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창의 클래식 내비게이터] 현대 음악계를 이끄는 여성 작곡가들?
음악평론가
영국의 온라인 예술잡지 〈바흐트랙〉(Bachtrack)은 매년 내놓는 음악계 동향 보고서로 유명하다. 비록 영국과 미국에 치우친 경향은 있지만, 올해도 2023년 열린 공연 3만 1309개를 조사해서 가장 인기 있는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가장 많이 연주된 작품 등 다양한 통계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에서 눈에 띄는 점은 현대음악 레퍼토리와 여성 작곡가 인기가 급상승했다는 점이다.
그에 따르면 2013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현대음악 공연이 약 6%에서 14%로 증가했다. 영국에선 6%에서 15%로, 미국에서는 7.5%에서 무려 20%로 증가했다. 여전히 고전-낭만주의 레퍼토리에 치우치고 있는 우리나라 클래식 무대와는 무척 대조적이다.
‘가장 많이 연주되는 작곡가 200명’을 집계했을 때, 2013년에는 여성 작곡가가 단 2명밖에 없었는데, 2013년엔 22명으로 늘어났다. ‘살아 있는 인기 작곡가 톱 텐(Top 10)’ 리스트에서도 여성 작곡가가 4명이나 들어 있다. 러시아의 소피아 구바이둘리나, 미국의 캐롤라인 쇼, 영국의 안나 클라인, 그리고 자랑스럽게도 한국의 진은숙이 포함돼 있다.
한국에서도 여성 음악가의 몫이 커지기를 바라며, 오늘 세상을 떠난 프랑스의 작곡가 릴리 불랑제(Lili Boulanger, 1893~1918)의 곡을 들어본다. 나디아 불랑제와 동생 릴리 불랑제는 20세기 최고의 여성 작곡가였다. 언니 나디아 불랑제는 파리음악원 작곡가 교수로 있으면서 피아졸라, 거슈윈, 코플랜드 등을 가르쳤다. 영국 로열 필하모닉과 보스턴 심포니, 뉴욕 필하모닉,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최초의 여성 지휘자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디아는 항상 “동생의 작품에 비하면 내가 쓴 것은 하찮은 정도”라고 겸손하게 말했다.
동생인 릴리는 1913년 프랑스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로마대상’에서 여성 최초로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릴리는 어릴 때 폐렴을 겪은 후로 항상 몸이 약했다. 나중엔 병상에 누워 언니에게 음을 불러주면서 작곡했다고 한다. 그녀는 1918년 불과 25세로 세상을 떠났다. 모차르트보다도 10년이나 어린 나이였다. 릴리 불랑제는 워낙 이른 나이에 죽었기에 50여 곡밖에 남기지 못했지만, 오늘 듣는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녹턴’ 같은 곡만 들어봐도 “아, 천재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녀의 나이 18세 때 만든 곡으로, 봄날의 꽃처럼 애잔하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