러움과 가혹함을 얘기한다. 단순한 화음과 고전적인 멜로디를 사용했지만, 합창과 타악기가 원시적인 생명력을 느끼게 만든다. 강렬하고 복잡한 리듬도 충격을 주었다.

그러나 이어지는 곡들은 세상을 한탄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세속을 살아가는 방법을 노래한다. 1부 ‘봄에’는 봄날의 정취와 사랑의 감정을 담았고, 2부 ‘선술집에서’는 교회와 성직자까지 마음대로 풍자하며, 3부 ‘사랑의 뜰’에선 세상의 마지막 위안을 사랑으로 치환한다. 운명이 준 상처에 탄식하던 영혼은 마지막 24번째 곡을 이렇게 맺는다. "만세, 세상의 빛이여. 만세, 세상의 장미여. 고결한 사랑의 여신이여."

운명은 강력하고 세상은 지리멸렬하다. 그러나 우리에겐 시대를 한탄할 자유가 있고, 술을 마시며 같이 떠들 친구가 있고, 봄과 사랑을 노래할 심장이 있다. 이로써 운명에 대항하리라! 거의 1000년 전의 사람들도 그렇게 삶을 통과해 나갔음을 ‘카르미나 부라나’가 알려 준다.

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 중 '오 운명이여' 칼 오르프의 '카르미나 부라나' 중 '오 운명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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