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싱가포르에서 글로벌 허브도시 부산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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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는 항만 자동화 세계 최고
도시 기능을 재배치해 경쟁력 높여
부산이 관광·항만 등서 배울 것 많아
국제 자유 비즈니스 도시 육성 위해
지역 강점 살려 행복 도시로도 가야

싱가포르의 랜드마크로 꼽히는 마리나베이샌즈호텔 야경. 부산일보DB 싱가포르의 랜드마크로 꼽히는 마리나베이샌즈호텔 야경. 부산일보DB

‘다른 도시에는 도시 속에 공원이 있지만, 싱가포르에는 공원 속에 도시가 있다.’ 이 말은 대체로 2010년까지만 유효했다. 지금은 아니다. 2010년 3월 매립한 해변 부지에 마리나베이샌즈호텔이 우뚝 솟은 이후 싱가포르의 스카이라인은 춤추기 시작했다. 더 이상 잘 가꿔진 공원과 첨단 항만으로만 승부를 겨루지 않겠다는 일종의 선언이었다.

최근 며칠간 싱가포르에 머물 기회가 있었다. 이전에는 하루 이틀 머물다가 오곤 해 싱가포르의 겉모습을 보았다면, 이번에 일주일 정도 머문 덕에 싱가포르의 겉과 속을 고루 체험했던 셈이다.


부산시는 글로벌 허브도시로의 도약을 꿈꾼다. 정부는 부산을 국제 자유 비즈니스 도시로 키우려는 ‘글로벌허브도시특별법’ 제정으로 뒷받침할 계획이다. 싱가포르는 부산이 글로벌 허브도시로 가는 길목에서 반드시 벤치마킹해야 할 대상이다. 싱가포르는 항만이나 물류 분야에서는 부산과 경쟁 관계에 있고, 관광 등 마이스 산업에서도 우리가 배워야 할 게 많은 도시여서다. 더욱이 박형준 부산시장은 연초에 “2024년은 글로벌 허브도시 부산의 원년이 될 것”이라며 “한마디로 부산을 싱가포르에 비견되는 글로벌 허브도시로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조용하게 보여도 치열하게 변신 중인 싱가포르의 몇 가지 특징을 소개한다.

우선 싱가포르의 건물들은 하나같이 개성이 넘친다. 도심의 가로를 걸어가면 건물들이 “날 좀 보소! 날 좀 보소!” 하며 이방인의 옷소매를 끈다. 예컨대 마리나베이샌즈, 가든스바이더베이, 사이언스파크, 싱가포르 플라이어 등의 건물은 유명 건축가들의 경연장을 방불케 한다. 이들 건물은 화려한 야경도 자랑한다. 비즈니스맨이든, 관광객이든 죄다 야한 빛으로 홀려놓겠다고 작심한 것일까? 야간 레이저쇼는 홍콩의 밤을 조명과 음악으로 장식하는 명물 이벤트 ‘심포니 오브 라이트’가 촌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다음으로 대규모 관광 위락 시설과 항만 시설의 재배치를 소리 없이(?) 진행 중이다. 종전에는 관광지구가 센토사섬이나 서쪽 지역의 주롱 새 공원 등에 한정되었다면, 지금은 해안 매립을 통해 도시 기능을 재배치하고 교통 거점마다 복합 쇼핑몰을 배치하고 있다. 매립→신축→개장→투자비 회수→재투자로 선순환 되는 것이다. 참고로 싱가포르는 1965년 독립 이후 2022년까지 국토 면적(719㎢)의 20%(140㎢)가 해안 매립을 통해 확장되었다.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 있다. 자율보다 규제, 즉 행정 강제력을 적극 발휘하고 있다는 점이다. 종종 ‘잘 사는 북한’이란 국제적인 조롱을 듣는 이유다. 결과적으론 도시의 경쟁력과 쾌적성이란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이다. 그 덕에 항만뿐만 아니라 도시 인프라와 대중교통 네트워크도 효율적으로 작동된다. 이층 버스, 전철 등 대중교통 비용은 하루 2달러 이하로 저렴한 데다 그랩(grab) 택시까지 잘 운용되고 있다. 한편으론 자율보다는 규제 우위로 인해 어쩐지 또 한 편의 영화 ‘트루먼 쇼’에서 조연이 된 기분도 든다.

부산항은 언제쯤 글로벌 메가 허브항으로 갈 수 있을까? 싱가포르항은 세계 1위 항만이면서 항만 자동화 수준이 세계 최고다. 우리 속담에 ‘호랑이 가죽은 탐이 나고 호랑이는 무섭다’는 말이 있다. 호랑이 가죽을 얻으려면 사나운 호랑이를 잡을 방도부터 찾고 실행해야 한다.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의 IT기술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항만 자동화율은 싱가포르에 비해 한참 떨어진다고 한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부산항이 글로벌 메가 허브항이 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었다. 하지만 부산만의 강점부터 살려 나갈 일이다. 강과 바다, 산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삼포지향의 도시, 천연의 바다, 사철 변화무쌍한 금정산, 백양산 그리고 장산, 해안 따라 펼쳐진 갈맷길, 낙동강 변의 잘 가꿔진 자전거길, 광안대교에서 부산항·남항대교를 거쳐 가덕대교까지 이어진 해상 드라이브 길 등이 있다. 싱가포르는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천혜의 조건이다. 아울러 부산만의 차별화된 요소인 영화의전당과 벡스코, 수리조선 산업 그리고 머지않아 열릴 북극 항로가 가장 큰 잠재력이다. 글로벌 허브항은 장기 목표로 하고, 시민이 행복한 도시 부산이 단기 목표가 돼야 한다. 글로벌 허브 이전에 싱가포르가 부럽지 않는 글로벌 행복 도시부터 만들 수 있다.

박원호 하우엔지니어링 부사장·기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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